[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문 대통령과 소관부처 장관들, 대기업·중견기업 대표들을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단 등 128명의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그들은 2시간 동안 자유롭고 가감 없는 ‘타운홀 방식’의 열띤 토론을 펼쳤고, 훈훈하게 그 자리를 마무리 했다고 한다.
모두 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려고 했다. 하지만 ‘기업이 커가는 나라,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 현수막을 내걸고 기업인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그 자리를 보자, ‘포괄적 현안’이니 ‘묵시적 청탁’이니 하며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적폐몰이가 생각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전 정부의 ‘기업인 애로사항 경청’이 대통령의 탄핵 사유로 번질 만큼 의아한 것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이 자리 또한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그렇게 훈훈했다는 행사에 이런 식의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지만 아무리 곱씹어 봐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이 고민은 “이번 자리에서 논의된 것이 정부 정책으로 이어져야 보여주기 식 행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만나라고 한 적도 없지만) “만나면 만난다고 뭐라고 하고, 안 만나면 안 만난다고 뭐라고 하냐”는 비판과도 결이 다르다.
또한 그 자리에 참석한 기업인들의 마음이 진심으로 벅찼는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간 것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 오라는데 사사로운 마음이 개입할 여지가 어디 있겠으며, 어떤 생각이 필요하겠는가. 오라면 오는 거고 가라면 가야하는 것이 대한민국 기업인의 현실이다. 노영민 비서실장과 악수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 기업인의 모습이 이를 증명해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를 마친 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다 좋다. 아니, 좋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그땐 안 된다고 했던 걸 지금 왜 되풀이하고 있냐는 거다. 적어도 전 정권을 ‘기업 경영 자유의 침해’로 몰아세웠다면 자신들은 그러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닌가. 그때는 침해였지만 지금은 소통이고 대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그때 그 정부도 드러내놓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려고 작정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 경청, 소통, 혁신 성장을 위함이라고 했다.
작심하고 비판하려 든다면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민간 투자 활성화를 강요하는 것은 묵시적 청탁도 아닌 명시적 청탁이다. “우리 공장에 와 달라”는 제안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언제든지 간다”고 말한 것 또한 묵시적 의사 표시를 주고받은 것이다. 또한 이날 오고간 대화가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진다면 기업의 현안 해결을 위해 정부가 공권력을 남용한 정경유착이 되고 만다. 원래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되받아치고 싶다. 기존 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고백할 것 아닌 이상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라.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을 인정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기업인과의 대화’ 같은 쇼 또한 무의미하다. 정부가 참견하지 않아도 기업인들의 가장 큰 현안은 기업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각자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지금까지 대기업 죽이는 정책만 펼치다가 아무런 설명 없이 대화를 운운하는 것은 두 번 말하기 입 아플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어제까지 날 미워하던 사람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내 맘 알지?’ 하고 잘해준다면 그것만큼 소스라칠 일이 없다. 거기에다 기껏 화해모드를 연출해놓고 실질적인 괴롭힘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 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 그거다. 대체 바쁜 기업인들 불러다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뭘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