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나는 속도에서는 서두르지 않겠다. 우리는 단지 (핵‧미사일) 실험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유의 과장 화법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열흘도 남겨두지 않은 가운데 핵동결보다도 후퇴하는 의제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큰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해오면서 목표치를 지속적으로 낮춰왔다. 처음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이전에는 ‘아무것도 안하겠다’던 미국은 최근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했으며, 이후 ‘제재 완화’까지 언급한 이후 이제 ‘핵미사일 실험만 중단해달라’고 한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은 13일 “제재 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우리의 의도“라고 말해 협상판이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일으켰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제재 완화 카드가 제시된 만큼 북한의 대표 핵시설인 영변 핵단지의 폐기 및 검증은 물론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의 포괄적 신고가 나올지를 바라는 ‘빅딜’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개발 동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정도로 목표치를 더욱 낮춘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구나 이런 조건으로 북한에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종전선언, 대북 원유수출 제한선 상향 조절 등 일부 제재 완화 조치를 해주는 ‘스몰딜’로 이번 협상이 마무리된다면 협상의 동력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결국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지난 ‘2박3일’ 평양 체류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는 점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비건 대표는 평양에서 “북미 양측이 서로 무엇을 주고받는 협상이 아니라 서로가 원하는 것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고 말해 사실상 사흘을 허비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리고 비건 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의 후속 실무협상이 언제 이뤄지지 모르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려 하고 있어 북한과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지금 상황을 반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평양에서 비건 대표가 비핵화 로드맵과 시간표를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안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회담이 끝나면 트럼프 1기 정부에서는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일각에서는 2차 북미회담에서 비핵화 워킹그룹만 발족해도 성공이라고 주장한다. 비건 대표도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비핵화 협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를 용인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 외교무대에 나선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우방국가를 늘려가면서 버티기로 제재 탈피를 시도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기정사실화되는 일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결과이다.
가령 북미 간 핵담판에서 북한의 ‘현재핵’과 ‘미래핵’을 동결한다고 하더라도 ‘과거핵’이 있는 한 그 협상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미국이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북한 비핵화 로드맵과 시간표 도출이 절실한 이유이다.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쇼’를 벌이고도 비핵화의 길을 걷지 않았던 북한과 상대하려면 ‘돌다리도 두드리듯' 가야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이 지난 1월1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