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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화평 인터뷰➁]"산업화 완성시킨 5공…재평가 돼야"

2019-05-01 12:38 |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내 생애 통틀어 가장 때 묻지 않고, 이상과 희망에 부풀었던 시기는 육사 시절이었어. 그런데 현실에 부딪히면서부터 복잡해졌지. 타협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온갖 일들이 엉켰어.”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미래한국재단 사무실에서 미디어펜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5공화국의 ‘실세’로 꼽히는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리즈시절’을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로 꼽았다. ‘리즈시절’은 전성기나 황금기 등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신조어다. 찬란했던 과거 시절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허 이사장은 “난 육군사관학교 시절이 제일 좋았어. 사관학교에서는 희망과 이상이 있었어. 그 이후에는 긴장된 세월이 계속 됐고, 내가 맡은 분야에서 몸부림 쳐야 했다”고 회고했다.

다만 육사를 졸업한 후의 시간을 ‘긴장된 세월’이라고 규정하면서도 5공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허 이사장은 5공에 대한 평가가 비판적인 것에 대해 “어떤 정권도 비판을 면할 수 없고, 그게 권력의 속성”이라면서도 “5공에 대한 평가 작업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 업적인 ‘산업화’를 마무리 지은 것도 5공화국이라고 강조했다.

허 이사장은 “대한민국에 중산층을 만든 게 전두환 정권”이라며 “그때 국민들이 ‘마이카’, ‘마이홈’이라는 꿈을 가졌다”고 회고 했다. 

이어 “정부는 기업을 위해 최대한의 백업을 했는데 그건 민간이 주도가 돼서 열심히 하라는 방침이었다”고 설명했다. 비로소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시대가 가고 민간주도경제 시대가 온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당시 김재익 등 경제 관료들이 많이 노력했다”며 “해방 이후 묶여 있던 규제를 푼 것도 그때”라고 말했다. 또 “세간의 평가대로 독재를 하려고 했다면 통행금지도 풀지 않았을 거고, 여행 자유화도 허락 안 했을 것”이라며 “연좌제를 폐지한 것도 5공 때”라고 했다. 

허 이사장에게 ‘실세’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 것에 대해서는 “5공에서 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권력을 남용한 사람도 아니고 맡겨놓은 일만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날 욕해도 난 별로 관심이 없고 욕해도 좋다”고 털어놓았다.

좌파 정부가 들어선 뒤 내리막길을 겪고 있는 현 세태에 대해서도 “좌파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데까지 가있다”며 “내려올 일만 남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끼리 규합해서, 국민의 힘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된다”며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허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미래한국재단 사무실에서 미디어펜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악명 높은 전두환 정부의 실세’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현대사에서 칭찬 받는 정부가 있나? 없어. 우파가 칭찬하면 좌파가 반대하고. 좌파가 칭찬하면 우파가 반대하고. 어떤 정권도 양측으로부터 칭찬 받는 정부가 없어. 다만 5공화국에 대한 오해가 깊은 것은, 5공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그렇다고 봐. 지금 젊은 세대는 5공에 대해 흘러가는 소리라도 좋은 이야기는 못 들어 봤을 거야. 전부 욕만 하지. 어떤 정권도 비판을 면할 수 없고, 그게 권력의 속성이야. 칭찬만 듣고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사람은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한 적도 없어. 비판을 두려워하거나 골치 아프게 생각하면 안 돼. 5공을 폄훼하고 허화평 욕을 한다? 그래서 어쩌겠는가, 다 지나간 이야기인데. 다만 5공은 다시 평가 작업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법을 만들어서 우리를 재판한 건 현대사에서 가장 큰 정치재판이었다. 정치재판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거야. 5공이 잘했고, 못 했고를 떠나서 정치 재판은 믿을 이유가 하등 없어. 대신 진실을 알 필요가 있지. 이건 5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법치 확립을 위해서야. 당시 권력이 검찰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우릴 처벌했다고. 내가 재판을 받아봐서 아는데 그건 재판도 아니었어. 혁명 재판이었지. 제멋대로였어. 예를 들어 전두환 대통령을 5.18 사태의 발포 명령자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못 만들었어. 어떻게 해도 안 되지, 그런 일이 없으니까. 자위권 발동을 했을 뿐 발포 명령은 누구도 안 했어. 헬기사격 했다? 그때 다 조사했지만 그런 일이 없는 것으로 재판 결과가 나왔어.”

