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교육감이 수장으로 있는 서울시 교육청이 최근 각 급 학교에서 애국가를 3도 낮춰 부르도록 한 것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쉽게 부를 수 있어서 좋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전교조에서 애국가를 기피시키기 위한 전략” 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김필주씨가 SNS 상에서 “3도를 낮춰 부르는 경우 노래는 단조의 기운이 느껴지는 매우 암울하고 어두운 맥 빠진 애국가로 변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애국가에 대해서 가사 내용의 부적절성, 작사가 문제, 가사와 노래의 부조화, 표절문제, 작곡가의 친일 논란, 작곡 취지에 대한 논란 등등 다양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었는데, 이제 노래를 부르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새로운 쟁점으로 제기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작품은 작곡자가 자신이 곡에 가장 적합한 조와 박자를 선택하여 작품을 쓰게 된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으로는 작곡자의 의도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조를 바꾸는 경우 음색, 음질은 물론 곡 전체의 느낌은 많이 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곡이라 할지라도 연주자나 지휘자의 작품 해석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에 지휘자가 다르거나 연주단체가 바뀔 때마다 많은 변화가 야기된다. 그러나 이는 악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작품을 임의로 변경하지는 못한다.
▲ 왕치선 작곡가가 4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교육쟁점 연속토론회- 애국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정책토론회에서 서울시 교육청이 최근 애국가를 3도 낮춰 부르게 한 것의 문제점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하지만 성악곡은 기악곡의 경우와는 달리 노래 부르는 사람의 음역을 고려하여 음역 조절을 하기도 한다. 많은 예술가곡들이 소프라노 버전, 앨토버전, 테너 버전 등을 가지고 있는데 성악가의 음역을 고려하여 원곡의 조를 바꾸어 준 경우라 하겠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작곡가가 선택한 원조를 지켜야하며, 이때 작곡자가 의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 교육청의 주도하에 애국가 낮춰 부르기에 대해서 전문적인 음악적 식견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노래의 조를 바꾸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서울시 교육청의 의견 또한 그르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의 논란이 있기 훨씬 전부터 이미 시중에는 애국가의 조를 바꾼 악보가 많이 통용되고 있었고, 이에 대해 그리 큰 논란이 야기된 적은 없었다. 또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노래방에 가서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의 키를 몇 번씩 바꿔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를 바꾼다는 것이 그리 생소한 일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2002년 월드컵이 진행되던 때에 많은 젊은이들이 국가적 상징물의 하나인 국기를 머리에, 어깨에, 옷으로, 기념품으로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비난의 대상, 혹은 불경하다는 비난을 받았겠지만 이때는 태극기를 사랑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널리, 다양하게 사용되었었다. 따라서 국가의 조를 낮추어 변성기 학생들이 부르기 쉽도록 하고 학생들이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겠다는 의도는 어찌 보면 시대의 변화를 민첩하게 읽고, 학생들의 어려움을 배려한 결정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 교육청의 시도가 새삼 문제가 되는 데는 단순히 부르기 쉽게 하고자 함이라 하더라도 그 추진 방법에 문제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새마을 노래 배포방식처럼 국가의 조를 바꾸어서 이것이 애국가의 표준인 것처럼 학생들에게 배포하는 처사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결정에 의한, 일방적인 배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나라의 “국가”의 조를 바꾸는 데 있어서는 학생들의 편의성뿐 아니라 음악적 영향, 국민 정서, 국가가 지니는 상징성 등을 고려해야했다.
또 교육청의 주장대로라면 변성기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애국가는 물론 변성기를 지난 학생들을 위한 애국가도 준비되어야 한다. 의도가 어떻다 하더라도 노래의 조를 교육청에서 임의로 바꾸는 경우 야기될 정서적, 사회적인 여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변화를 주도한 기관이 서울시 교육청인 점도 문제가 된다.
서울시 교육청은 서울 시내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의 학생은 물론 교사들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관련된 인원수와 그 영향력 또한 막대한 기관이다. 이러한 기관에서 국가를 변화시키는 결정을 하게 된다면 미치는 파급력 또한 엄청나게 된다. 한 개인이 자신이 부르기 편한 대로 노래의 높낮이를 조절한 일과, 영향력을 지닌 공공기관이 주도하여 조절한 것은 매우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학생 때 배운 지식과 경험이 평생 지속된다는 점에서 이번 시도는 보다 심도 깊은 고민과 전문가들의 검토, 그리고 국민적 공감을 얻은 후에 이뤄져야 할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한 나라의 “국가”에 대한 문제는 국가차원에서 논의하여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국가적 상징물에 대한 결정은 일개 시, 혹은 일개 교육청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일을 주도한 서울시 교육감이 관련한 단체의 그동안의 행적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이번 건에 대해 서울시 교육감이 애국가를 변성기의 학생들이 부르기 쉽게 하도록 하고자 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동안 전교조가 시도했던 여러 일들 때문에 이번 시도가 노래 부르기의 편의성만을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조희연 교육감은 본인의 의도가 왜곡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다 신중한 행보를 했어야 했다. 기술한 문제들은 모두, 아직까지 대통령령과 대통령 훈령에 애국가 제창에 대한 내용이 있을 뿐, 헌법이나 법률상에서 애국가를 국가로 지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야기되었다고 보인다.
지금까지 애국가는 음악적인 문제, 가사내용의 문제, 작사가의 친일문제 등등 많은 문제가 제기된 바 있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애국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애국가 개정 움직임’이 대두되었었다. 또 ‘국가’제정 움직임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공식 국가가 없으며 애국가는 어디까지나 국가 대용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애국가 개정과 국가 제정의 논리 보다는 애국가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애환을 같이한 노래라는 이유 즉 역사성과 상징성 그리고 50여년을 불려왔다는 관습을 중시해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차후에라도 애국가에 대한 논의는 다각적인 측면에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구에 회자하는 것처럼 애국가를 낮게 부름으로써 그 기운을 낮추려할 만큼 음악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시도했건, 아니면 노래 부르기의 편의성만을 고려하여 그 결정이 가져올 영향을 생각하지 못한 지침이던, 어떤 의도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해도 서울시 교육청의 이번 결정은 세간의 논란과 비난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왕치선 작곡가, 음악평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4일 <교육쟁점토론회-애국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정책토론회에서 왕치선 작곡가가 주제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