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
외려 거꾸로다. 7·30 재보선을 전후해 북한은 미사일에 방사포를 펑펑 쏘아 올렸을 때 우리의 코스피 지수는 외려 쭉쭉 올라갔다. 안보불감증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필자의 눈에는 아슬아슬함을 넘어 거의 초현실적으로 비춰진다.
“지금 한국사회는 국가적 자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백번 공감할 만한 소수의견(김성욱 지음 <김정은 이렇게 망한다>)이 등장했지만, 안타깝게도 지식사회의 주류(主流)에선 멀다. 정치권과 언론이 필요 이상으로 과잉반응하는 사안은 지금 따로 있다.
28사단 구타 사망 사건에 정치권과 언론이 또 한 번 휘둘리고 있다
육군 28사단 구타 사망 사건이 그러하다.“국방장관은 자식도 없나?”라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한민구 신임 국방장관을 불러 대놓고 호통 쳤다. 새민련 박영선 원내대표는 청와대 김관진 안보실장의 인책을 거론했다. 1등 신문이라는 한 조간지는 1면 톱 제목에 “온몸에 멍든 대한민국 군(軍)”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침소봉대도 유분수인데,“윤 일병 사건에 국민 분노 폭발/뿌리 깊은 군 문화를 바꿔야”하는 부제목만 보면 세상이 난리가 난 듯하다. 그날 이 신문의 사설제목도 이랬다.“병사 학대 숨기려고만 하니 누가 군을 믿겠는가?”
군과 안보상황 전반에 대한 구조를 보지 못하는 언론들이 군대 간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슴에 불부터 지르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사태는 더 나빠져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나섰다. 군 통수권자다운 무게있는 발언을 속으로 기대했지만, 그 역시 기존의 신문 보도 내용을 반복하며 일벌백계를 언급했다. 다음 날 권오성 육군 참모총장이 옷을 벗어야 했다.
이제 신문 방송은 더 기승을 부리며 사건 축소은폐 의혹을 파헤치는 중이고, 육본은 병사들의 휴대폰 사용을 검토 중이라며 사안의 본질과 무관한 대책을 꺼내놓는 등 허둥지둥한다.
지금 우리는 세월호 파동과 문창극 총리후보자 사태 때 익히 보아왔던 ‘미숙한 정부, 선동 언론’의 악순환에 다시 빠져있다. 그게 지난 번 이 지면에서 필자가 언급했던 군사· 안보· 외교라는 상위정치(high-politics)에 완전 젬병이고, 경제 복지 등 하위정치에 코 박는 저질(低質)정치의 구조다. 언제까지 이럴 건가? 한반도에서 삶을 꾸리는 우리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국방-안보를 놓고 이래도 되는 걸까? 얼마 전 만난 역사학자 건국대 이주영(72) 명예교수가 필자에게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귀뜸해줘 정신이 번뜩 났다.
한 원로 역사학자가 들려준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더라면, 내가 우려하는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지금쯤 거의 100% 일어났을 겁니다. 새누리당이 집권했기에 천만다행인데도,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하는 단계에 도달했는데, 이게 문제거든요. 오해 마세요.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해 대한민국 전체를 먹겠다는 전략이라고 보면 잘못이예요. 저네들은 전면전을 벌일 능력도 없지만, 한국 전체를 통치할 능력도 없거든요. 북한은 조만간 그걸 한국에 대한 결정적 공갈협박 카드로 쓸 겁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수도권 이북지역을 기습적으로 선제 점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연평도 포격과 또 달라서 전투가 벌어지고, 사상자가 속출할 것이다. 문제는 후방에서 벌어진다. 한국의 종교인-대학교수-언론인 등 지식인들이 “같은 민족끼리 피를 흘릴 순 없다”“핵무기가 터지면 끝장이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들은 촛불시위를 벌인다.
▲ 윤일병 구타사건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태에 여야와 언론등이 과민반응하며 군지휘부를 무력하게 만들거나, 새가슴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빨대로 활용해 대한민국 경제를 위협하며, 서울이북을 기습점령해서 우리사회를 커다란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북한의 무력도발에 칼날을 벼려야 할 '별들'을 새가슴으로 만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야의원들이 윤일병 구타현장을 찾아가 군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있다. /뉴시스 |
핵무기를 쥔 북한 앞에 한국은 전과 또 달리 무력하다. 정부도 갈팡질팡이다. 주식 폭락과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가는 일은 안 되며,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논의가 대세를 이루며 휴전협정이 진행될 것이다.
