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준 기자] 당내 통합을 중요시하겠다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꺼내 들었다. 전통적 보수 지지층의 결집을 노린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자칫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는 계파 갈등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황 대표는 지난 7일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을 향해 “박 전 대통령이 오래 구속돼 있었고, 건강도 나쁘다는 말씀을 들었다”며 “구속된 상태로 재판이 계속되는 문제에 대해 국민의 여러 의견이 감안된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선 전당대회 기간, “과거로 되돌아가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했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은 법적으로 사면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면은 형이 확정된 경우에만 가능한데, 국정농단을 둘러싼 박 전 대통령의 대법원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라서다. 공안검사 출신인 황 대표가 이 부분을 몰랐을 리 없다는 지적이 자연스레 나오는 대목이다.
친박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나경원 원내대표도 같은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형이 지나치게 높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이 많이 공감할 것 같다. 사면 문제는 정치적인 어떤 때가 되면 논의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황 대표와 궤를 같이했다.
한국당 지도부가 일제히 박 전 대통령 사면 카드를 꺼내든 것은 친박계가 당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최근 단행된 당직 인선에서 사무총장에는 한선교, 전략기획부총장에는 추경호 등 친박 성향의 의원들이 각각 임명됐다. 당 대표 비서실장과 대변인에도 이헌승·민경욱 등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을 놓고 한 원외 인사는 “친박계의 비박계 견제”이라고 평했다. 과거에 비해 결집력이 약해진 비박계가 주요 선거를 앞두고 다시 뭉치기 전에 친박계가 ‘세 과시’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인사는 “계파 간 이전투구에서 희생되는 건 결국 박 전 대통령”이라고도 했다.
친박계의 견제가 시작된 이유로는 ‘박 전 대통령 극복’을 기치로 내걸고 개혁보수를 자처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꼽힌다. 오 전 시장은 지난 당 대표 경선에서 50.2%의 일반국민 여론조사 득표율을 보여 향후 비박계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었다. 총선이나 대선 등 국민의 지지가 절실한 상황이 오면 오 전 시장의 존재감은 다시 드러날 전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케케묵은 계파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무게가 실린다. 이미 친박계로 치중된 당내 인선을 두고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은 “아쉬운 감이 있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야권 관계자는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당이 다시 혼돈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황교안 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자유한국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