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내용을 브리핑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이하나 기술유용감시팀장 [사진=공정위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현대중공업(현중)과 현대건설기계(현대기계)가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빼돌려 다른 하청업체에 넘긴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고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탈취한 현중과 현대기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억 31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임직원 2명을 검찰에 고발한다고 29일 밝혔다.
현대기계는 현중 건설장비 사업부가 지난 2017년 4월 분할된 기업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건설장비 시장의 대표 기업인 현중과 현대기계는 굴삭기 등 건설장비 부품의 납품가격을 낮추려고,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다른 업체에 넘겨 납품가능성을 타진하고, 납품 견적을 받는 데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중은 2016년 1월 굴삭기에 장착되는 전선 묶음인 '하네스'(Harness)의 납품업체를 다원화, 구매가격을 낮추려고, 기존 납품업체의 하네스 도면을 다른 제조업체에 빼돌려 납품 견적을 내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이 도면을 전달한 업체에 견적 제출을 요구하면서 기존 공급처에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했고, 결국 납품업체는 그해 4월 공급가를 최대 5%까지 내려야 했다.
현중은 하네스 업체의 도면은 자신이 제공한 회로도 등을 단순 도면화한 것에 불과, 하도급법상 보호 대상인 '기술자료'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하도급 관계에서 원사업자가 납품할 품목의 사양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며, 하네스 업체의 도면에는 회로도 등에는 없는 필수 부품 정보나 작업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정보 등이 기재돼 있었으므로, 기술자료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현대기계는 2017년 7월 하네스 원가절감을 위한 글로벌 아웃소싱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하네스 공급업체를 물색키로 하고, 3개 업체가 납품하던 총 13개 하네스 품목의 도면을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세 차례 제3의 업체에 전달, 납품가능성을 타진했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이후인 작년 4월에도 다른 하네스 제조업체에 도면을 전달한 사실이 확인됐는데, 추가 조사가 진행되고 나서야 현대기계는 공급처 변경 관련 절차를 중단했다.
이와 함께 현중과 현대기계는 2017년 3~9월 경쟁입찰을 통해 낮은 가격으로 시제품을 구매하고자 지게차용 배터리 충전기, 드라이브 샤프트(동력축), 굴삭기용 유압밸브의 시제품 입찰에서 하도급업체의 도면을 다른 업체에 넘겨 견적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지게차용 배터리 충전기의 경우, 현대기계가 분할되기 전후 두 차례 기존에 배터리 충전기를 납품하던 업체의 납품 승인도면 7장을 신규 개발업체 2곳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기계는 입찰 품목이 리튬이온 배터리 충전기로, 이와 무관한 납 배터리 충전기 도면이 실수로 전달됐다고 주장했으나, 공정위는 이 도면이 리튬 이온 배터리 충전기 개발에도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판단했다.
자료를 건네받은 2개 업체는 낙찰받기는 했어도, 이후 사업 추진이 무산됐다.
그럼에도 도면 전달 행위 자체는 납품가를 낮추기 위한 기술자료 유용행위라는 것이 공정위의 결론이다.
뿐만아니라 현대기계는 하네스 납품업체들에 정당한 사유 없이, 21t 굴삭기용 주요 하네스 3개 품목의 도면을 제출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중과 현대기계는 하도급업체들에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 서면으로 하지 않는 등, 절차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탈취 행위는 법 위반 금액을 정하기 어려워 정액과징금이 책정됐으며, 현대기계에만 과징금이 부과됐는데, 회사 분할의 경우 그 전 행위에 대한 과징금도 분할된 회사에 물리게 돼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검찰에 현중·현대기계 법인과 함께 현대기계의 임원과 차장급 직원 등 2명도 고발했다.
이하나 공정위 기술유용감시팀장은 "중소기업의 혁신 유인을 막고 우리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기술 탈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3~4개 주요 업종을 대상으로 모니터링과 직권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하도급 서면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신고도 적극 접수할 방침이며, 하도급업체의 기술 탈취 민원이 많은 업종 위주로 집중 모니터링을 벌일 예정이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