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산업혁명은 흔히 '자본주의의 시작'이라고 본다. 산업혁명이 가장 빨랐던 영국은 1760년대에 시작, 1830년대에 끝났다.
그런데 왜 하필 영국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은 16세기 까지만 해도 '유럽의 변방'이었다. 그런 나라가 산업혁명의 힘으로 19세기 초 전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1848년에는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19세기 전반기에 연평균 125%, 19세기 후반에는 214%라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장률'을 달성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칼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의 원인으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강조했다.
영국은 양을 키우기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이미 모직물 산업의 발달로 부유해졌다. 개인들도 대규모 자본을 동원, 큰 공장을 세울 수 있었던 것.
모직물 산업이 발전하자, 귀족 등 전통 지주들과 부유한 자본가들은 너도 나도 경작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농경지를 양 목초지로 바꿔버렸다. 바로 '엔클로저(enclosure) 운동'이다.
그 여파로 중세 영주에게서도 보장됐던 '공유지'는 사라지고, 농노들은 자신들의 경작자에서 쫓겨났다. 이런 사태를 토마스모어는 불후의 명저 '유토피아'에서 "양들이 인간을 잡아먹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농토를 빼앗기고 도시로 몰려든 엄청난 숫자의 민중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 산업혁명의 기반'이 됐다.
엔클로저로 확립된 토지의 '근대적 법적 사유재산권'도 한 몫을 했다.
두 번째로 학자들이 꼽는 것은 '기술혁신'이다.
산업혁명은 섬유산업, 그것도 영국의 전통적 대표 산업인 모직물 산업이 아니라 '면직물 산업'에서다. 왜일까?
모직물의 원료인 양털은 너무 보드라워 기계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비단도 마찬가지다. 반면 면직물은 기계화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다비가 '코크스 제련법'을 개발하자, 석탄을 이용해 먼저 제철업이 발흥했다. 그런데 지하 석탄광산에 가스가 차서 폭발사고가 자주 일어나자,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 끝에 발명된 것이 바로 '에너지 혁명'을 불러 온,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다.
기존의 가장 큰 에너지 원은 수력이었다. 물의 힘으로 목화에서 면사를 뽑으려면, 공장들은 강의 낙차가 큰 곳에 위치해야 했다. 그런데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헐값의 노동력이 널려 있는 도시'에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증기기관은 공장 뿐 아니라 '교통수단의 동력'도 됐다. 증기기관차의 발명은 교통의 혁명과 함께, 막대한 제철 수요를 불러왔다. '산업의 선순환'이다.
이런 시너지 효과들의 연쇄작용으로 면직물 산업과 철강공업, 기계공업 등이 균형적으로 비약의 시기를 맞았다. 바로 산업혁명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이런 공급측면 뿐만 아니라, 수요측면도 단단히 기여했다.
당시 영국인들은 유럽에서도 가장 잘 살았다.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소비할 여력이 있었다는 말이다. 인구 증가도 이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또 기업과 자본자들은 기술 혁신에 호응해 투자를 확대했다. 늘어난 이익을 장롱 속에 감추지 않고 재투자한 것이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