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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뛰어넘어 품에 안긴 고려 미술의 꽃

2019-05-15 10:0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석 언론인

처음 찾아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찾아온 손님은 없다는 말이 있던데, 맛집 얘기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이 꼭 그러하다. 오픈(4월29일)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고미술-현대미술 구분을 떠나 요즘 전시 중 가장 독보적이다.

나의 경우 주말에 들렀는데, 분위기부터 다르다. 우선 관람객이 많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사뭇 진지하다. 88점 출품작 나한상 주변을 넋 잃은 듯 관찰하다가 깊은 탄성을 자아내는 모습도 본다. 내 경우도 그러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는데도 나한상이 계속 눈에 아른거려 한 바퀴 더 돌았다.

1000년 전 고려시대 미술의 울림이 왜 이렇게 특별할까? 두세 번 다녀갔다는 '나한상 덕후'도 상당수인데, 이미 지난해 강원도 춘천국립박물관에서 했던 첫 전시에서 3만 관객을 매료시킨 바 있다. 국박이 뽑은 '2018년의 전시'로 뽑힌 것도 당연하고, 그래서 이번은 앙코르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실에 전시된 88점 나한상의 하나. 범박(凡朴)하게 구현해낸 고졸함의 위대한 승리이자, 고려미술의 꽃이다. /사진=조우석 제공


국박이 뽑은 '2018년의 전시'

실은 창령사터 나한상의 존재 자체가 2001년 처음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지에서 농사를 짓던 분이 발견한 뒤 당국이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창령사'(蒼嶺寺)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나오면서 그 절이 고려 12세기에 지어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안타깝게도 창령사는 조선 중기 유생들 손에 의해 폐사(廢寺)됐고, 나한상도 땅에 묻혔다.

500년을 땅에 묻혔던 나한상이 주는 감동은 그래서 두 배다. 자, 찬사는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싫은 소리를 좀 해야 하는데, 두 가지가 문제다. 첫째 이 전시는 하이패션의 고급 맞춤옷인 오트 뀌뜨르(haute couture)를 창고형 매장에 도매금으로 대충 깔아놓은 모양새다.

디스플레이 자체가 그렇다. 나한상 88점을 한국미술사의 주요 작품으로 접근하지 않고 무슨 소품(小品)의 더미인양 다뤘다. 좌대와 좌대 사이의 거리가 1~2미터밖에 안되며, 그걸 몽땅 한 전시공간에 몰아넣었다. 각 나한상이 30센티미터 조금 넘는 사이즈라서 그렇게 처리해도 된다고 봤을까? 춘천도, 서울도 그렇게 전시했는데, 결과는 거의 참사에 가깝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창령사 나한상은 고졸(古拙)함의 끝을 보여주고, 한 점 한 점이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보석이다. 충분한 여백과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줬더라면 하나하나가 숨을 쉴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경우 지금 주는 울림이 두 배 세 배로 커졌을 것이다.

그걸 다닥다닥 붙여놓아 서로가 서로를 치고 있는 지금은 단순한 전시 테크닉의 실수 문제가 아니다. 국박은 고려 나한상의 미술사적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춘천 전시가 끝나자 서울로 옮겼을 뿐이다. 기획전이란 해당 분야 연구 축적을 전제로 한 것인데, 그게 송두리째 빠진 것이다. 요즘 국박은 이벤트장 혹은 떳다방이란 말인가?

메인 전시공간과 연결된 별도의 방에는 현대미술 작가가 스피커 수백 개를 탑처럼 쌓아올린 뒤 사이사이에 나한상을 끼워 넣는 이색적인 시도도 했는데, 그 역시 사뭇 어설펐다. 그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 '다다익선'의 아류에 불과했다.

