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ILO) 핵심협약 4건의 비준을 놓고 노사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합의가 불발에 그쳤지만, 문재인정부가 이중 3건을 비준 추진하기로 나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정기국회에서 비준 동의안과 법률개정안이 같이 논의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며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대놓고 노조 편을 들고 나선 문정부가 오는 9월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추진하는 핵심협약(노동권에 관한 기본적 규율원칙) 3건은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을 보장하는 87호·단체교섭권 98호·강제노동금지 29호다. 이는 모두 국내법과 충돌하는 지점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공무원·교원의 정치활동·단체행동권을 금지한 공무원노조법 4조·11조 및 교원노조법 3조·8조·11조, 해고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둘 수 없게 한 노조법 2조4호, 노조설립허가제 근간인 노조법 12조,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제약하는 노조법 2조1호와 충돌한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해고자 노조가입·공무원 노조설립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여야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계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부가 재계측 요구사항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노조만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해 우리나라 노동법 체계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계기로 균형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진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월18일 고용부 대회의실에서 '고용상황 점검회의'를 갖고 일자리 상황 개선을 위해 논의하는 모습이다./사진=고용노동부
국내 노동법은 노측 파업에 대응한 대체근로를 허용하지 않고 사측에게 고용유연성을 허락하지 않아 근로자를 과보호하고 있다. 정리해고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기업이 고용을 주저하는 요인이며, 노조에게 힘이 쏠려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경사노위 최대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노조측 '단결권 강화' 요구에 대응한 사측 요구안, 대체근로 허용·노조의 사업장 점거금지·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이었다.
하지만 사측 입장을 완전히 무시한 정부가 국회 비준 후 국내법 개정까지 마치게 되면 실업자·해고자 모두 노조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방관 등 전국 공무원, 전교조 등 교사들의 정치활동 및 단체행동이 완전히 보장된다. 결국 이들의 총파업 여부에 따라 온 국민이 큰 불편을 겪고 금전적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전국적인 규모의 총파업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노조 난립 및 해고자들과의 임금협상까지 각오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강성노조의 천국으로 전락하고 기업들의 탈한국 추세는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입법안 마련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 비준동의안 관련법안을 함께 논의하도록 준비할 방침이다.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정부의 이번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을 계기로 어디까지 악화될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