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빅2'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던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발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6월 서울 다동 사옥에서 개최된 최고경영자(CEO) 기자간담회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비롯한 업황 및 우리 산업의 진로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빅2'가 바람직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31일 금융권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산업은행에 대우조선해양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지분의 55.7%(2조1500억원 규모)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정부부처도 이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산은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현대중공업 측과 협상 논의를 시작할 예정으로, 이번 인수가 타결될 경우 국내 조선업계는 기존 빅3체제에서 '1강 1중' 체제로 전환된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중공업그룹의 수주잔량은 1만1145CGT로 글로벌 조선사 1위를 기록했으며, 대우조선해양(2위)과 삼성중공업(5위)은 각각 5844CGT, 4723CGT로 집계됐다.
인수는 산은이 보유한 주식과 현대중공업지주의 주식을 맞교환하는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지주의 경우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각각 25.8%, 5.1%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이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에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최대 19.9% 매각하기로 한 것도 이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산은이 가진 대우조선해양의 지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추가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8일 아람코와 Pre-IPO 관련 투자계약서를 체결, 최대 1조8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게됐다. 아람코는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주당3만6000원 수준에 인수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이 이번 인수를 추진한 배경으로는 △과잉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 완화 △방산부문 등 겹치는 사업부문 경쟁 해소 △LNG선 협상력 제고 등이 꼽힌다. 특히 조선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상선 공급과잉을 해소할 경우 수익성이 제고될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앓던 이'로 꼽히던 '소낭골 드릴십' 인도에 성공하고 2년 연속 흑자를 낼 것으로 추정되는 등 여건이 개선된 것도 인수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양사 노조의 반발이 점쳐지고 있어 대응방안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2월 31일 노동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2018년도 임단협을 타결했다. 현대중공업 노사도 지난 30일 2018년 임단협 두 번째 잠정합의안 마련에 성공했으나, 인수 소식이 알려지면서 찬반투표를 연기했다.
잠정합의안에는 올해 말까지 고용보장이 포함됐으나, 이번 인수가 성사되면 인력 구조조정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양사의 합병은 산은과 현대중공업의 협상이 마무리되고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외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기간내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으며, STX조선 및 대한조선의 수익성 향상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양사의 인수가 진행되면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로 있는 중소 조선업체에도 '변화'가 생길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산은은 지난 2008년 3월 지분을 매각하기로 하고 같은해 10월 우선협상자로 한화그룹을 선정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무산됐다. 이후 인수보증금 관련 소송이 불거졌으며, 법원이 한화그룹의 손을 들어주면서 산은이 1260억원을 돌려주기도 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