-사법농단은 그때부터 시작됐던 모양이다.

“그렇지. 전체적으로 YS가 원하는 대로 재판 결과가 나왔어. 때문에 그 결과를 진실로 믿는다면 지금 진행되는 현상이 계속 될 수밖에 없어. 권력의 필요에 따라 특별법 같은 것을 만들어서 법의 이름으로 정치 보복을 하는 거야. 우리가 재판 받을 때 MBC에서 드라마를 만들었어, 아주 불리하게. 그래서 여기에 대해 고발하면 검찰이 조사도 안 해. 방송국에선 “드라마일 뿐”이라고 빠져나가고. 우리가 힘이 없으니… 모든 언론 매체를 통해 여론을 몰아가서 내린 게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야. 5공과 관련된 역사는 지금도 시비가 진행 중이고. 오늘은 전두환이지만 내일은 누가 될지 몰라.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거야. 때문에 이건 전두환이나 5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바로 잡아야 돼.”

-5공의 비전은 무엇이었나?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 1인 독재가 영원히 불가능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것을 답습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다만 18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한 통치를 하다 돌아가셨으니 사회가 시끄러웠어. 여러 가지로 복잡했지.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룰을 적용할 여유가 없었어. 몰라서 못한 게 아니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했어. 개인적으로 괘씸해서가 아니야. 나중엔 그 사람들 다 복권시켰으니까. 그것 말고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잡아넣거나 그런 일이 없었어. 우리는 우리나라가 잘된다는 생각뿐이었어. 박정희 대통령이 깔아놓은 산업화를 5공이 마무리 한 거지.”

-산업화를 마무리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창원공단, 울산공단을 만드는 와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어. 이런 작업들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빚도 갚고, 올인 하다시피 해서 성공시켰지.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를 전두환 대통령이 마무리했다고 봐야 돼. 대한민국에 중산층이 생긴 것도 그때야. 중산층을 만든 게 전두환 정권이지. 이건 아주 의미가 커. 그때 국민들이 ‘마이카’, ‘마이홈’이라는 꿈을 가졌어. 나도 집을 살 수 있다, 내 차를 살 수 있다는 열기에 사로 잡혔고. 정부는 기업을 위해 최대한의 백업을 했어. 민간 주도가 돼서 열심히 하라는 방침이었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시대는 끝났으니… 민간주도경제 시대가 온 거야. 당시 김재익 등 경제 관료들이 많이 노력했어. 해방 이후 묶여 있던 규제를 푼 것도 그때야. 세간의 평가대로 독재를 하려고 했다면 통행금지도 풀지 않았을 거고, 여행 자유화도 허락 안 했겠지. 연좌제를 폐지한 것도 5공 때야.” 

-전두환 정부가 88올림픽도 유치했다.

“88올림픽 유치는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큰 이벤트였어. 이건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야. 분단된 국가에서 미국/소련 양 진영이 다 참여해서 행사를 치렀지. 전 세계가 지켜보는데 한국이라는 분단국가가 기똥차게 잘 사는 나라 같은 거야. 그게 동구권이 무너지는데 영향을 줄 정도였다고.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는데, 강대국하고 붙어서 금메달도 따니까 진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국민들도 많이 고무됐었지. 이후에 반도체도 개발하고 조선, 자동차 사업도 발전하고. 올림픽이 우리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모멘텀이 됐어. 뿐만 아니라 우리 5공이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약속도 지켰다고. 그것 하나만 놓고 봐도 전두환 대통령한테 보복하고 그러면 안 돼.”

-아쉬운 점은 없는가.

