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탐험(20)-나는 과연 어떤 샷을 날리는가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골프의 스윙은 지문과 같아서 사람마다 다르다.”미국의 프로골퍼 제임스 로버트가 한 말로,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골프의 스윙도 사람마다 결코 같을 수 없음을 설파한 골프 명언이다.
사람마다 스윙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도 스윙마다 같을 수 없는 게 골프 스윙이다. 같은 샷의 완벽한 재현은 꿈일 뿐,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손을 씻을 수 없듯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더라도 완벽하게 같은 샷은 재현할 수는 없다. 다만 비슷한 샷을 날릴 수 있을 뿐이다.
사람마다 스윙, 즉 샷은 다르지만 샷의 종류는 분류할 수 있다. 페이드나 드로우, 낮은 탄도나 높은 탄도의 샷, 백 스핀 정도를 조절하는 샷 등 기술적인 샷을 논외로 하면 모든 골퍼의 샷은 다음의 세 가지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음으로 날리는 샷, 몸으로 날리는 샷, 클럽으로 날리는 샷. 구력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샷을 보는 지혜를 얻은 것을 둔재의 소치로 돌리더라도 아직 아무도 이런 카테고리로 샷을 분류한 적이 없다는 데 위안을 얻는다.
골프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터득하는 게 몸으로 날리는 샷이다. 골프 선배나 레슨코치는 골프 걸음마를 하는 사람에게 그립 잡는 법, 스탠스 취하는 법, 그리고 아주 초보적인 그러나 평생 골프의 기본이 되는 스윙 동작을 가르친다. 처음 골프를 배우는 사람은 골프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에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여 골프에서 요구되는 동작을 취한다.
인내심을 갖고 몸으로 날리는 샷을 제대로 터득하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몸으로 날리는 샷을 완전히 터득하기 전에 마음으로 날리는 샷으로 넘어간다.
▲ 마음의 샷은 종잡을 수 없다. 남들보다 좋은 샷을 날리겠다고 욕심내는 순간, 지난 홀의 미스샷을 만회하겠다고 이를 악무는 순간 미스샷을 날리기 쉽다./삽화 방민준 |
레슨코치가 시키는 대로 7번 아이언으로 기본적인 스윙에 의한 샷을 날리는데 싫증을 느낀 나머지 남들처럼 거리를 내기 위해 익히지 못한 풀 스윙을 하거나 롱 아이언이나 드라이버를 휘두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독학파라면 몸으로 날리는 샷과 마음으로 날리는 샷을 거의 동시에 배운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샷의 질로 따지면 마음으로 날리는 샷이 가장 아래다. 몸으로 날리는 샷은 제대로만 익히면 신체조건을 십분 활용하면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샷은 종잡을 수 없다. 남들보다 좋은 샷을 날리겠다고 욕심내는 순간, 지난 홀의 미스 샷을 만회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정상적인 샷은 실종되고 만다.
보통 마음을 어떤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있는 수준 높은 경지로 이해하는데 사실 마음이란 아무짝에도 믿을 게 없다. 한 순간에도 온갖 잡념을 불러일으키는 요물이다. 마음 가는 데로 행동했다간 살아갈 수 없다. 불필요하게 겁먹거나 욕심을 내고 무리한 다짐을 하고 다가오지도 않은 불행과 행복을 가정하며 희로애락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여름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나듯 제멋대로 피어나 흩어지고 사라지는 마음을 무슨 수로 믿겠는가.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마음은 제어대상이 아니다. 마음이란 아무도 못 말리는 망나니다. 잡히지도 않고(untouchable), 통제할 수 없는(uncontrollable) 녀석이다. 이런 마음에 좌우되는 샷이라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골프 볼이나 클럽 개발에 활용되는 로봇 샷이 항상 일정한 샷을 날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최상의 샷은 클럽으로 날리는 샷이다. 클럽은 각기 다른 로프트와 길이, 무게로 스윗 스팟에 맞히기만 하면 일정한 비거리와 탄도, 방향성을 실현하도록 설계되고 제작되었다. 각 클럽이 갖고 있는 속성이 자연스럽게 발휘되도록 하는 샷이 바로 클럽으로 날리는 샷이다. 올바른 스윙을 터득한 몸은 클럽이 스윙 궤도를 내달리며 샷을 날리는데 도구 역할을 할 뿐이다.
나머지 말썽꾸러기 마음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샷을 날릴 수 있을 정도의 연습량과 마음을 투명하게 비우는 자기수련에 달려 있다.
메이저 타이틀을 34번이나 차지한 전설의 프로골퍼 진 사라젠(1902~1999)이 비기너들에게 던지는 충고는 곱씹어볼 만하다. “많은 비기너들이 스윙의 기본을 이해하기도 전에 스코어를 따지려 든다. 이것은 마치 걷기도 전에 뛰려는 것과 같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