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손희연 기자]정부가 무순위 청약을 통해 잔여 가구 확보에 나서는 현금 부자들의 ‘줍줍(줍고 줍는다)’ 현상을 막고자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을 늘렸지만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예비당첨자의 폭을 넓혀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서울과 수도권은 이미 높은 분양가로 대출을 받을 수 없으면 자금 여력이 부족한 무주택자 실수요자는 내 집 마련의 문턱을 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2순위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강력한 대출 규제로 자금 조달 능력이 안 되어 미계약분이 발생, 이 잔여 물량은 고스란히 무순위 청약자에게 돌아간다. 즉, 남은 잔여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현금 부자들의 '줍줍' 현상을 방지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해답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공덕 SK리더스뷰’ 계약 취소로 나온 단 한 가구 잔여 물량을 얻기 위해 약 4만7000명의 예비청약자가 몰렸다. 정부가 줍줍족의 미계약분·계약취소분 독식을 막기 위해 오는 20일부터 ‘예비당첨자’ 비율을 대폭 늘리기로 했지만, 해당 단지는 2년 전 분양을 진행했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다. 한 가구를 놓고 수만 명이 청약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주변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로 '로또 아파트' 라는 점이 큰 것으로 보인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 보유와 관계없이 만 19세 이상 가구주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예비당첨자 명단에 포함되지 못한 무주택자와 자금 여력이 있는 다주택자와 같이 경쟁할 수밖에 없다. ‘청량리역 해링턴플레이스’의 무순위 청약 사후접수에 6000명이 몰렸다. 무순위 청약 사후접수 결과, 전용 84㎡ 29가구 모집에 6197명이 신청했다. 경쟁률이 213.69대 1에 달한다. '청량리역 한양수자인192'도 1순위 청약에는 4857명이 접수했지만 사전 무순위 청약에는 1만4376건이나 접수됐다.
지난 9일 국토부는 서울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를 대상으로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을 전체 공급물량의 0.8배에서 5배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청약가점이 낮아 당첨이 어려운 무주택자에게 기회의 폭을 넓혀 주겠다는 의도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잔여 물량이 증가하면서 무순위 청약에 나서는 현금부자들의 '줍줍' 현상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자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당첨 기회를 더 주겠다는 것이다.
계약 포기나 부적격 취소로 발생한 잔여 가구는 예비당첨자에게 배정되는데 이 중에서도 남은 물량이 무순위 청약자에게 돌아간다. 예비당첨자가 늘어난다면 그만큼 남은 물량이 줄어들어 무순위 청약자에게 돌아가는 잔여 가구도 감소된다. 예비당첨자 비율은 20일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는 단지부터 적용된다.
다만 무주택자 실수요자에게 당첨 기회를 높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이끌어 내지만 이미 서울과 수도권은 높은 분양가로 대출 완화 등 추가 조치가 없다면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을 늘려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수도권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740만7500원 정도다. 서울은 3.3㎡당 2564만7600원으로 집계됐다. 평당 분양가가 2500만원선을 웃돌지만 정부는 현재 9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서 중도금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1·2순위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하면 계약을 포기하는 실수요자도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포기한 미계약분은 결국 무순위 청약을 통해 현금부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무주택자 실수요자에게 예비당첨자의 폭을 늘려서 기회를 많이 돌아가도록 한 것에는 긍정적이지만 자금 마련을 하지 못해서 계약을 못 하거나 청약 조건이 깐깐해서 발생하는 부적격자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답은 되지 않는다”며 "예비당첨자 비율을 확대만으로는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무주택자와 실수요자 중심의 대출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길음 롯데캐슬 클라시아’가 오는 22일 무순위 청약을 접수한다.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을 늘리기 전, 무순위 청약 사전접수로는 서울에서 사실상 마지막 단지로 보여진다. 길음 롯데캐슬 클라시아는 17일 모델하우스를 열고 분양 일정에 돌입한다. 22·23일 무순위 청약 사전접수를 진행한다.
[미디어펜=손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