“전두환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소임을 다했어. 다만 친인척 관리를 잘 못했을 뿐, 성공한 대통령이야. 그럼에도 정치 보복을 받는 건… 내 추측이지만, 좌파들이 전 대통령을 가장 겁냈던 것 같아. 다른 사람은 겁이 안 나는데, 전 대통령을 우리에 갇힌 호랑이로 보는 거지. 그러니 기회만 되면 누르고, 모욕을 주고, 재산을 빼앗았지. 전 대통령의 재산을 뺏어간 건 박근혜 대통령이야. 전두환 추징법이라는 걸 만들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그래도 5공을 정의해 보자면, 위기를 관리한 위기관리 정권이었고,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간으로 가는 징검다리 정권이었고, 중산층을 두텁게 한 정권이었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한 정권이었어. 이런 토대 위에 민주주의가 꽃피운 거지. 이런 게 마련돼 있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실현될 수 없어.”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미래한국재단 사무실에서 미디어펜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김재익 경제수석을 견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난 김재익 수석과 사이가 좋았어. 괴롭힌 일도 없고. 지금이나 그때나 경제수석이 이권이 제일 많은 데야. 그래서 경제 수석에 부탁할 일이 많은데, 나 경우엔 경제 수석 사무실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 사람 하는 일에 간섭도 안 했어. 그러니 나하고 사이가 나쁠 게 없지. 그런데 왜 그런 말이 나왔나 보니 금융실명제 때문이야. 당시 강경식 재무장관하고 김재익 수석 두 사람이 실명제 법안을 대통령한테 사인 받아서 이걸 실시해야 된다고 하는 거야. 그때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고. 내가 정무수석으로 있을 땐데, 나도 뭔지 봐야지, 하고 들여다보니 실명제 하면 정권이 무너지겠더라고.”

-그래서 반대했나?

“반대했지. 김재익은 금융실명제를 통해 지하경제를 오픈 시켜 세수를 늘리고 부정부패를 막는다는 논리였지.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나 지구상에 지하경제가 없는 나라는 없어. 당시 내 판단으론 이걸 시행하면 정권이 무너지겠더라고. 그래서 회의를 했어. 비서실장 주재로. 거기서 얘기했지. ‘나는 육사 나온 사람이고 당신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 받은 사람인데 육사 나온 사람도 일처리를 민주적으로 하는데 당신은 더욱더 민주적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이 중요한 법안을 관계 참모들하고 협조도 안 하고 대통령 사인 받아서 일방적으로 하냐, 지극히 비민주적이다’라고. 그리고 ‘이건 당신의 업무지만,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면 당을 설득해야 되니 내 일이 된다. 당신이 그거 가서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대통령이 보안유지 하라’고 했대. ‘청와대에서는 어떤 일이든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석 이상은 비밀이 있을 수 없다. 협조를 하지 않고 대통령 사인 가지고 하라는 거냐’고 얘기했지. 딱 한번 그랬었어. 

-흔히 5공 경제를 김재익이 살렸다고 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욕을 많이 하지만, 경제는 잘 됐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말을 못해. 그렇다고 전 대통령을 칭찬해주기 싫은 거야. 그래서 만들어낸 말이 ‘5공 경제는 김재익 경제다’라는 거야. 실제로 전 대통령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김재익은 성실한 사람이야. 수석이 되면 장관과 대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교환할 배짱이 있어야 돼. 물론 장관을 누르면 안 되지만. 그런데 보니 김재익은 장관한테 눌려서 장관 컨트롤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전 대통령이 한번은 의도적으로 경제부처 장관들 다 모인 자리에서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했대. 장관들 보고 김재익 수석의 이야기를 존중하라는 뜻에서 그렇게 한 거지.”

-훌륭한 참모에 훌륭한 대통령이다.

“김재익은 훌륭한 경제 참모였어. 그리고 참모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도 전두환 대통령이었고. 아무리 훌륭한 의견이라도 대통령이 안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잖아. 대통령이 결심해야 할 문제라고. 물론 훌륭한 참모의 보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방향키를 잡고 그걸 현실에서 적용하는 건 대통령이야. 따라서 5공의 경제는 전두환 경제인 거지. 대통령은 새벽에 일어나서 이 사람 저사람 불러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 그런 부단한 노력 끝에 경제가 된 거야. 세간에는 전 대통령이 국제그룹을 해체시킨 거라고 하는데, 천만에. 내분에 의해 무너진 거야. 도저히 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무너진 거라고. 그런데 대통령이 기분 나빠서 그랬다고? 말도 안 돼. 대통령은 기업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한 사람이야.”

