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
7․30 재보선 결과를 놓고 누구는 대이변이라고 하고, 국민의 뜻을 되새기는 계기라고도 한다. 또 새누리당 순천‧곡성의 이정현 승리를 두고 정치적 기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야 짧은 분석이나 저널리스틱한 호들갑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냉정하게 말해 새누리당의 승리는 축복인 듯 보이지만, '위장된 저주'일 수도 있다. 즉 다음 총선(2016년 4월)까지 국정 성적표가 좋지 못할 경우 정부 여당은 참혹한 패배를 자초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좌파 정부에게 권력을 내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게 이 글의 요지다.
7․30 재보선에 나타난 민심은 한마디로 '세월호 정치'에 대한 응징이었다. "더 이상 이 꼴 못 보겠다"고 작심한 유권자들은 비열한 놈(the ugly) 새누리에 앞서 나쁜 놈(the bad) 새민련을 먼저 쳐낸 것이다. 세월호 사망자 전원을 의사자(義死者)로 만들어주고, 대학 특례입학에 공과금 면제 혜택을 주겠다는 식의 '포퓰리즘 특별법' 제정에 동조하는 여당도 한심했지만, 세월호를 계기로 청와대 흔들기와 정부 파괴에 몰두하는 야당에 유권자들은 정나미가 다 떨어져버린 것이다.
비열한 놈(the ugly) 새누리, 나쁜 놈(the bad) 새민련
나라의 기강을 흔들고, 무질서의 한복판으로 내모는 듯한 야당에 대한 경멸과 짜증은 내란음모죄의 이석기 일당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염수정 추기경 등 4대 종단 지도자들의 분별없음에 급기야 폭발했다. 여기에 광주의 딸 권은희의 등장은 너무 역겨웠다.
그래서 이번 스코어가 11대 4였는데, 유권자들이 정부·여당의 무능에 대해 완전히 눈을 감은 것은 아닐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고백대로 이번 여당의 승리란 야당의 정치적 자폭(自爆)에 따른 반사이익일 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위장된 저주를 진정한 축복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정부 여당은 많은 일을 몰아서 해야 할 집권 2~3년 차에 국가혁신과 경제활성화에 월등하고 눈에 띄는 성적을 올려야 한다. 마침 재보선 직후 청와대도 "국정 동력 회복의 계기"라는 자평을 했다. 그러길 학수고대 하지만, 안타깝게도 크게 미덥진 못하다.
여당이 그동안의 기회주의적 오렌지정당의 체질을 바꿀 것 같지 않아서 그렇다. 그런 예감은 두 곳에서 나온다. 많은 이들이 박수를 치는 순천‧곡성의 이정현 당선이 외려 문제인데, 신문방송은 그를 선거혁명의 영웅으로 표현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저널리즘 특유의 과장일 수 있다.
▲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자가 지난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전남도당 선거사무소에서 꽃다발을 받고 밝게 웃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
"호남 정서 대변의 머슴되겠다"는 이정현의 엉뚱한 당선인사
망국적 지역감정을 염두에 두자면 쾌거가 분명하지만, 뒷맛까지 개운한 건 아니다. 선거구제 개편 등 지역감정을 치유하는 제도화의 노력이 따르지 않을 경우 2년 뒤 총선에는 이 지역이 '도로 호남당'이 될 가능성이 꽤 높다. 기회에 이정현의 자질도 따져봐야 한다.
즉 그가 대통령의 측근답게 국정철학과 전략적 마인드를 갖췄는지가 의문이다. 구수한 외모에 대중적 친화력을 가진 그가 자전거 타고, 대중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는 방식의 선거 유세에는 강하지만, '돌쇠 정치인' 그 이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당선 과정부터 그는 이른바 "예산 폭탄" 카드를 흔들어댔고, 그게 먹혀들었다. 당선인사에서도 이정현은 "호남 정서 대변의 머슴이 되겠다"는 절제되지 않은 발언을 마구 쏟아냈다. 아찔하다. 그 대목은 그동안 숨겨온 포퓰리스트의 본색일 수 있다. 또 있다.