RO의 이석기 아류(亞流)의 후방교란도 실로 위험하다
이때 종교인 중에는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적의 도발에 분노하기는커녕 명분 그럴싸한 반전(反戰) 평화 운동에 앞장 설 것이다. 얼마 전 미사에서“NLL에서 한미 훈련하면 북에서 쏴야죠. 그게 연평도 포격”이라고 망언을 했던 박창신 신부 같은 위인이라면 더 팔을 걷어 부칠 것이다.
아직도 암약 중인 RO의 이석기 아류(亞流)도 위험하다. 이석기가 문제가 됐던 비밀회합에서 통신-철도-가스 차단과 파괴를 언급했던 것도 바로 경량화된 핵무기를 배경으로 북한이 국지전을 벌이는 상황을 전제로 했던 것임을 기억해두시라.
“북한이 원하는 건 대한민국을 목장(牧場)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원할 때 고기를 뜯을 수 있고, 젖을 마실 수 있도록 한국사회를 조종하는 것인데, 핵무기을 앞세운 공갈협박의 국지전은 그래서 큰 걱정이죠. 북한이 배상금을 요구하며 떵떵거릴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겁니까? 그게 고질이 되면 식량지원, 의약품 제공, 홍수피해까지 도맡아야 합니다.
종북 지식인 중에는 그걸 경제지원이자, 민족경제의 완성이라고 헛소리할 사람이 적지 않을 걸요? 그때 한국은 북한의 위성국가로 전락하며 남북한이 함께 망하는 지름길로 들어섭니다.”
북한은 지금 한국에 빨대를 꽂고 벌떡 일어설 유혹을 느낀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주영 교수가 들려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체제 붕괴를 걱정하는 북한은 핵무기를 휘두르며 한국사회에 빨대를 꽂고 벌떡 일어서는 극단적 선택에 대한 유혹을 느끼고 있다. 지리멸렬한 국내 정치의 상황과 외교-안보 상황, 그리고 온 지식사회의 종북화 현상은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게 만든다. 지나친 걱정이자 기우라고? 아니다. 옛말에 “입춘에 장독 깨진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이 딱 그러하다.
그리고 그건 이주영 교수의 지적만이 아니다. 최근 필자가 읽은 두 권의 신간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책략>(이춘근), <김정은 이렇게 망한다>(김성욱)도 그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조만간 소개해드릴 그 책의 내용을 조금 귀뜸을 해드리자면, 지금 한국사회는 전쟁공포증에 빠져 평화를 구걸하는 ‘나쁜 평화’의 구조에 갇혀있다. 안타깝게도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대전략의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집단적 백치 상태에 빠져있다. 이렇게 후련하고 개운한 책을 만난 건 최근 들어 거의 처음이었다.
새가슴 지휘관 만들지 말고“전쟁 수행할 능력있나?”따져야
추신. 윤모 일병 사건을 두고 육참총장은 사임 며칠 전에 대국민사과를 했다. 여기에서 물어보자. 구타 사망 사건은 주적(主敵)이 누구인가 하는 정신교육이 희미해진 군대, 복무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군대에서 도지는 예견된 질병은 아닐까? 그게 맞는 진단이라면, 지휘관 겁을 주고 손발을 묶어놓는 사고 방지대책 같은 걸 너무 남발하는 건 결코 좋은 해법이 아니다. 별들이 모두 새가슴이 되면 휘하의 병사들이야 어떻겠는가?
외려“한국군은 전쟁을 수행할 진짜 능력이 있는가?”를 따지며 군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면 된다. 결전(決戰)의지의 칼끝을 벼려야 이 따위 작은 사고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실은 군 통수권자 대통령을 포함한 이 땅의 정치인들이 문제다. 새누리당 김무성대표가 이 사건을 두고 “치가 떨려서 말이 안 나온다”고 많이 오버를 했다. 필자는 국방의 큰 몫을 미군에게 외주(外注)를 준 채 속편하게 사는 이 땅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안보감각 무능, 외교 국방에 대한 전략적 마인드의 부재가 더 겁이 난다.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