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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의 헬로 스웨덴] 경쟁과 협력 사이 어린이 교육 갈등

2019-07-20 08:4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이석원 객원 칼럼니스트

스웨덴의 어린이 교육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자율'과 '협동'이다.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하지 않고, 함께 성취해 가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학교 교육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간다.

스톡홀름 인근 호숫가 마을 마리에프레드(Mariefred)에 사는 민성혜(가명)씨는 스웨덴에 정착한 지 이미 5년 됐다. 민 씨의 아들은 처음부터 스웨덴 학교를 다녔다. 정 씨는 걱정이 많았다. 언어도 그렇고, 하지만 염려했던 동양 아이에 대한 차별도 없었다. 오히려 교사들은 아이에게 더 많이 신경을 써주었다. 

아이가 2학년 때 학교에서 담임교사가 정 씨를 불렀다. 교사가 대뜸 "아이가 집에서 뭘 합니까? 집에서 어떤 공부를 시키나요?"하고 묻더란다. 정 씨는 특별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고, 배울 것을 예습하는 정도라고. 그랬더니 교사는 "예습이요? 그건 반칙인데요"라며 웃더란다. 왜 아이를 출발선에서 한 발 앞에 세워놓느냐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정 씨는 이내 무슨 이야기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스웨덴 생활 3년차인 김태원 씨의 11살 아들은 축구에 소질이 있다. 얼마 전 학교에서 축구 시합이 있었다. 경기 중 강 씨의 아들이 덩치 큰 스웨덴 아이의 태클에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심판인 체육 교사는 호각을 불지 않았다. 

스웨덴 아이들은 경쟁 보다는 협력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PISA 중위권 등 교육의 변화에 대한 요구도 적지 않다. 사진은 한국 문화 축제에서 Kpop을 배우는 스웨덴 청소년들. /사진 =이석원


강 씨는 체육 교사에게 항의했다. 아까 그 아이는 명백한 반칙이었는데 왜 제지를 하지 않은 것이냐고. 체육 교사는 "나는 전문 축구 심판이 아니다. 나는 경기 중 최소한의 개입만 한다. 경기는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경기를 마친 후 강 씨는 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아들은 "아빠, 우리는 그냥 축구를 즐긴 것뿐이야. 그리고 그 아이는 고의로 나에게 반칙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것 때문에 우리 경기가 망친 건 아니잖아"라고 대답했단다. 강 씨는 그 날 두 번 머리가 띵했다고 한다.

'얀테의 법칙'과 '라곰(Lagom. '적당한, 알맞은'이라는 뜻)'이 지배하는 스웨덴의 학교들은 학생끼리의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다. 잘 하는 학생을 격려하지만, 못하는 학생을 질책하지 않는다. 시험 성적을 매기기는 하지만 그 성적은 공개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은 알 수 있지만 다른 친구들의 성적은 알 수 없다. 근본적으로 경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인위적인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 것은 비단 학교 성적만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스웨덴 청소년들은 승리에 몰두하지 않는다. 물론 축구든, 아이스하키든 열띤 응원은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경기 결과에 대해서 환희나 아쉬움은 있어도 즐긴 것 자체가 만족이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을 부추기거나 강요하지 않는 교육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공부든 운동이든 또는 유치원의 재롱 잔치까지도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노력의 대가가 늘 최고의 결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 때부터 안다. 비록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름다웠다면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스웨덴으로 이주한 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스웨덴 학교에 다니는 자기 아이들의 학습 능력 저하를 우려한다. 스웨덴 내부에서도 스웨덴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스웨덴의 학업 성취도는 꽤 낮은 편이다. OECD가 3년에 한 번씩 조사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스웨덴은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속한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인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는 OECD가 교육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회원국은 물론 주요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에 대한 교육 수준을 점수로 평가한다. 

가장 최근인 2015년 PISA에서 –2018년 PISA 결과는 오는 12월 3일 발표될 예정이다- 스웨덴의 3과목 평균 순위는 평가 대상국 73개국 중 25위(읽기 17위, 수학 24위, 과학 28위)였다. 한국이 9위(읽기 7위, 수학 7위, 과학 11위)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순위다. OECD 회원국만 따져도 35개국 중 18위. 한국은 5위다 스웨덴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스웨덴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놓고 스웨덴 내부에서도 '학생들 간의 경쟁 약화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낮게 만든다'는 문제 제기를 한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은 결국 서로간의 경쟁의식이 약하다보니 더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지는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이다.

PISA의 순위 하락에서 드러나는 경쟁의 약화는 스웨덴 사회의 발전을 더디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아직 자신들의 교육을 지키려고 한다. /사진=이석원


그러나 세계 최고의 교육 시스템을 자랑하며 PISA에서도 늘 최상위권 순위를 기록하는 핀란드의 저명한 교육학자 파시 살베리 교수는 전혀 다른 분석을 한다. 살베리 교수는 "스웨덴은 PISA가 처음 실시된 2000년대 초반보다 최근 학생들 간의 경쟁을 강화시키면서 오히려 순위가 내려간 것"이라고 말한다. 

1992년 스웨덴 의회를 통과한 교육정책 개혁안은, 스웨덴 학교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시험을 통한 학교 선택권을 강화했다. 3학년과 6학년, 그리고 9학년 때 치른 시험 성적은 진학할 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된다. 스톡홀름의 경우 총 340점 만점에 335점 수준이면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진학할 수 있다. 

살베리 교수는 이런 스웨덴의 경쟁을 유도하는 교육 개혁이 오히려 PISA 순위 하락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살베리 교수는 "스웨덴이 20여 년 전까지 유지하던 평등의 교육을 포기하고 개인 성과 위주 경쟁의 교육을 선택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업의 질을 떨어뜨리고 PISA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일정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경쟁은 사회 발전의 필요불가결한 존재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서도 경쟁이 부족해서 사회 발전 속도가 더디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대외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이 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웨덴 내에서도 경쟁을 강화하면서 협력과 조화를 이루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다. 이는 스웨덴 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이석원 객원 칼럼니스트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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