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당시 서울대 이영훈 교수(현 명예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 중이던 과거사 청산을 주제로 한 MBC-TV '100분 토론'에 출연했다. 2014년 3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 규명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시점에서 토론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였다.
반대 진영의 한 의원이 "일본 위안부를 미국의 위안부와 등치시키는 당신의 주장은 일본 우익과 같은 주장이 아니냐?"며 이 교수를 몰아세웠다. 위안부가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라면 자발적으로 돈 벌러 갔고, 때문에 공창이란 소리와 뭐가 다르냐는 비판이었다. 직후 오마이뉴스가 그 얘길 둔갑시켜 "이영훈이 위안부를 공창이라고 했다더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반일 단체 정대협이 빠질 리 없는데, 그들은 "이영훈은 국립대 교수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했고, 여성의원 5명도 같은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일대 평지풍파 속에 이 교수 연구실에 계란을 던지는 학생까지 등장했다. 급기야 이 교수가 위안부할머니들을 찾아가 큰절을 하는 걸로 일단락을 지었다.
7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이영훈 교수를 강제 인터뷰한 것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현재 이영훈 교수는 반일에 반대한 죄로 박해를 당하고 있다.
아직도 친일파 논쟁이 웬일?
2019년 여름, 이영훈 교수가 같은 사안으로 다시 공격을 받고 있다. 그가 <반일 종족주의>(미래사)란 책을 펴낸 뒤의 상황인데, MBC는 이른바 이영훈 강제 인터뷰 영상을 7일 전격 보도했다. 그 직전 이 교수가 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을 무시한 처사인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국도 이 교수 비판에 합류했다. 그 단행본을 "구역질나는 책"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조국은 일본 정부 주장을 반복하는 이 교수 같은 사람들을 부역 매국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폈다. 이 교수도 '조국 교수에 대한 반론'을 공개한데 이어 시민단체인 '사법시험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이 8일 조국을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 양상이 복잡해졌다.
한마디로 안타깝다. 일제로부터 벗어난 게 70년을 넘은 지금까지 친일파 논쟁에 몰두해야 하는 한국 사회 자체가 비정상이다. 더욱이 한일 갈등 상황에서 보듯 반일 문제는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경제·안보환경까지 좌우하는 핵으로 떠올랐다. 한마디로 반일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 정서를 넘어 국가종교의 차원이다. 위력은 당신의 상상 그 이상이다.
이른바 우리민족끼리 마인드와 연결돼 믿기 어려운 괴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현재 "민족이 국가를 삼키는" 최악의 국면이다. 막연한 얘기가 아니다. 반일을 위해서라면 북한 김정은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논리가 정치권에서 공공연하게 나도는 게 바로 지금 상황이다.
지난 5일 민주당 최고위원 설훈의 발언도 그 맥락이 아니던가? 그는 "일본 식민 지배 청산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대한 대응은 남북 모두의 과제인데, 오늘의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남북이 협력한다면 마침내 민족이 하나 되는 그날도 앞당길 수 있다"고 버젓이 발언했다. 반일을 디딤돌 삼아 남북연방제로 가자는 다짐으로 들리는 것이 나뿐인가?
더 놀랍게도 이런 반일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가 야당과 시민사회에서 아직 없으며, 단지 반일의 대세를 거스른 자에게는 사회적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그래서 박해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 전 <제국의 위안부>를 썼던 박유하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시달려야 했다.
반강제로 위안부가 된 사람은 적지 아니 존재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위안부란 인권에 반하며, 피해자에 대한 치료와 생활복지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엄연히 그의 입장이다. 뭐가 문제인가? 그를 부역 매국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이들은 근대사에 보다 진솔하고 열려있어야 한다. /조우석 언론인
민족이 국가를 삼키는 국면
모두 근현대사의 진실을 토로한 죄이고, 한국인의 못 말리는 반일 정서를 거스른 죄다. 그 전 한승조 사건 역시 잊을 수 없다. 그는 2005년 "일본의 식민 지배는 축복"이란 발언으로 고려대 명예교수에서 쫓겨났다. 러시아 지배보다는 차라리 일본이 낫다는 뜻인데, 한국인은 그를 용서 못했다. 반일은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만드는 무서운 교리문답이란 뜻일까?
그래서 2019년 여름, 지금은 분기점이다. 현재 바람 불고 있는 반일 캠페인이 이영훈 같은 반일 반대론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몸집을 한 차례 더 불릴 가능성이 우선 없지 않다. 그 끝은 설훈의 밑그림처럼 최악의 경우 연방제통일일 수도 있다. 물론 가정의 하나다.
단 그 이전에 반일 도그마가 한반도 경제·안보환경까지 좌우하다가 경제-안보 복합위기로 나라를 몰고 가는 비극을 연출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둘 중 어디로 향하건 비극이라는 건 변함없는데, 어쨌거나 반일은 좌파가 내세우는 가장 대중적이고 위력 있는 무기다. 그래서 두렵고 불길하다. 우릴 덮친 반일 캠페인의 와중에 그래도 희망은 없지 않다.
이런 반일 도그마의 위험성을 감지하는 시민적 각성이 일부에서나마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그 증거가 이영훈 교수 등이 집필한 책 <반일 종족주의>가 베스트셀러로 떴다는 점이다. 그 책은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에서 정치·사회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전에 없던 현상이다.
차제에 밝히지만, 경제사 전공의 이 교수는 가장 균형 잡힌 연구자다. 1980년대 이후 민중 바람, 민족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뜻에서 그렇다. 몇 안 되는 이 땅의 자유주의자라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 이야기>, <대한민국 역사> 등 탁월한 저술이 있고, 무엇보다 1980년대 <해전사>의 낡은 패러다임을 깬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시리즈를 주도했다.
이참에 위안부를 둘러싼 그의 지론을 정리하자. 그에 따르면, 위안부란 성노예 개념으로 볼 수 없으며 일본의 공창제와 동등한 개념으로 운영됐다는 게 그의 실증적 연구다. 때문에 군과 정부에 의한 징집은 없었으며, 중개업자들에게 모집을 위탁시켰을 따름이다. 단 위탁모집 과정에서 중개업자에 의한 취업 사기나, 납치, 인신매매 등이 일부 일어났다.
반강제로 위안부가 된 사람은 적지 아니 존재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위안부란 인권에 반하며, 피해자에 대한 치료와 생활복지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엄연히 그의 입장이다. 뭐가 문제인가? 그를 부역 매국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이들은 근대사에 보다 진솔하고 열려있어야 한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