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준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며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시중에는 ‘대통령 욕은 스포츠’라는 말이 나돌았음은 물론 모든 문제를 대통령과 결부시키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여겨졌다. ‘비가 와도 대통령 탓, 눈이 와도 대통령 탓’이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은 다 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포용성은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를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인간적인 대통령’으로 남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포용성을 기억하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런 포용성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민주당의 포용성이 어느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문제가 된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는 발언은 그저 블룸버그 통신의 표현에 빗댄 것이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성과 야유를 쏟아냈다.
급기야 민주당 지도부는 이미 폐지된 ‘국가원수모독죄’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특히 국가원수모독죄는 참여정부에서 교육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해찬 대표 입에서 나왔다. 민주당이 과거를 잊고 작금의 정치 공세에만 매몰돼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질 만한 대목이다.
일단 민주당의 대응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도 곱진 않다. 범여권계로 분류되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마저 “(민주당이) 지나치게 항의를 하면서 오히려 나 원내대표를 용으로 만들어준 결과가 됐다”고 평가했다. 전언에 따르면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시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끝장을 볼 태세다. 자칫 자충수로 이어질지도 모르지만, 나 원내대표를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며 한국당과의 불편한 분위기를 극으로 끌어올린 상태다.
이쯤에서 민주당이 되새겼으면 하는 한마디를 전하고자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권력자를 비판함으로써 국민들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지난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정부가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단상으로 나가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와 마주선 이는 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