대통령과 10년 째 호흡해온 그는 이 정부 들어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지냈는데, 책임있는 자리에 있던 그가 그동안 한 일이라곤 대통령 지지율 관리가 전부였다. 언론 정상화 문제에 몸을 던지는 너른 시야와 문제의식이 완전히 없다는 증거는 그의 주변에 너무도 많다.
경제 활성화도 미덥지 못하지만, 안보·외교는 더 불안하다
이 나라의 최대 현안인 반정부적, 반대한민국적 마인드가 가득 찬 적대적 언론환경은 그의 청와대 근무를 전후해 단 한 치도 개선된 바 없다. 이런 무정견, 무능이 그의 자질 문제만은 아니다. 외려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이고 태생적 한계라는 점이 이 땅의 자유주의 우파를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국가 혁신과 경제 활성화 영역에 정부 여당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것도 그러저런 이유 때문이다.
이미 이 정부는 맺고 끊는 맛이 없는 우유부단한 '물 정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것 때문에 국정운영도 크게 꼬여 왔다.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철도 파업, 이석기 사건, 세월호 사고, 문창극 사태, KBS 문제, 전교조 불법화 등의 숱한 현안에서 이 정부는 거의 단 한 번도 단호한 결기의 일솜씨를 보여준 바 없다.
치고 나가야 할 때 뒤로 빠져 있었고, 그래서 상황을 더욱 꼬이게 했다. 때문에 국가혁신과 경제 문제도 영 미덥지 못하지만, 새누리와 박근혜 정부는 군사·안보·외교라는 상위정치(high-politics) 영역에서는 완전 젬병이라는 걸 기회에 지적해야 한다.
▲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246호 회의실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7.30 재보궐선거 당선인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
7·30 재보선은 타락한 선거라는 지적은 정말 맞는 소리
정치학의 분류대로라면, 경제·정보·환경은 하위정치이고, 군사·안보·외교는 상위정치에 속한다. 정부 여당이 상위정치의 영역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일은 드물다. 실은 하위정치 중에서도 멱살잡이와 몸싸움 수준의 저질정치를 정치의 전부라고 생각해왔으니 상위정치는 언감생심일까? 선거 기간을 전후에 북한은 미사일에 방사포를 펑펑 쏘아 올렸음에도 그걸 걱정하는 지식인은 이 나라에 거의 없었다. 거의 예외적인 사람이 언론인 조갑제였다.
"7·30 재보선의 선거운동 현장에서나 당선자 소감에서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 용어는 북핵(北核)이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겠다든지, 핵(核) 미사일을 막기 위한 미사일방어망을 빨리 만들도록 하겠다는 공약(公約)을 한 후보는 한 사람도 없다. 안보를 뺀 정치, 중요한 것은 빼 먹고 사소한 데 목숨 거는 정치는 저질 싸움판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7·30 재보선은 원초적으로 타락한 선거였다. 정치인이 안보(安保)를 외면하는 것 이상의 타락은 없다."
그까짓 대통령 지지율에 휘둘리지 말고 국정을 살피려면
정리를 해보자. 조갑제의 말대로 '타락한 선거' 7‧30 재보선은 어쨌거나 세월호 쓰나미에 휩쓸려 거의 떠내려갈 뻔했던 박근혜 정부를 일으켜 세웠다. 재기하라는 유권자의 뜻이다. 그까짓 대통령 지지율에, 헛된 포퓰리즘에 물들지 말고 소신껏 국정철학을 펼칠 기회를 준 것이다.
때문에 이 정부가 훗날 기회주의적 약체정부로 규정되지 않으려면 국가혁신과 경제 활성화에 올인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 즉 국가혁신과 경제활성화가 가능한 큰 토대를 만들어놓기 위해서라도 상위정치의 영역인 외교 안보 국방에 더 철저해야 한다.
상황은 엄혹하다. 지난 번 쓴 글대로 외교 안보 국방이 펼쳐지는 사회적 토대로 너무도 취약하다. 맹목적 반일(反日) 민족주의, 친중(親中) 사대주의 정서가 너무도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꼼짝 못할 지배적 정서이자 대중적 상식으로 자리 잡은 두 집단정서는 심하게 균형을 잃었을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안보와 외교환경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다음 기회엔 이 정부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인 외교안보 영역에서 최악의 디스토피아를 한 번 점검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