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업자가 고로 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제공
[미디어펜=권가림 기자]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지방자치단체가 내린 ‘고로 조업정지 10일’ 처분에 대해 행정청문을 진행하거나 소송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가 고로 가동 중지 최종 결정에서 앞서 뒤늦게 민관협의체를 만들고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나서자 책임회피성 '복지부동'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앙정부·지방정부와 업체간 협의를 통해 처벌 수위, 규제자 등을 결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제철소 고로(용광로) 안전밸브 ‘블리더’ 개방에 따른 대기 오염물질 배출 문제와 조업정지 처분 등과 관련한 민관협의체가 19일 발족한다.
환경부는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1명, 시·도 관계자 3명, 전문가 6명, 철강업계 관계자 3명, 시민단체 관계자 4명 등 19명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 첫 회의를 이날 오후 3시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 예정이다.
민관협의체는 고로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종류 및 실제 배출량 파악, 해외 제철소 블리더 개방여부 조사, 오염물질 저감 방안 등을 목적으로 오는 8월까지 운영한다. “전 세계 고로가 블리더로 배출되는 오염물질 저감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는 업계 주장도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용 환경부 대기관리과장은 “해외 법령, 사례들을 조사하고 기술·제도적으로 개선 여부를 살필 예정”이라며 “주 1회 회의 개최를 원칙으로 하지만 필요할 경우 수시로 회의를 열어 방안을 모색하고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업정지 처분이 임박하자 ‘보여주기식 일회성 행정’을 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환경근본주의자들에 의해서 정부가 장악돼 있는 게 현실”이라며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니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는 민관협의회에 미루는 전형적인 책임회피·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국가·경제적 손실을 낼 수 있는 고로정지를 지방정부가 규제할 수 있는 사안인지 의문”이라며 “법에 3심이 있듯이 중앙 정부가 일찌감치 중재에 나섰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지난 4월에,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지난 달에 제철소 고로의 가동 과정에서 블리더를 개방해 내부 가스를 무단 배출했다는 혐의를 받아 각 지자체로부터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받았다.
포스코는 지난 18일 열린 광양제철소에 대한 청문에서 “블리더는 고로의 안전을 위한 필수 공정”이라며 “블리더 외엔 다른 대체기술이 없어 기술 발굴에 노력하겠다”고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도는 블리더는 비상시에만 자동으로 열려야 한다며 정비를 위해 개방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관례적으로 블리더를 개방해왔다는 이유로 처벌을 회피할 수는 없다”면서 “명백한 대기환경보전법 등 실정법 위반”이라며 지자체의 조업정지 처분에 힘을 실었다.
포스코는 조업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집행취소 등 소송으로 맞서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7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와 행정심판을 신청했다. 같은 처분이 예고된 포스코 포항제철소도 경상북도에 행정청문을 요구했다.
김 교수는 “기업은 블리더를 개방해야 안전하다고 하고 지자체는 인위적으로 열면 위법이라는 등 주장이 서로 다른 상황”이라며 “먼저 중앙정부·지방정부와 업체간 충분한 협의를 통해 누구 주장이 맞는지 확실히 따져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조업정지는 ‘좀도둑에게 손목 자르라’는 것과 같은 가혹한 처벌 수위”라며 “기업 손해를 최소화하며 공익에 위반되지 않는 처벌 수위 제정도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