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한미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장이 나왔다. 아버지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이어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으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하면서다.
지난 하노이의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입장이 처음 나온 것으로 그 내용을 압축해보자면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 ‘남한은 중재자 말고 당사자로 역할하라’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한번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면서 올 연말까지라고 시한을 못박았다. “2차 북미정상회담과 같은 회담이 재현되는 것에는 의욕이 없다”고 말해 하노이에서 미국이 내걸었던 일괄타결식 빅딜 협상을 거부했다.
또 김 위원장은 트럼프행정부에 대해서는 경계를 보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다”고 했다.
앞서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따로 낸 발표문과 김 위원장의 연설 내용을 비교해보면 북한은 한미가 합의한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이어간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만간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조속히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김 위원장은 이번에 문재인정부를 겨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밝힌 데 이어 김 위원장도 직접적인 메시지를 낸 만큼 차기 북미정상회담은 이뤄질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저평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각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나설 명분을 만들어주면서 대화 동력을 살렸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데 실패하면서 4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지렛대를 찾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와 같은 남북경협 추진을 논의하고 싶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만큼 양 정상이 마주앉았을 때에는 제대로 협의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러 갔지만 오히려 북한의 결단을 받아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고, 이런 문 대통령에게 북한은 다시 북한의 입장에 설 것을 촉구하고 있어 북미가 서로 문 대통령에게 자신의 편에 서는 당사자가 돼라고 압박하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서 강조했듯이 북한은 자력갱생에 매진하면서 조만간 북러정상회담 개최와 이달 26일에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하는 등 우방국들과 협력을 다질 것으로 보여 문 대통령이 계획하고 있는 판문점선언 1주년 계기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미지수이다.
그런 한편, 문 대통령이 준비한 ‘굿 이너프 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을 고수하며 ‘올바른 합의’를 강조했지만 동시에 ‘단계적’이라는 말을 수차례 썼다. 앞으로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통해 먼저 비핵화 개념에 합의하고, 비핵화의 최종 상태에도 합의를 이룬다면 청와대의 입장처럼 ‘조기 수확’을 거두는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도 가능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이 미국에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올 연말까지 시한을 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면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기조가 더욱 강고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하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미국 국내정치 차원에서 북미 간 긴장유지를 강화하는 것이 선거에 더 유리할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오벌오피스에서 양국 정상의 부인과 함게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