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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전설 '니키 라우다', 최고의 드라이서 후배육성까지

2019-05-22 14:29 | 김태우 차장 | ghost0149@mediapen.com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3번의 F1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천재 드라이버 니키 라우다가 지난 20일(현지시간) 향년 70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니키 라우다는 지난 2018년 폐이식 수술을 받았고 최근 지병이 악화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회복되지 못하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니키 라우다는 통산 3번의 챔피언을 차지한 바 있는 F1 전설의 드라이버로 총 177회 출전, 25회 우승, 54회 포디움 입성, 24회 폴포지션, 24회 패스티스트 랩을 기록했다.

니키 라우다 사진제공=메르세데스



니키 라우다는 2013년 큰 인기를 끈 영화 '러쉬; 더 라이벌'의 실존인물로 영화같은 삶을 기록해왔다.

194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니키 라우다는 19세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었다. 미니 쿠퍼를 타고 힐 클라임 레이스에 도전했다. 그 후 F3와 F2를 거친 니키 라우다는 1971년 마침내 팀에 들어가 F1 그랑프리에 데뷔했다.

1973년에는 BRM 팀 드라이버로 발탁되어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BRM을 떠나 이듬해 페라리 경주차를 손에 넣은 니키 라우다는 스페인 하라마 서킷에서 F1 첫 우승을 기록했고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1975~1977년은 니키 라우다의 그랑프리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였다. 74 시즌이 끝난 뒤 스토브리그 동안 노련미와 침착성을 기르는데 온힘을 쏟아 부은 라우다는 모나코, 벨기에, 스웨덴 그랑프리에서 3연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최종전 미국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첫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1976년은 그에게 어둠의 그늘이 내린 시기였다. 영국 그랑프리까지 5승을 거두며 강력한 챔피언 후보로 떠올랐으나, 사고에 이은 경주차 화재로 큰 화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후 단 7주 만에 기적처럼 다시 그랑프리 무대로 돌아왔지만 사고 전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최종전 일본 그랑프리에서 그는 첫 랩을 주행한 뒤 아쉽게도 경기를 포기했다. 화상의 여파 때문이었다. 결국 라우다는 1점 차이로 76년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제임스 헌트에게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계속 페라리에 남아 타이틀 결정전에 뛰어든 라우다는 남아프리카, 독일, 네덜란드 그랑프리 우승컵을 손에 들고 두 번째로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불굴의 의지에 따른 놀라운 결과였다. 

페라리에서 두 차례 챔피언에 오른 라우다는 이듬해 브라밤으로 옮겼지만, 빠르지 않은 경주차로 시리즈 4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1979 시즌을 마친 뒤 F1을 떠나 자신의 이름을 딴 라우다항공사를 차렸다.

사업을 접은 라우다는 1982년 맥라렌 팀의 호출을 받고 남아프리카 키알라미 서킷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시리즈 성적은 5위. 맥라렌에서의 두 번째 시즌은 10위로 마무리했다. 

1984년은 니키 라우다가 세 번째 챔피언이 된 해였다. 당시 떠오르는 스타 알랭 프로스트를 1점 차이 따돌리고 F1 역사에 길이 남을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1985년을 끝으로 은퇴한 니키 라우다. 페라리와 맥라렌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유일한 드라이버로, 심각한 충돌사고와 화재에 따른 부상을 극복하고 챔피언에 오른 전설적인 인물은 모나코 그랑프리를 일주일 앞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F1 드라이버로, 그리고 은퇴 후에도 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니키 라우다는 1997년, 2005년에 장기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완벽한 컨디션 회복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니키 라우다는 드라이버로서 은퇴후 페라리와 재규어, 메르세데스 팀 등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며 최고의 모터스포츠 F1의 역사를 이끌어왔던 인물이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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