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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님의 왼쪽에 앉은 교수들의 천국

2019-01-17 10:2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2019년 정초 필독서 3종 연속서평 첫 회]  
 

조우석 언론인

"세계적으로 마르크시즘은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만큼은 펄떡펄떡 살아 움직인다."(75쪽) "엄청 많은 교수들이 마르크스님의 왼편에 앉아있는데…대학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교수만이 아니라 이미 세뇌된 학생들이 장악한 학보사와 동아리다."(21쪽, 184쪽)

어느 나라 얘기일까? 좌파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상황 같은데, 요즘 분위기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싶다. 그럼 1980년대 한국 얘기일까? 그것도 아니다. 미국 대학 얘기이고, 그것도 현재 상황에 대한 리포트다. 그래서 놀랍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가방끈 긴 인간들이 벌이는 관념의 사치는 오십보백보인데, 예외 없이 좌빨의 늪에 빠진다는 점까지 꼭 같다.

신간 <세뇌>는 좌파 정서에 오염된 미국 대학문화 폭로다. 원서 제목도 'Brainwashed'인데, 우리 식 표현으론 '의식화'쯤이 안 될까? 문제는 좌익 이념으로 무장하고 평양의 지령을 받는 한국식 운동권의 농간이 없는데도  미국 대학의 풍토가 저 지경이란 점이다.

한국 얘기야, 미국 얘기야 헷갈려

미국판 '기울어진 운동장'은 어느 정도일까? 저자의 단언대로 "(미국) 대학에서 허용되는 사상과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좌에서 극좌까지다." 좌파 일색에서 우파의 가치를 찾거나, 다양성을 요구하는 건 헛수고다. 열린 탐구를 지향한다는 상아탑의 이상도 사라졌다. 대학 교육의 고전적 가치인 자유주의가 쇠퇴한 대신 현대판 리버럴이라는 저질의 사고방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걸 지적한 신간 <세뇌>는 말하자면 전 사무관 신재민이 했던 공익 고발의 미국판인데, 미국 지식사회의 위선과 거짓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실은 저자는 그리 낯설지 않다. 요즘 유튜브에서도 접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젊은 영웅인 보수 논객 벤 샤피로(Ben Shapiro)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2004년)하던 갓 스물에 펴낸, 그의 첫 저서다. 열여섯 살에 UCLA에 입학한 저자는 그야말로 '홀로 깨어나' 좌편향에 취한 교수들의 짓거리를 하나하나 관찰했고, 지식사회 분위기까지 함께 취재했다. 그가 보낸 대학 4년은 아들 부시 행정부 1기에 해당하며, 부자 감세 논쟁,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던 시절이다.

당시 저자의 눈에 비친 미국의 대학이란 좌파의 이념 선전, 반미와 테러 옹호가 판치는 '거대한 복마전'이었다. <세뇌>가 돋보이는 것은 일그러진 교육의 희생자인 대학생 입장에서 정리했다는 점이다. 수업노트와 재학 중 발표했던 칼럼 등이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당연히 신랄하다.

우린 사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학은 본래 그렇고 그런 곳이라며 체념을  해왔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확인해보니 실로 가관이다. 즉 지식과 정보의 좌편향이 교수-학생의 머리 안에는 물론 커리큘럼까지에 스며들어서 손 써볼 여지조차 없다. 그걸 저자는 '리버럴 교리(도그마)'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리버럴이란 미 민주당의 노선과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오염되고 타락한 리버럴리즘'이란 뜻이고, 빨갱이(the reds)는 아니지만 좌파정서에 묻어가는 한국식 강남 좌파와 닮은꼴이라고 보면 된다. 일테면 미국 교수들의 정당 선호도가 극도로 기형적이다. 그들은 공화당은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고 보고, 민주당 노선만을 앵무새처럼 읊어댄다.

