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일관계에 악재가 쌓이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으로 시작된 갈등이 레이더 조사(照射)와 초계기 위협비행으로 이어지는 안보 문제로 확산되더니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은 일본의 관세 인상이라는 보복 조치를 부를 전망이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르면 이번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 절차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따라 일본이 한국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카드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본언론은 관세 인상 외에도 일부 일본산 제품의 공급을 중단, 비자 발급 제한에 제3국 위원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 회부 절차도 언급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독도 영유권 분쟁 같은 오래된 과거사 갈등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바로 이웃한 나라가 툭하면 초계기로 위협비행을 하고, 경제‧통상 분야의 보복 조치까지 예상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지금 소강상태를 보이고는 있지만 한국 구축함의 레이더 조사(照射)는 언제라도 재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이 한국측의 레이더 조사 여부에 대해 국제적인 검증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더 갈등 초기 우리 정부가 정확한 증거를 제시해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매듭짓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일본의 주장처럼 우리측 레이더가 일본 초계기를 쏜 것이 맞다면 적대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맞고, 그럴 경우 일본 초계기의 근접비행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증거 제시 대신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 동영상을 6개국 언어로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하는 국제선전전으로 비화시켰다. 대다수 국내 언론도 정확한 팩트를 취재해 보도하는 냉철함을 잃고 정부의 주장만 받아 일본을 비판하는 보도로 일관했다.
이런 결과 일본인의 3분의 2가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생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달 18일 산케이신문과 후지TV FNN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인의 77%가 한국인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측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비율이 67.7%에 달했다.
물론 이 조사결과는 일본의 보수신문이 주도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아키히토 일왕의 사죄가 필요하다”며 일왕을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로 평한 것이 일본 여론을 악화시키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일 양국의 풀리지 않는 역사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불신은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의 반성’ 언급으로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극에 달했지만 그 이후부터 최근까지 점차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문희상 의장의 ‘일왕의 사죄’ 발언은 한국 정치인마저 국내정치에 한일갈등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고, 이런 점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다를 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의 일본’은 우파 민족주의를 표방, 자학의 역사관을 믿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본군위안부나 강제징용도 부인한다. 하지만 일본 정치인의 역사왜곡이 힘을 잘 쓰지 못했던 것은 양심있는 일본인들의 반성과 사죄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치인이 한일문제를 처리할 때 일본인의 감정을 해쳐서 반한감정까지 불러일으키는 언행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문재인정부는 과거사 문제는 지혜롭게 해결하되 경제와 안보 분야의 협력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킨다는 ‘투트랙’ 기조로 한일관계를 관리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과거사 문제에서는 정부가 양보없는 홍보전을 벌여야 하지만 물밑에서 한일의원연맹과 같은 단체가 국민감정을 다독이는 역할을 했어야 한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면서도 일본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새로운 한일관계를 모색했었다. 문재인정부도 '도덕'만을 내세워 한일갈등을 심화시킬 것이 아니라 1998년 한일 정상이 합의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는 외교적 전략을 마련할 때이다. 아직 핵개발 중인 북한과 분단국가 상태인 한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한미일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산 동구 초량동 정발장군동상 앞에서 2018년 12월26일 오후 열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을 위한 공동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강제징용노동자상 모형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