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최근 미국이 북한에 대해 대화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던 중 북한이 전격 응하면서 ‘하노이 노딜’ 이후 6개월여만에 북미 간 실무협상 테이블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9일 밤 북한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1부상의 담화를 통해 “9월 하순에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최 1부상의 미국측 카운터파트인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6일(현지시간) 공개강연을 통해 북한의 협상 복귀를 촉구한 지 3일만에 이뤄진 것이다.
비건 대표는 당시 북미협상이 실패할 경우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을 거론하면서 북한에 압박 메시지를 던졌다. 동시에 비건 대표는 북한 비핵화 시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전략적 재검토까지 언급한 바 있다.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이 8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수일 혹은 수주 내 협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압박성 발언과 함께 구체적인 날짜까지 못 박고 나오자 북한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오전에 맞춘 담화 발표로 신속하게 응답하면서 긍정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만남을 갖는 건 좋은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에 따라 9월 하순 북미 교착 국면이 풀리고 한반도 정세가 다시 한번 중대 분수령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최선희 부상은 담화에서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릴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고, 미 국무부도 “아직 발표할 만남은 없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등 실무협상을 앞두고 북미 간 기싸움도 여전하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실무협상을 앞두고 북미 모두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지난 6.30 판문점 회동이 있었지만 재선운동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적으로 치적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또다시 협상에 실패할 경우 내부 반발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다.
특히 지난 판문점 회동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내” 실무협상 재개에 합의해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끝나는 대로 북미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북한은 잇따라 발사체를 시험 발사하면서 협상 재개를 지연시켜왔고, 이는 협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연합뉴스
북한은 하노이에서 ‘제재완화’ 카드를 꺼냈지만 협상이 결렬되자 “더 이상 제제완화 요구는 없다”며 발끈했다. 그러면서 ‘체제안전보장’을 새로운 협상 조건으로 제시하며 발사체 도발을 이어왔다. 이와 관련해 실제로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제재완화로 앞으로 미국에 안전보장 조치를 광범위하게 요구하면서 결국 난감해진 미국이 제재완화로 논의를 전환할 수밖에 없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 1부상은 이번 담화에서 “그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며 “미국 측이 조미 쌍방의 이해 관계에 다 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했다. 미국이 북한의 계산법을 명확히 알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무협상이 파열음을 낼 소지를 암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고, 폼페이오 장관은 “모든 나라는 자위권을 갖는다”는 등 북한의 체제안전보장에 대해 유화적인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게다가 비건 대표는 강연에서 주한미군에 대한 전략적 재검토를 언급하는 등 체제안전보장에 초점을 맞춘 모양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체제안전보장을 내세우면서도 제재완화를 노리는 것이 분명할 경우 단순히 대화 조건을 주한미군 감축이나 한미군사훈련 축소가 아니라 ‘전력 증강 중단’ 등 한미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울 수 있다. 여기에 북한의 요구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실무협상보다 정상회담 개최에 맞춰질 경우에도 실무협상은 진전되지 못할 것이고, 미국은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북한과 미국이 적극적인 모드에 돌입한 만큼 이달 말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장소는 유엔총회가 열리면서 이목이 집중되는 뉴욕보다는 워싱턴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양측이 장소 선정에서도 협상력 제고를 위해 각자의 주장을 내세워 ‘밀당’을 하겠지만 이번 대화가 평양에서 재개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외교가의 관측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