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적극 행사' 발언을 해명하고 나섰지만 시장과 재계의 우려가 여전하다.
국민연금공단에게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평가와 함께 '연금사회주의'를 하겠다는 선언이라는 해석까지 나오는 가운데, 법조계는 법적 걸림돌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지분 보유기업의 임원 선임과 해임, 정관 변경 등에 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월초 회의를 열어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해 주주권 행사 여부 및 행사 범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관건은 보유주식 가치를 높여 기금 수익률을 높인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국민연금의 정치적 악용이 가능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법적으로 여러 걸림돌이 대두된다는 점이다.
상장기업 지분 5%를 취득하면 즉각 신고해야 하는 지분공시의무인 '자본시장법 5%룰'이 가장 먼저 꼽힌다.
기업 법률고문으로 있는 한 법조계 인사는 이에 대해 "현재 금융위원회가 국민연금을 자본시장법 5%룰의 적용 예외로 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준비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며 "지분 보유목적을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로 전환할 경우 공시를 더 상세하고 신속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스스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려고 나서니 정작 법을 위반하는 것이 뻔해 궁여지책으로 이를 회피하려는 것"이라며 "1% 변동이 생길 경우 5일 이내에 공시를 통해 알려야 하는데 국민연금 투자전략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본시장법 5%룰 보다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은 10%룰이다.
지분을 10% 이상 가진 투자자(국민연금)가 단순투자 목적을 경영 참여로 전환할 경우 6개월 이내에 발생한 해당 기업 주식의 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한다.
이는 펀드 등 주요주주가 경영참여 공시로 주가를 띄웠다가 단기 차익을 낸 후 먹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규제인데, 국민연금 또한 10%룰을 적용받게 되면 투자수익을 반환해야 해서 연금 수익률이 떨어질 전망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왼쪽)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자료사진=연합뉴스
이뿐 아니다. 상장회사의 '이사회 거부권'(임기중인 이사의 해임 등 주주 제안을 주요주주가 할 경우)을 규정한 현행 상법도 큰 장벽이다.
국민연금 활동 범위를 규정한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재무적 투자만 할 수 있어 "스튜어드십 코드 적극 행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법조계 지적도 나온다.
기업경영에 대한 각 국민들의 '의사의 일치'를 확인할 수 없고, 이를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정부에 위임한 적 없다는 논지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국민연금은 법1조에 따르면 연금급여를 실시해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강제로 기금을 거둬 이를 매개로 수익성 제고 등 재무적 투자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초 매월 수십만원을 원천적으로 징수 당하는 국민연금 가입자 2천만명은 정부에게 민간기업 경영에 참여하라는 초법적 권한을 위임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오해가 있다며 '기업의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활동에 대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행사한다는 원칙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라며 "기업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에 상응한 사법조치가 이루어진다. 사법부의 영역이지 행정부 소관이 아니다. 정부가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시각도 마찬가지다.
연기금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지난 23일 열린 분과위원회에서 대한항공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대해 2명만 찬성하고 7명이 반대했다.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의 경우 4명이 찬성하고 5명이 반대했다.
이들은 이날 "이사 해임, 정관 변경 등 상법상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을 현재로서는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놨다.
국민연금의 최상위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겸하고 있고 4개 부처 차관이 당연직 위원을 맡고 있다. 정부 입김이 작용하기 쉬운 구조다.
위원들로는 투자전문가가 아닌 시민단체, 노조, 사용자단체 등 이해관계자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2월초 기금운용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그에 따라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 297곳 등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