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매체는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21세기 중국문화의 한복판에 우뚝 섰다"고 감격했다. 추사는 19세기 전반 한류 스타여서 그의 글씨와 그림을 얻으려는 중국 문인의 요청이 줄을 이었는데, 이번 중국에서의 추사전은 2세기만의 큰 경사란 호들갑이다.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 중국국가미술관에서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 특별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1년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치바이스와의 대화전'에 이은 한·중 국가 예술 교류 프로젝트란다. 요즘 양국 관계가 썩 매끄럽진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문화는 흘러가야 한다는 덕담도 하던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전시회 출품작은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 추사박물관 등 9개 기관과 개인 소장처 25곳에서 모은 추사의 현판·대련·서첩·병풍 등 117점이니 규모가 크다. 베이징 중심가의 이 미술관 5층 전시장(약 800㎡)이 추사로 물들었다고 흥분해 매체도 있다. 덕담은 거기까지다.
속사정을 알고 보면 꺼림찍하다. 이 전시회에 출품된 추사 글씨 일부가 위작(僞作)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문화재청 보물 지정 심사 때 '진위 논란이 불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던 글씨 여러 점이 포함된 것이다. 추사의 것으로 공인받지 못한 작품을 들고 나가 국가 망신을 자초한 꼴이고, 중국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18일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개막한 추사전에 출품된 '계산무진'(谿山無盡)을 보고 있는 주요 인사들. 왼쪽부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서예가 초정 권창륜, 장하성 주중대사, 우웨이산 중국미술관장,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 /사진=중국미술관
서화(書畵)의 본고장인 중국이 우리의 형편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무리한 전시가 강행된 배경이 궁금한데, 최악의 경우 "위작 논란이 있는 작품을 중국전을 통해 세탁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피할 수 없다. 문제가 된 게 우선 '계산무진(谿山無盡)'과 '명선(茗禪)' 두 점이다.
'계산무진'의 경우 전시장 입구에 큼지막하게 내걸려 있으며, 추사의 걸작이라고 관람객에게 소개되고 있다. 이걸 역대 한국의 서예가 중 첫 손가락으로 꼽힌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분명한 건 이게 문화재청 보물 심사 때 위작 시비로 탈락한 5점 중의 하나란 점이다. 함께 탈락했던 게 '명선'인데, 오래 전 위작 소문이 돌았던 이것도 중국전에 포함시켰다.
위작 소문은 미술사학자 유홍준(전 문화재청장)이 <완당 평전>(2002년 학고재)을 펴냈을 때 벌써 시작됐다. 결국 그걸 폐기처분시키고 수정본이라고 펴낸 책 <추사 김정희>(창비)를 1년 전 펴냈을 때도 논란이 다시 불거졌는데, 위작 시비가 있는 서화들이 고스란히 재수록했기 때문이다.
그에 어느 정도일까? 미술사학자 강우방(80,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유홍준 책(수정본)에 실린 추사 글씨 그림 도판의 절반이 위작이라고 단정했을 정도다. 실은 2002년 때 위작이란 소리를 들었던 '명선'을 해명 과정 없이 수정본에도 재수록한 것부터 유홍준의 부적절한 대응이었다. 더 큰 문제는 '명선'과 '계산무진'이 명성 높은 간송미술관 콜렉션이란 점이다.
강우방은 "문제의 '명선' 등 간송 소장 추사 글씨의 70%가 위작"이란 폭탄선언도 하고 있다. 강우방은 당대의 학자인데, 그렇다면 유홍준과 간송 측이 위작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해야 맞다. 그걸 과정을 생략한 채 느닷없이 문화재청 보물 지정 심사를 요청한 것부터 실수였다.
결국 8점을 덜컥 올렸다가 '침계(梣溪)' '대팽고회(大烹高會)' '차호호공(且呼好共)' 3점만 지정되고 '명선'과 '계산무진' 등 5점은 탈락된 것이다. 이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인데, 논란 속의 작품을 중국전에 끼어 넣은 것은 최악이며 오해 받기 딱 좋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실은 출품작 117점 중 위작 시비가 있는 걸로 확인된 게 이 두 점이며, 훨씬 많은 글씨와 서화가 포함됐을 개연성을 배제 못한다. 그런데도 예술의전당 측은 무책임한 해명만 반복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보물 지정 탈락 소식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변명했고, 간송 콜렉션은 그쪽에서 알아서 출품작을 선정했는데 '명선'은 원래 명작이니 당연히 포함되는 걸로 알았다는 것이다.
진위 논란 끝에 지난해 2월 보물 지정에서 탈락했으나 중국전에는 버젓이 출품된 '계산무진'(계산은 끝이 없구나). 165.5×62.5㎝.
논란이 된 '명선'의 경우 "강우방 선생이 추사의 창의적 발상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의혹은 커진다. 추사 중국전 기획에 유홍준이 개입했는지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그가 기획에 개입한 바 없다는 얘긴데, 그걸 곧이 믿는 이는 별로 없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이번 일로 대중적 명성을 가진 유홍준과, 간송의 간판스타로 통하는 최완수의 위신에도 금이 가게 됐다. "아는만큼 보인다"던 그의 안목이 이 정도인가 하는 냉소를 피할 수 없고, '문화재와 결혼한 남자'라던 최완수의 밑천도 아슬아슬하게 됐다. 정말 문제는 이런 차원이 아니다.
중국이 이 논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게 문제다. 자국의 보물 지정 심사 때 이러저런 이유로 탈락할 순 있지만, 진위 논란 때문에 떨어진 작품을 굳이 싸들고 찾아온 한국 문화계를 저들이 과연 신뢰할까? 실은 이번 일은 국가 망신 그 이상이다. 중국전 이후도 문제다.
중국에까지 다녀온 작품이라는 명분으로 어느 때인가 보물 국보 재심사를 요청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 엄밀한 진위 여부 판정 대신 어울렁더울렁 보물나 국보 지정을 할 수도 있다. 우리 미술사가 엉망이 되는 건 삽시간이 아닐까? 이번 스캔들은 우리 문화의 앞날이 달린 문제다. 사안 자체가 크지만,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
한국 문화계를 대표하는 분들인 강우방과 최완수-유홍준 중에서 어느 한 편은 틀린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생산적 논쟁이 가능할까? 학계의 자체 여과 과정을 기대할 수 없다면 주무부처 문화관광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진상조사팀을 만들어 대응하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단순한 착오나 학문적 견해차가 아니라 무언가 냄새나는 결탁과 음모가 있었는지도 밝히는 게 필수인데, 이미 거대한 의혹으로 번진 이 사안을 대충 덮을 순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도 유야무야된다면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것도 생각 못할 게 없다. /조우석 언론인
역시 진위 논란 속의 '명선'. 간송미술관 소장으로 사이즈가 크다(57.8 x 115.2㎝)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