좌대와 좌대 사이의 거리가 1~2미터밖에 안되며, 그걸 몽땅 한 전시공간에 몰아넣은 현재의 디스플레이. 충분한 여백과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줬더라면 하나하나가 숨을 쉴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경우 지금 주는 울림이 두 배 세 배로 커졌을 것이다. 국박이 이 나한상의 미술사적 가치를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조우석 제공


왜 고졸(古拙)함의 위대한 승리인가

둘째 그래서 이번 전시는 정확하게 말하면 기획전이 아닌 부처님 오신 날 이벤트였다. 전시기간 설정 자체도 그렇거니와 전시 콘셉트 자체가 그렇다. 일테면 관객에게 제공되는 5분 영상물도 그렇다. <법구경> 등에서 뽑은 문구를 낭송하는 영상물인데 뭔가가 어색하다.

사찰이 이걸 만들었다면 칭찬을 못할 것도 없지만, 국박이 제작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즉 국박은 창령사 나한상에 대한 미술사적 이해를 돕는 동영상을 제작했어야 옳았다. 이번 국박은 공적 서비스를 하는 전문기관이 아니며, 사찰 역할을 대행했을 뿐이다. 지난해 기획전 '대고려전'에서도 크고 작은 실수가 나와 우릴 놀라게 했지만, 요즘 국박은 정상이 아니다.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가 나오길 기대하지만, 이번에 국박은 창령사 나한상을 고려미술의 꽃으로 접근했어야 옳았다. 왜? 흔히 고려미술의 간판으로 고려청자와 고려불화(佛畵)를 꼽지만, 그건 절반만 맞는 소리이고 속화(俗化)된 견해일 수도 있다.

고려미술의 양식은 유독 화려했던 부도(浮屠), 즉 고승들을 위한 사리탑에서도 완성을 보았다. 그 기념비적 작품이 6미터가 넘은 지광국사현묘탑(국보 101호)이다. 신라시대에 불상에서 정점을 찍었던 고대 한국미술이 고려 부도에서 다시 꽃을 피운 셈이다. 그렇게 돌 다루는 기술이 빼어난 고려가 창령사 나한상만은 대충 소품으로 한 번 만들어봤던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지광국사현묘탑이 크고 화려한 꽃이라면, 창령사 나한상은 범박(凡朴)하게 구현해낸 고졸함의 위대한 승리다. 미술사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그게 보인다. 창령사 나한상이 절 주변 석재로 대충 조성한 것도 아니고 충청도 지방의 것을 대거 반입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 오른쪽은 조우석 필자. /사진=조우석 제공


12세기 나한상 조성은 큰 불사였고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결정적으로 미술사란 게 크고 화려하다고 좋고, 작고 범박하다고 낮은 세계일 리 없다. 1000년 전 고려 석공 장인들은 신묘한 솜씨로 얼굴과 옷자락을 추상적으로 처리하면서도 아라한 한 명 한 명의 법열(法悅)의 표정 묘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놀랍고 찬탄이 나온다.

즉 무른 석질의 화강암 안에 구현해낸 성속의 구분을 떠난 걸출한 미술세계다. 눈썰미 있는 한 관람객은 고려 석공들은 어린아이 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현대미술의 대형 스타인 장 미셸 바스키야 (1960~1988) 급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게 외려 고개가 끄덕여지는 소리다.

달리 말하면 미술사가 우현(又玄) 고유섭이 한국미의 특질로 언급했던 '무기교의 기교'의 끝이다. 물론 '무기교의 기교'는 낡아빠진 말이다. 민예품 일부에서 뽑아낸 한국미술의 특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반가사유상-불국사 석굴암 등 한국미술사의 위대한 성취는 또 다른 각도에서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숙제를 고유섭은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창령사 나한상 88점이 범박하게 구현해낸 고졸함의 위대한 승리이고, 미술사의 걸출할 텍스트라는 판단엔 변함없다. 다음 글에서 창령사 나한상의 미술사-정신사적 의미를 재론할까 한다. 좋다. 그런 한계에도 나한상 관람은 썩 특별한 경험일텐데, 참고로 6월 13일까지 전시한다.

[미디어펜=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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