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지난 2017년 7월 6일 오후(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만찬에서 만나 밝게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공식 요구한 데 이어 남관표 신임 주일대사가 신임장을 받자마자 외무성으로 초치되는 등 한국정부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일본 외무성이 자국의 기업에 배상 명령을 내린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 문제를 제3국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를 열어 해결하자고 요청하고 나선 것으로 국제여론전을 이용해 한국정부의 태도 전환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고노 다로 외무상도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지고 대응해야 한다. 한국측도 양국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는 건 바라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라며 “이낙연 총리가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한 것을 듣고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요청한 중재위 구성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분쟁 해결 절차에 따른 것이다. 협정 제3조는 협정과 관련한 양국 간 분쟁이 외교 협의를 통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제3국 인원을 포함한 중재위를 통해 해결하도록 규정했다.
일본이 지난 1월9일 외교 협의를 요청한 뒤 4개월이 지나도록 한국의 반응이 없자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지만 외교가에서는 실제 중재위가 가동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중재위가 가동되려면 양측이 합의해서 제3국 중재위원을 지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22일 “중재위 개최와 일본의 외교협의 요청 모두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일단 상황 관리에 나선 모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는 23일 한일 외교장관이 파리에서 만날 예정이어서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포함한 양국간 현안이 어떻게 다뤄질지 주목된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22~23일(현지시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디지털의 이용’이라는 주제로 파리에서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례 각료이사회에 한국정부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도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비롯한 상호 관심 사안이 폭넓게 논의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어 정부 내 기류가 변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으로 일본에서 여러 대형 국제 이벤트가 예정돼 있는 만큼 한국정부가 지속적으로 한일관계를 뒷전으로 미룰 수 없다는 관측 때문이다.
일본은 6월 G20 정상회의, 10월 나루히토 일왕 취임 등 외교행사에 이어 내년 도쿄올림픽 등 대형 이벤트를 이용해 한국정부와 강제징용 대책 마련을 연계하려고 시도할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전망이다.
한국정부도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하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내키지 않더라도 절충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오사카 한일정상회담의 경우 문 대통령이 지난 9일 KBS 대담을 통해 사실상 공개 제안한 것이다.
앞서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에서 직접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 일본정부는 21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국법원에 낸 소송을 2년5개월만에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이런 사실을 외무성 홈페이지에도 공개한 상태이다. 일본정부가 작심하고 이 시기를 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볼 때 만약 일본의 중재위 요청이 접수되고, 30일 이내 양국이 중재위원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일본정부는 한일정상회담을 불발시킬 수도 있다. 특히 일본에서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어 아베 총리가 이 사안을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할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정부가 어떤 묘수를 낼지에 따라 6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 여부가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