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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이병철 사업보국 살려야 박근혜경제 산다

2014-07-20 11:4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지금 서울에서 열리는 많은 대중강좌 중 기업인이라면, 지적 호기심 많은 젊은이라면 흥미롭게 지켜볼만한 게 ‘대한민국 기업가 열전’이 아닐까? 재미와 교양으로도 훌륭하지만, 과장하자면 우리가 소망하는 한국경제 회복도 이 강좌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

활기를 잃어가는 기업가 정신의 회복 없이 한국경제의 앞날이 밝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프리덤팩토리 대표)가 7월 7일 첫 강의를 시작한 뒤 10월까지 매주 한 차례씩 열리는 13부작 마라톤 강좌(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 센터 2층)가 문제의 공간이다.

강좌 제목만 봐선 평범해보인다고? 그게 아니다. 기업인이야말로 한국 역사의 중요한 한 축인데, 요즘 단행본이나 교과서에 기업인의 이름과 활약상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요즘 말로 ‘투명인간’에 불과하다. 한국사회 특유의 반기업심리 탓일까? 좌편향 역사교과서에서 이들의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경제교과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교과서는 대학 경제원론 강좌의 축소판이라서 수요 공급의 법칙, 인플레이션, 환율 등 추상적 얘기는 수두룩해도 막상 기업가 이야기는 쏙 빼놓는다.

왜 단행본이나 교과서에 기업인은 ‘투명인간’으로 등장하나

교과서와 단행본을 포함한 우리시대 지식과 정보영역의 이런 놀라운 왜곡은 무책임할뿐더러 아찔한 사회불안의 요소로 등장했다. 김 교수의 강좌는 이걸 바로 잡는 담대한 노력이다. 일테면 그가 두 차례 진행했던 강좌에서 밝힌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은 서기 578년에 설립된 콩고구미(金剛組의 일본식 발음)이고, 설립자가 백제 사람 유중광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이지만 흥미롭다. 거상(巨商) 임상옥과, 제주 상인 김만덕도 근대 이전에 출현했던 기업인 스토리로 충분히 의미있다.
 

하지만 내 관심은 7월 21일(월요일) 강좌다. 현재 두산그룹의 출발인 보부상 박승직의 활약과, 경성방직 김성수-김연수 형제, 조선최고 부자 박흥식 얘기가 두 시간 동안 펼쳐지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경제를 말할 때 박정희대통령의 1960~70년대 개발연대에 그치지만 그건 짧은 인식에 불과하다. 개발연대 등장에 앞서 산업화 예비기가 있었고, 그게 일제시대 경성방직 등 제조업의 대거 출현이라고 나는 믿는다. 참고로 ‘재벌’이란 용어 자체가 1930년대 만들어졌다.

   
▲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가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기위해 <대한민국 기업가열전>을 강의하고 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있다면, 일제시대에는 경방이 있었다

일제시대 제조업의 출현을 짐짓 외면하고 싶으시다고?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순 있으나, 통계수치를 무시하는 건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일테면 1910년 무렵 10인 이상을 고용한 공장은 한반도에 151곳이 있었는데, 한국인 소유는 39개에 불과했다. 개항 직후 30년 동안 벌써 일본자본이 밀려들어온 탓이다. 그런데 1939년 무렵에 5인 이상을 고용한 공장은 6953곳인데, 한국인 소유는 놀랍게도 4185개로 늘었다. 그 뿐인가?

1911년 한국인 단독 설립회사는 27곳에 납입자본금 270만 엔에 불과했던 것이 1939년엔 2385개에 납입자본금은 1억4331만 엔에 달했다. 그런 한국인 회사 중 가장 성장했던 간판 기업이 인촌 김성수와 김연수 형제가 세운 경성방직(주)였다. 1930년대에 베이징에 사무실을 두고 만주 대륙을 호령했으며, 일본 오사카에 진출했으니 글로벌 기업이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있다면, 일제시대에는 경방이 있었다는 게 정확한 말이다. 경방이 한국인이 경영한 근대기업의 최고봉이라는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변함 없다.

