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오는 3월 1일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대한항공은 국내 13개 도시, 해외 43개국 111개 도시에 여객 및 화물 노선을 보유하고 있는 굴지의 항공사다. 2018년 1월부터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전용 터미널로 사용하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대한항공의 전신은 대한항공공사다. 정부는 1946년 설립된 대한국민항공사를 1962년 인수해 교통부 산하의 국영 항공공사로 두고 전폭 지원했지만, 적자 누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조중훈 당시 한진상사 회장에게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부탁했다. 하지만 한진상사 직원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며 적자 공기업 인수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그럼에도 조중훈 회장은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이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곳’이라는 믿음 하에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결정, 1969년 3월 1일 (주)대한항공을 출범시킨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대한항공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성장했다”고 폄훼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지원이 아닌 적자내던 공기업을 민영화해 굴지의 항공사로 키워냈다고 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부실했던 공기업, 민영 항공사로 거듭나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일하는 직원보다 노는 임원이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였다고 한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임원이 일반 직원 수보다 많았던 것이다. 이 같은 방만한 경영은 적자 누적은 물론 파산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파산 상태의 공기업이 오늘 날의 대한항공에 이른 것은 조 회장의 치열한 고뇌 덕분이었다. 조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서비스로 세계 선진 항공사들과 경쟁을 감행한다.
1970년대 초반에는 수출품을 실어 나르는 항공 화물운송에 치중하며 내실을 다졌다. 이후 70년대 중후반에는 중동으로 향하는 노동자들과 해외로 나가는 기업인들을 태우며 여객 운송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또 신생 항공사로서 겪어야 했던 여러 사고들을 수습하면서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사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 인명사고를 동반한 크고 작은 사고들은 북한의 납북, 소련의 격추, 북한 공작원의 공중 폭파와 관련이 있었다.
다만 1997년 ‘괌 사고’의 경우 기장과 부기장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가 착륙 실패로 이어져 일어났던 것으로, 이는 대한항공의 사내 문화를 크게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특히 조양호 회장은 괌 사고 이후 안전 문화를 최대 목표로 삼고, 외국인 임원을 채용하는 등 조직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세계적인 항공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대한항공이 시작부터 특혜로, 또는 정경유착으로 흑자 공기업을 손쉽게 인수해 키운 것으로 보는 세간의 시각은 교정돼야 한다”며 “조중훈의 사업가적 용기와 판단, 투자, 그리고 불굴의 노력 없이는 지금의 대한항공도 없었다”고 말했다.
1973년 5월 16일, 보잉 747점보기의 태평양 노선 취항식에서 한진그룹 조중훈(왼쪽 네번째) 창업주가 정∙재계 인사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는 모습. /사진=대한항공 제공
정부 입김 스멀스멀…다시 과거로 돌아가나
민영화로 성공을 거둔 대한항공이 다시금 정부의 손아귀에 들어가려 하고 있다. 지난해 촉발된 이른바 총수 일가의 ‘물컵 사태’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 정부가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경우 민간 기업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만큼 기업 경영에 대한 참여 역시 필연이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국민에게 지급될 돈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경영권에 개입하고, 개별 사건에 개입하는 것은 엄연한 ‘관치’라는 지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회의적인 시각은 적자를 면치 못한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민영화에 성공한 조 회장의 소신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조 회장은 회고록 ‘내가 걸어온 길(1996, 나남)’을 통해 “대한항공공사의 실패는 경제활동이란 결국 민간의 자율에 순리적으로 맡겨야지 정치력에 의해 억지로 주도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것”이라며 민간 자율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박수영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논란은 정부만능주의 논쟁과도 관련이 있다”며 “국가, 정부, 공공부분이 모든 결정을 내리고 이끌어갈 만큼 유능하고 투명하지도 않은 현실이 감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