공화당은 불평등을 용납하고 세상 변화와 진보적 개혁에 저항하는 '꼴보수'로 취급하며, 그래서 부배하고 악마적이라고 십중팔구가 생각한다. 그에 비해 민주당이야말로 비할 바 없이 사려 깊고 훌륭하다고 여긴다. 그게 어느 정도일까? 명문대 교수 중 당적을 가진 이들은 압도적으로 민주당이 많다. 민주당 대 공화당이 151대 17(스탠포드대), 54대 3(브라운대), 29대 0(코넬대 역사학과), 10대 0(다트머스대 역사학과), 뭐 그런 식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젊은 보수 논객 벤 샤피로는 그의 저서 '세뇌'에서 "세계적으로 마르크시즘은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만큼은 펄떡펄떡 살아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난 3월 8일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고 인촌기념관·인촌로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7년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적이 인정된 인촌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사진=연합뉴스


'좌에서 극좌까지만' 허용된다구요?

때문에 보수 성향을 커밍아웃하는 건 숫제 교수 생명을 내건 모험이다. "내가 공화당에 가입한 뒤 세상이 나를 마치 아동추행범인양 취급했다." 그렇게 밝힌 한 사회학과 교수는 끝내 학계에서 퇴출당했다. 리버럴 도그마는 앞서 말한대로 실제론 '좌에서 극좌까지만' 허용된다는 게 벤 샤피로의 말이다.

즉 우파 유죄, 좌파 무죄의 천국이 미국 대학이다. 지난 10년 간 아이비리그 8개 대학을 포함해 주요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사람들의 통계도 흥미롭다. 초대 받은 이들의 이념 성향을 구분해보니 좌파 226, 우파 15란다. 그런 것까지 미국과 한국이 완전 닮은꼴인지 놀랄 지경이다. 다음은 국내 경제학자 이영훈 교수(전 서울대)의 고백이다.

"자유주의를 강의하기 위해서는 꼴통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속으로 자유주의자이면서 입까지 자유주의자인 교수는 대학에서 희귀한 존재다." 그 바람에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대학의 풍토는 개판 오분 전이다.

각종 인문사회과학 강좌에 '마르크시즘 문학이론' 따위가 즐비하고 그게 당연시된다. 마르크스님 왼편에 앉아있는 교수들은 여전히 마오쩌둥을 최선의 정치철학으로 찬양한다. 당연히 대기업 자본가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다. 그들의 이윤추구 행위를 죄악시하며 분배의 정의를 소리 높여 외친다. 그리고 교수들은 꼴에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유행을 맹목적으로 신봉한다.

그러다보니 진리의 객관성조차 거부하고 "진리란 권력으로 정의되는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 따위의 극단적 상대주의 발언을 강의실에 거리낌 없이 내뱉으며 대학생들을 오염시킨다. 물론 동성애에 대해 지지하는 걸 무슨 쿨한 태도인양 자랑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국을 사랑한다는 애국이란 말도 사라졌다. 미국 대학에서 애국을 말하면 광신도로 취급을 당한다. 그게 끝내 '좌빨 대마왕' 노엄 촘스키처럼 반미를 넘어 미국 혐오로 발전하는데, 그건 한국 내 좌파 교수 상당수의 반대한민국적이고 종북적 태도를 연상시킨다. 때문에 <세뇌>는 책임있는 대한민국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한다.

그러면 이 미친 세상의 구조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 아들딸을 보호하기 위해 이 책을 읽길 권한다. 왜 요즘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외려 미국을 미워하고, 부자-기업을 비난하는지 의아한 적이 있으신가? 당신부터 공부해야 젊은이를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효용적 가치보다도 우리 시대 지식사회 전체를 성찰하기 위한 텍스트다. '지식인들의 배반과 타락'이 왜 그렇게 기승을 부리는지에 대한 암시도 얻을 수 있다. 또 있다. 어찌됐던 미국 사회야 틀이 잡힌 곳이고 주류사회가 아직은 건강한데 비해 우리는 그렇지 못한데도 왜 그렇게 지식인들의 배반과 타락 극성을 부리는지도 이 책을 보며 새롭게 진단해볼 일이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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