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 선출된 국무위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아랫줄 왼쪽부터)최선희 외무성 부상, 김재룡 내각총리, 최룡해 제1부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박봉주 부위원장, 리만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용호 외무상. (윗줄 왼쪽부터) 정경택 국가보위상, 로광철 인민무력상, 최부일 인민보안상,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태종수 당 중앙위 부위원장, 리수용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김수길 총정치국장./조선중앙통신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차 북미정상회담에 나설 의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대화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 박고 미국의 입장 전환을 촉구했다.
동시에 남한을 향해서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전날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2일차 회의 때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 내용을 보도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나온 북한의 공식입장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며 “제재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일괄타결 식 빅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사실과 입장에 대해서도 밝혔다. “미국식 대화법에 흥미가 없다”고 말해 트럼프행정부를 겨냥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신뢰를 유지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전략적 결단과 대용단을 내려 내짚은 걸음들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자아냈다”면서 “미국이 진정으로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있는가 하는 데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한 계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물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중시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 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며 "우리는 2차 북미정상회담과 같은 정상회담이 재현되는 데 대해서는 반갑지도 않고 할 의욕도 없다"고 했다.
또 북한의 탄도미사일 요격을 가상한 시험과 한미군사훈련 재개에 대해 경계했다. 그는 “나는 이러한 흐름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이 노골화될수록 그에 화답하는 우리의 행동도 따라서게 되어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다.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시정연설을 계기로 남한에 대해 같은 민족인 북한 쪽에 서는 당사자가 되라고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은 남조선 당국에 ‘속도 조절’을 노골적으로 강박하고 있으며, 북남합의 이행을 저들의 대북제재 압박정책에 복종시키려고 각방으로 책동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어 "나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면 판문점상봉과 9월 평양상봉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와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며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내부를 향해서는 자력갱생을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 노선을 이어가자며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기강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에 배치되는 요구를 제재 해제의 조건으로 내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대치는 어차피 장기성을 띠게 되어있다”며 “적대세력들의 제재 또한 계속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항시적 제재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왔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에 만성화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장기간의 핵 위협을 핵으로 종식한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 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가활동에서 인민을 중시하는 관점과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과정에 일군들 속에서 세도와 관료주의와 같은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며 '부패와의 전쟁'을 이어갈 것을 시사했다.
이날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없던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지속해왔었으므로 할아버지 통치 스타일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