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배임은 이현령비현령이고 판사에 따라 뒤집히는 경우도 많으며, 법으로 기업인의 복귀를 막는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병철 회장이 계열사들 이익을 삼성전자로 집중시켜 회사를 성장시켰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배임·횡령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22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서울 종로구 제일빌딩에서 개최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령안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채이배·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냈는데 국회 통과는 시끄러울 것 같으니 시행령 개정 카드를 꺼낸것 아닌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법무부는 앞서 지난달 30일 '범죄를 저지른 경제인의 취업제한이 확대된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경제사범 취업제한 대상 기업에 '유죄판결된 범죄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체'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령안은 지난 7일 공포를 거쳐 오는 11월 8일 시행예정으로, 시행 후 특경법상 경제범죄를 범해 형이 확정된 사람부터 적용된다.
박인환 변호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정유라 지원에 회사돈을 쓴 것이 범죄라며 유죄판결을 받았다"면서 "종래에는 형을 살고 나오면 됐지만 이번 시행령이 시행되면 앞으로 배임죄로 걸리는 총수들은 경영복귀가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
박 변호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어려움에 처한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다른 계열사들의 자금을 동원한 결과 이익을 보는 회사로 거듭났지만, 피해를 입은 부분만 부각되면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지금이라면 김 회장은 한화경영에 손대지 못하고 주주로 남게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2일 서울 종로구 제일빌딩에서 열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그는 "예외적으로 법무부장관이 제출받은 취업승인 신청서를 통과시키면 취업이 가능하지만, 이는 결국 대기업 오너가 법무부 또는 정부에 예속되는 것"이라면서 "이 부회장의 경우 정유라 건으로는 걸리지 않겠으나, 삼바와 관련해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이는 △기업인의 직업의 자유 및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과잉입법으로 인한 이중처벌 가능성 △죄형법정주의 위배 가능성 △기업 경영활동 위축 및 자율성 침해 △형사법 체계의 부적합성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국내는 손해를 보거나 손해 위험성만 있어도 처벌하는 반면, 미국은 기본적으로 업무상 배임죄를 두고 있지 않다"며 "독일·호주 등은 기업가의 경영판단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는 면책 규정을 두고 있고, 일본은 배임죄의 구성요건으로 '손해를 가할 목적'을 추가하는 등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도 경영실패가 아닌 사익취득을 위한 의도적 행위에만 배임죄를 적용하도록 명문화할 필요가 있으며, 특경법 14조 전체를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경제연구원 출신의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거론하며 "솔직히 삼성도 정신차려야 한다. 삼성은 불쌍하게 볼 기업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김정호 김정호의 경제TV 대표는 "학습지와 웅진식품 등을 기반으로 성장해 극동건설을 인수했던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은 이를 법정관리로 넘길지, 그룹 내에서 해결할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다"면서 "자금사정이 괜찮은 계열사로 하여금 자금부족을 겪는 회사를 지원토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 과정에서 윤 회장은 배임·횡령으로 걸렸으며,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며 "윤 회장이 사익편취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집유 선고의 이유로, 지금은 부채 대부분을 상환하고 재도약을 위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언급했다.
특경법 제14조(취업제한) 관련 연도별 유죄판결자 현황/자료=최준선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총수가 아닌 임직원의 경우 회사가 범죄전력자를 채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국가가 이러한 영역까지 관여할 필요가 없다"며 "실제로 회사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으면 회사가 알아서 퇴사시킬 것이고, 범죄전력자라 해서 국가가 종전의 직장에서도 쫓아내라고 강요한다면 비정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진권 자유경제포럼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특징은 사물을 굉장히 단순명료하게, 감성적으로 본다는 것"이라면서 "이번 시행령은 한국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지만, 일반 국민한테 물어보면 찬성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현 대표는 "국민들에게 대기업 총수는 나쁜사람으로 찍혔으며, 배임죄에 해당하는 행위가 굉장히 나쁜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며 "법으로 이러한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정의롭다는 생각이 결국 이번 시행령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내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배임죄가 사전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면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계열사간 지원이 놀라운 일이 아닌데 우리 법체계가 이같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지원대상 기업에게까지 취업을 금지하는 것은 재산권 활용 침해이기도 하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기업을 살리는 기업가 아닌 정권의 눈치를 보고 규제조항만을 피하려는 경영인을 양성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이런 경영인이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된 국제사회에서 기업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기업이 많아야 경제대국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점점 줄어들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감소, 국가경제가 퇴보하게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