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희 전 방통위 대변인 |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야당의 텃밭인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아니 그의 ‘바보정신’을 떠올렸다.
기자 시절이었던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종로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을 동료기자들 몇 명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종로를 등지고 민주당의 불모지였던 부산 강서-을 출마를 공언한 터였다. 왜 쉬운 종로가 아닌 부산으로 가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종로에서 한번 더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느냐. 누군가는 지역주의의 벽을 깨뜨리려고 도전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대권에도 도전해 ‘지역주의’를 깰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를 기자들은 ‘자칭 대권후보’라고 불렀지만 무언가를 열망하는 강렬한 눈빛에서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의 그의 도전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바보 노무현’으로 상징되며 정치적 자산이 됐다.
이정현 당선자에 대한 나의 기억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변인으로 일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간의 격전을 벌일 당시 그는 정말 열정적이었다.
모든 이슈에 대해 ‘박근혜 코드’에 집중시켜 격한 톤으로 침을 튀겨가며 조목조목 설명하고 반박하는 그의 큰 입에 기자들이 질릴 정도였다. “선배, 선배말이 다 맞아. 이제 알았으니 기사 좀 쓸께요”라고 해야 그는 물러섰다. 그러나 그런 그의 우직함과 정열을 싫어하는 기자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는 ‘Mr.진정성’이다.
사실 이 당선자가 다시 순천·곡성에 출사표를 던졌을 때 ‘이정현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동작을’ 후보로도 거론됐지만 그의 선택은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계란’이 되는 것이었다. 3전4기이다. 홀로 자전거를 타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1년8개월만 쓰고 버려 달라”고 호소하는 그의 모습을 TV에서 보았다. ‘저 정도면 유권자들이 질리겠는 걸’ 하고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가 이긴 상대후보가 노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수행비서 출신인 서갑원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사진=뉴시스 |
흔히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임이라고 한다. 상대당과의 대립구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선거판에 중요한 역할을 미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던 유병언 수사 난맥, 공직 인사 실패 등의 호재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변변한 선거 프레임을 만들지 못했다.
이 같은 프레임의 공백을 대신한 것은 결과적으로 ‘진정성’과 ‘정치공학’의 대결구도였다고 본다. 새누리당에서는 당대표 경선을 통해 이너서클이었던 ‘친박’후보들을 물리치고 김무성 의원이 대표에 선출되면서 신선함을 준 반면 야당의 김한길-안철수 체제는 출발부터 정치공학의 산물이었다.
야당 지도부는 새로운 정치적 메시지를 생산해 내지 못한 채 당내· 당외의 정치공학에만 골몰했다. 미래 당내의 역학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호남세력화의 가능성이 있는 천정배의 출마를 막았고, 광주 광산을에서 선거운동하던 기동민을 느닷없이 동작을로 불러올렸다.
이로 인해 기동민과 친구사이였던 허동준의 반발로 공천 파동이 일었고(요즘 ‘으으리’가 왜 유행어가 되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광산을에선 ‘권은희 역풍’의 무리수를 두었다. 돌려막기 또는 회전문 공천이었다.
선거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야권 연대’라는 정치공학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지만 실패했다. 나아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아래 여야가 꽂아 넣은 ‘정치 거물’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참패했다. 특히 야당의 대권후보급 거물들은 지역에 기반을 둔 여당의 정치 신인들에게 맥없이 물러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야당에서 ‘바보 노무현’을 주창한 사람은 안철수 대표이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을 주장하며 “국민을 믿고가자. 노무현 대통령이 바보 같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자기희생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고 했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를 비롯한 야당의 지도부는 ‘바보 노무현’의 단어만을 편리하게 차용한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에선 ‘희생’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른 약삭빠름이 이를 대신했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이정현 후보가 ‘바보 정신’을 행동으로 계승했다. 이에 대해 민심은 선거로 평가했다.
바보정신의 핵심은 진정성이다.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거창한 대의명분이라도 진정성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며, 감동도 없다. 후보들의 정치적 무게감이나 정치공학이 진정성이 가져다주는 감동과 희열을 대신할 수는 없다. 거물 후보들이 고담준론을 늘어놓아도 감동이 실종된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여의도에서 감동을 주는 바보 정치인들을 많이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정치가 국민에게 던지는 희망이라고 본다. 야당에서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해 40.33%를 득표했던 김부겸씨 같은 정치인들 역시 ‘바보계열’이다.
TV를 보니 한 정치학자는 “새누리당이 다음 총선에선 호남에 10여명도 갈 수 있다”는 다소 황당한 예측을 들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정현의 승리는 ‘선거혁명’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확대 발전될 수 있는 민심의 변화라고 예단하기 어렵다.
다른 영·호남 지역구에선 지역구도의 벽이 여전히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명의식을 지닌 또 다른 ‘바보 정치인’들의 희생적 도전이 계속된다면 이정현이 뚫은 장벽의 구멍은 점점 커질 것이다. 우울하게도 이런 바보계열들이 여야 정치권에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선거결과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아, 역사는 아름다운 바보들에 의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