-5공 하면 ‘독재’를 떠올리는 세태가 안타깝다.

“다른 거 다 차치하더라도 평화적 정권교체, 중산층 건설, 3대 악법(연좌제, 해외여행 금지, 통행금지)을 없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러니 5공에 대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을 다시 해야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언젠가 다시 되겠지. 5공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게. 다들 나보고 실세라고 하는데, 5공에서 나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권력을 남용한 사람도 아니고, 실세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 하하. 난 맡겨놓은 일만 열심히 했다고.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 욕해도 난 별로 관심이 없어, 욕해도 좋아.”

-이사장님의 ‘리즈시절’이 언제인지 궁금하다.

“리즈시절이 뭐야. 화려한 골든타임? 난 육군사관학교 시절이 제일 좋았어. 사관학교에서는 희망과 이상이 있었어. 그 이후에는 긴장된 세월이 계속 됐고, 내가 맡은 분야에서 몸부림 쳐야 했고. 물론 1957년은 자유당 말기였고 사회적 부패, 빈곤이 난무해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어. 지금 우리가 겪는 이런 절벽하곤 또 다른 거였어. 그래도 나는 역사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군대에 가서 자주 국방 하는데 가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역사상 자주국방을 해본 일이 없으니까. 자주 국방의 역사가 없는 신생 독립국가에서 훌륭한 군의 간부가 돼서 정예 육군을 만드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그것도 우리 시대에 보람이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한 거지. 그래서 사관학교에 갔는데. 그때 우리는 당시 부잣집 아들들보다 더 잘 먹었어. 고기, 생선, 빵, 치즈 같은 것들. 그래서 우리는 국가에 감사해야 돼. 가난한 나라에서 우릴 길렀으니. 난 늘 그 생각 갖고 있어.” 

-육사 때가 리즈시절이었다는 게 놀랍다.

“당시 선배들이나 훈육관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귀하들은 호국의 간성이다'라는 거였어. 이 얘길 들으면 가슴이 뜨거워졌지. 간성은 성을 지키는 간부라는 말이야. 얼마 전 육사 후배들 앞에서 강연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말했지. ‘우리 생도 때는 호국의 간성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유니폼을 입고나면 어떻게 됐나, 진짜 호국의 간성이 되는 거라고. 그럼 예편한 다음에는 뭐냐? 그땐 나라가 부르든 안 부르든 관계없이 우리는 조국의 수호자야. 예편했어도 여전히 조국을 지켜야 할 국민적 시민적 사명을 갖고 있는 조국의 수호자. 그럼 죽으면 어떻게 되나? 죽으면 호국의 영령이 되는 거지. 우리 육사 출신은 이런 입장에 있지 않겠냐고, 용기를 가지라고 얘길 했는데. 돌아보면 그래. 내 생애 통틀어 가장 때 묻지 않고, 이상과 희망에 부풀었던 시기가 그 시기였어. 그런데 현실에 부딪히면서부터 복잡해졌지. 타협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온갖 일들이 엉켰어.”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씀이 있으신가?

“우리 세대는 건국, 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다 겪은 세대야.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우린 그렇다고. 내가 봤을 때 앞으로 북한 체제는 무너질 거야. 무너져야 되고. 그러면 남한의 사상 투쟁도 마무리 되겠지. 그 전까진 계속 될 거야. 지금은 좌파들은 피크에 가 있어. 난관이 있나. 전부 다 사찰하고 있잖아. 우파는 밀려가지고 낑낑대고 있고. 그러나 이게 극에 달하면 내려와야 되는 거야. 이게 주역의 원리인데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데까지 갔잖아. 좌파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데까지 가있어. 젊은 사람들끼리 규합해서, 국민의 힘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돼. 희망 가져야 해. 자네들이 희망을 갖게.”

-끝

■ 허화평 이사장

1937년 포항시에서 출생
1957년 포항고등학교 졸업
1961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보안사령부 사령관 비서실장
청와대 정무 제1수석비서관
1983년 미국 헤리티지재단 수석연구원
1988년 귀국
제14대~15대 국회의원
현)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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