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조선의 3대 천재'로 꼽혔던 이는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이다. 셋 다 문인인데, 이중 <임꺽정>의 벽초는 해방 이후 북한을 선택했으니 그렇다 치고, 우린 춘원·육당까지 모두 잊고 산다. 그들이 20세기 문화사·지성사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알려하지도 않는다.
왕년의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은 예전 "춘원은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라고 했지만, 그건 말장난이다. 우리 지성사의 내출혈 구조에 대한 진단과 치유 노력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 풍토를 냉정하게 지적한 것은 20년 전 교포 정신과의사 이중오(당시 뉴욕주립대 교수)가 쓴 <이광수를 위한 변명>(중앙M&B)이다. 그는 춘원 백안시 풍토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광수는 한국지성사의 뜨거운 감자다. 그는 이제 죽은 개처럼 불리고 있다. 누구든 그 이름만 들먹거리면 마치 X이라도 밟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 자기 이름이 그와 동렬로 열거되면 모욕당한 것처럼 분개한다. 이러한 풍토는 온당한가?"(28쪽)
무려 40년만에 전집이 나오는 춘원 이광수. 근대문학의 첫 장을 연 걸출한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해온 그를 애써 외면하는 건 심각한 자기 부정에 불과하다.
고질병인 춘원 백안시 풍토
근대사의 성취와 아픔을 함께 상징하는 춘원은 지금 친일파라는 무덤에 봉인됐고, 오랫동안 사회적 익명 상태다. 그 봉인이 해제될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은데, 춘원(1892~1950)의 문학을 모은 정본(定本) 전집(전 30권 내외 추정)이 40년 만에 출간된다. 춘원연구학회가 내년 춘원 70주기를 맞아 완간할 '춘원 이광수 전집'(태학사)이 그것이다.
이 중 1차분 3권이 최근 첫선을 보였다. 한국 근대문학 최초의 장편소설 <무정>을 제1권으로 해서 <개척자>와 <허생전>이 함께 나온 것이다. 새 전집의 특징은 기존 출판물에서 누락됐던 친일 작품, 일본어로 쓴 대일 협력 글까지 빠짐없이 수록된다는 점이다.
이광수의 전체 모습을 가감 없이 살펴보게 한다는 것이 편집 의도다.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편집 방향인데, 놀라운 건 춘원 전집이 1979년 우신사 전집 이후 처음이란 점이다. 근대문학의 첫 장을 연 작가를 우리가 내쳐 잊고 지내왔다는 뜻인데, 그만큼 춘원 백안시 풍토란 고질병이다. 그의 장편 <흙>, <무정>, <사랑> 정도를 중고생 시절에 읽고 바로 잊는다.
이후 누구도 그를 말하지 않으며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 기껏 <민족개조론>을 썼던 친일파라며 매도하는 게 전부다. 춘원에 대한 한국사회의 그런 표준적 인식은 요지부동이다. 누구라도 춘원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면 불이익을 당할 판인데, 독립적이어야 할 학문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그 중 낫다는 평론가 고(故) 김윤식의 <이광수와 그의 시대>(전2권) 역시 춘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재확인해줄 뿐이다. 춘원은 돈키호테이며 자기도취자이자, 무책임한 위선자인 동시에 대중 취향의 질 낮은 통속작가라는 결론의 반복이 그 책의 전부다. 그런 김윤식의 한계를 대학원생이면 다 아는데도 아무도 선뜻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런 '담합의 카르텔'을 깬 것이 조금 전에 언급한 이중오다. 교포의 신분이라서 한국 사회의 눈에 안 보이는 감시 분위기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이렇게 발언할 수 있었다.
평론가 김윤식 책도 엉터리
전 30권 내외로 된 춘원 전집의 첫 권인 <무정>. 내년 춘원의 70주기를 맞아 완간된다.
"내가 읽은 그 책(김윤식의 <이광수와 그의 시대>)은 움직일 수 없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 차 마치 학술서로 위장한 정치적 팸플릿을 보는 것 같았다.…그렇게 설익은 비약과 거친 추론으로 가득 찬 이광수 죽이기 작업이…학문의 이름으로, 진리의 이름으로 저지를 수 있는 건지 묻고 싶다."(242쪽)
실은 이런 풍토에 질려 춘원의 아들 영근 씨는 아주 오래 전 미국으로 떠났다. 존스 홉킨스대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미 물리학계에서 활동했을 뿐 한국에 미련을 끊다시피 했다. 춘원의 손녀도 그랬다. 하버드대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한 앤 리(한국명 성희)가 그녀인데, 14~15년 전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무정>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부푼 구상을 안고 고국을 찾았다가 춘원에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에 놀라 바로 돌아가야 했다. 춘원과 그의 가족에게 한국 사회는 연좌제를 실시하는 셈일까? 그건 춘원에 대한 멸시를 넘어 한국인의 자기 모욕 내지 자기부정일 뿐이다. 굳이 헤아리자면 이런 심리다.
춘원이 우리가 원하는 영웅이자 호걸로 역사에 남아있지 못하다는 점에 대한 노여움과 배신감을 한국인은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해 못할 건 아니나 그건 근현대사의 실패를 춘원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잔혹행위에 불과하다. 끝내 그런 태도를 고집할 경우하면 춘원을 춘원으로 보지 못하고, 근현대사의 곡절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춘원만이 아니다. 영광과 상처가 함께 있는 근현대사의 거물인 문학의 춘원, 정치의 이완용, 경제의 박흥식(화신) 등 세 명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한, 즉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한국인은 언제까지 인식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역사의 진전도 없다. 그게 나의 오랜 판단인데, <논어>의 자로 편을 보면 제자 섭공이 스승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리 마을에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자기 아버지가 양 한 마리를 훔쳤다고 고발했답니다. 대단하죠?" 그 말을 들은 공자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러하냐? 우리 마을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양을 훔친 것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준다. 이게 우리 마을의 정직이다."
공자가 말하는 도덕이란 이토록 탄력적이고 여유 넘친다. 나는 그 말을 치유와 감싸 안음의 태도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물어보자. 과연 이광수가 누구였더라? 그의 문학의 실체는 무엇이더라? 그 간단치 않는 얘기는 다음 기회에 따로 언급해볼 일이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