에커트가 쓴 <제국의 후예>와 주익종 박사의 문제작 <대군의 척후>

고백컨대 필자가 섣부르게나마 이런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은 학술서 두 권 덕분이다. 카터 J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제국의 후예>(2008년 푸른역사 펴냄), 경제사학자 주익종 박사가 쓴 <대군의 척후>(2008년 푸른역사 펴냄)가 문제의 책이다. 오래 전 이 책을 접한 뒤 20세기 이후 기적처럼 성장한 한국경제 성장의 전체 모습을 파악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책 두 권에 담긴 학문적 진실을 언젠가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제국의 후예>를 쓴 에커트 교수는 하버드대 대학원생 시절 미 평화봉사단 출신으로 한국에 8년간 체류(1969~77년)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도 같은 평화봉사단 출신으로 훗날 한국의 386세대들에게 깊은 영향을 줬지만, 한국학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에커트의 공적은 외려 덜 알려졌다. 반면 국내학계 내부에서는 에커트가 쓴 책은 정말 핫했다. 어떤 학자는 “이 걸 읽은 뒤 판에 박힌 민족주의 사관을 벗어났다”고 환호했는가 하면, 적지 않은 이들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너무 우호적이라고 투덜댔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이 책을 무시 못했다.

   
▲ 김정호 대표가 조선 중기 상인의 복장을 하고 양반들의 멸시를 받으며 상공업을 개척했던거상들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소설가 춘원의 대예측 “한국경제 영광의 날 올 것”

부분만 읽고 내 논에 물 대기 식으로 인용되는데 그치던 이 책을 정성껏 번역한 것은 번역자 주익종 박사의 공로다. 딱딱한 듯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살아있는 이 책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경방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와 한국산업화의 예비기인 일제시대의 큰 그림이 비로소 드러났다. 학문적으로는 일제시대 기업사를 다룬 한국학의 수준이 국제학계 수준으로 성큼 올라간 것이다. 주 박사는 번역자에 머물지 않고 한국인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경방을 해석한 별도의 문제작을 펴냈는데, 그게 문제작인 <대군의 척후>다.

내가 보기에 <대군의 척후>와 <제국의 후예>는 쌍벽(雙璧)이고, 한 세트로 읽어야 옳다. <제국의 후예>는 미국 연구자의 시각으로 한국경제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줬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은데, 그걸 채워주고 넓혀준 것은 <대군의 척후>이다. 서술 하나하나에 배어있는 리얼리티는 단연 이 책이다. 제목만해도 그러한데, 책 제목은 소설가 춘원 이광수의 글에서 따왔다.

로마가 그러하듯 한국경제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상업에서 화신(和信), 공업에서 경성방직의 확장 발전은 결코 한낱 사실만이 아니요, 뒤에 오는 대군(大軍)의 척후(斥候)임이 확실하다.”
이글은 춘원이 조선일보 지면에 1935년에 쓴 글인데, 화신과 경방에 대한 덕담을 넘어선다. 훗날 만개할 한국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앞날을 예견한 듯한 발언이라서 가슴 뭉클하다. 화신과 경방은 훗날 어마어마한 대병력이 몰려올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담대한 비전은 그동안 우리가 춘원을 너무 과소평가해오지 않았나 하는 회한마저 안겨줄 정도다. 어쨌거나 주익종 박사의 말처럼 경방이 펼쳐온 제조업과 언론-문화사업은 당대 최고봉이었고, 지금 우리는 그 후광 속에서 산다.

   
▲ 박근혜대통령이 규제혁파와 경제민주화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과감한 규제혁파을 통해 기업가정신을 회복하지 않고는 투자와 일자리창출 등 경제회복은 성공하기 힘들다. 개뱔연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정주영 현대창업주, 이병철 삼성창업주, 박정희 대통령(왼쪽부터)

한국 근현대기업사는 단절성 못지 않게 연속성도 있다

(주)경방, (주)삼양사가 여전히 살아있고,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도 인촌 김성수와 경방이 드리운 큰 그늘 안에서 숨 쉬고 있지 않은가. 한국 기업사는 이토록 단절성 못지 않게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김정호 교수의 연속강좌가 이걸 잘 규명해줄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내가 책에서 본 얘기를 더 펼쳐주고 큰 그림을 그려주길 기대한다. 사실 평소 그가 자주 하는 말처럼 영국 산업혁명의 주역인 제임스와트가 기업가였고, 미국 경제기적의 상징인 토마스 에디슨이 기업가였다.
 

이제 기업가들을 역사의 전면에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초의 현대적 기업 설립자 박승직, 조선최고의 부자 박흥식, 그리고 삼성 창업주 이병철과 현대창업주 정주영, 삼성 이건희회장, 현대차 정몽구회장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관심이다. 참고로 김 교수는 8월11일 강좌 제목을 ‘대군의 척후들: 이병철, 구인회, 신격호, 최종건, 김성곤’으로 잡아놓았다.

필자의 글과는 시각이 조금씩 다른데 큰 줄기는 같다고 본다. 참고로 <제국의 후예>, <대군의 척후> 두 권은 근대기업사만이 아니고 빛과 그늘이 함께 있는 일제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암시도 준다. 그 얘기는 다음에 별도로 다룰 생각이다. [미디어펜=조우석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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