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금은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온갖 의혹의 중심에 있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있을 때 공직자 낙마 사례는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심지어 허위혼인신고라는 기상천외한 사유로 자진사퇴한 이도 있었다.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투자 의혹, 셀프후원 등 상식 이하의 사유도 많았다. 그런데 이들 모두 의혹을 합해도 조 후보자의 의혹보다 무겁지 않을 것 같다.
청와대 재직 내내 ‘인사 참사’라는 말을 달고 들었던 장본인이 이제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채 법무부장관이 되려하고 있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문제는 일반 국민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을 뛰어 넘어 위법 정황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데 있다.
조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둔 상황에서 검찰수사 대상이 됐다. 대대적인 압수수색 영장에 관계자들에 대한 출국금지도 나왔으니 혐의가 있다는 말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으로 야당은 가족의 증인채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여당은 이를 반대하면서 결국 합의됐던 2~3일 인사청문회가 무산됐다.
청와대의 임명 강행이 감지되자 야당은 다시 청문회를 열자고 했으나 조 후보자는 유례없는 국회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열었고, 여당 대변인이 사회까지 맡아 도왔다. 조 후보자의 국회 기자간담회가 열린 다음날 해외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전자결재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재송부 요청했다.
국회 정론관에서 2일 기습적으로 열린 기자간담회는 국회 내규법 위반에다 ‘김영란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다. 위법적으로 열린 간담회에서 조 후보자는 ‘몰랐다’ ‘모른다’ ‘알지 못했다’ ‘알 수 없다’만 111차례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기자회견 500분동안 4분39초마다 ‘모른다’고 한 셈이다.
특히 조 후보자는 자신의 딸이 병리학 논문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배경과 가족이 무려 10억5000만원을 투자한 펀드 운용사 ‘코링크’ 등 핵심 의혹에 대해 각각 “사실 잘 몰랐다” “이번 인사검증 과정에서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 5촌 조카를 비롯한 '조국 가족 펀드' 핵심 관계자들은 20일 전 필리핀으로 출국해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날 검찰의 압수수색이 또 단행됐고, 조 후보자 딸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드러났다. 조 후보자의 딸은 엄마가 재직하던 동양대총장상을 받고 이를 2014년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지원용 자기소개서에서 수상 기록으로 써넣은 사실이 있다. 이에 대해 동양대 측은 "조씨가 받은 상을 발급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이다.
또 “조씨가 영어를 잘해 논문 제1저자가 됐다”는 조 후보자의 설명과 관련해서도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3일 상반되는 자료를 공개했다. 주 의원은 공익제보자로부터 받은 정보라며 "조씨는 한영외고 시절 영어작문·문법·독해 등에서 9등급 기준으로 6~7등급 이하 성적을 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김도읍 의원은 "해당 논문 제2저자였던 정모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 현재 미국 콜로라도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며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에 전문 지식을 가진 정씨가 논문 작성에 당연히 훨씬 더 기여했을 텐데 조씨가 1저자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신임 법무부 장관직에 내정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8월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적선동 현대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정권의 고위공직자의 인사검증을 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법무장관에 내정될 것을 일찌감치 알았던 조 후보자가 자신을 향해 제기될 의혹에 대해 미리 살펴보지 않아 ‘모른다’고만 말하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데도 청와대는 조 후보자의 기자간담회 이후 “어느 정도 의혹이 해소됐다”고 본다는 입장을 냈다.
이제 문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주말 조 후보자를 임명하고 업무에 복귀한 9일 임명장 수여식을 강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지만 지금처럼 국민들이 정권 때문에 무력감과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고려대 동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국민을 바보로 안다”는 글도 올라왔다. 서울대 총학은 5일 ‘조국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9일 3차 촛불집회도 예고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 대통령이 국민감정에 반하는 숱한 의혹과 이에 대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조국 법무부장관 만들기'를 밀어붙이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하지만 현 정권의 판단은 조 후보자에 대한 임명 철회로 얻는 손실이 임명 강행으로 얻는 손실보다 더 크다는 계산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
앞서 청와대가 조 후보자와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이를 묵인한 것도 검찰수사마저 돌파해보겠다는 극약처방책이라는 분석이 있다. 결국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건 조 후보자의 법무장관행이 실패할 경우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고 내년 총선에서도 참패할 것을 우려해 임명 강행으로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 후보자에 대한 임명으로 모든 의혹은 묻히고 현 정국이 수습될 수 있을까. 검찰개혁은 국회입법 사항인데 벌써부터 야당은 조 후보자에 대한 특검과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어 국회 파행은 불 보듯 뻔하다. 조 후보자와 관련된 고소 고발도 넘치는 상황이다.
문재인정부가 정치권 갈등, 국민 갈등을 동력삼아 국정운영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조 후보자에 대한 임명 철회를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