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들 전경./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손희연 기자]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신중론이 깊어지고 있다. 집값 안정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정책 취지와는 다르게 각종 부작용이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분양 단지들에서는 청약 광풍이 일고, 신축아파트 중심으로 서울 집값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상한제 시행 시기를 놓고 전망도 엇갈린다. 정부는 내달 중 상한제 시행을 위한 법 개정에 나서지만 국정감사라는 정치적 이슈가 맞물리고, 경제침체를 우려한 기재부도 시행 시기를 놓고 신중을 기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에 상한제 시행이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6일 관련 업계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위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내달 중 공포될 예정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12일 개선안을 발표 이후 40일간의 입법예고를 통해 규제개혁위원회,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내달 개정이 완료될 예정이다. 시행 시기와 대상 지역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심의)가 결정한다. 주심위는 국토부 장관 소관으로 국토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1차관 등 8개 부처 차관, 해당 시·도지사 등 당연직 14명, 연구원·교수 등 위촉직 11명을 포함해 총 25명으로 구성된다.
이에 내달 중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확대 시행을 앞둔 가운데 서울 주택 시장에서는 부작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이번 정책 취지는 사실상 서울 재건축 아파트를 겨냥한 정책인데, 최근 분양에 나섰던 서울 재건축 아파트들의 청약 열기가 뜨겁다. 서울 주요 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100대 1을 넘어서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래미안 라클래시(상아2차아파트 재건축)'는 평균경쟁률이 115대 1을 기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낮아 당첨만 되면 5~6억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고, 상한제 확대 시행에 따른 공급 물량 축소를 우려한 청약 수요자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집값 상승세도 매섭다. 정부의 상한제 발표 이후 주춤했던 서울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세에 다시 불이 붙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0.21%(20일 기준)큰 폭으로 오르며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0.07%를 견인했다. 같은 기간 서울 일반 아파트는 0.05% 올랐다. 특히 분양가상한제로 인한 공급축소 우려로 신축아파트 쏠림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5~10년 된 서울 신축아파트값이 치솟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3.3㎡당 1억원에 가깝게 오르며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상한제 시행 전부터 주택 시장이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상한제 시행 시기를 놓고 신중론이 커지고 있다. 시행 시기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선 국토부와 기재부가 시행 시기를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경기침체를 우려한 홍남기 부총리는 "분양가상한제는 강력한 효과가 있지만 공급 위축이라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측면을 함께 감안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10월에 개정작업을 마무리하지만 바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고 시장 상황 등을 봐서 관계부처가 별도로 판단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 철회를 요구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23일 재건축 단지 소급적용, 신축 아파트 가격상승 등의 부작용을 언급하며 상한제 시행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제출했다.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주택 공급 축소 우려 등을 이유로 도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도 지난 18일 상한제 대상을 공공택지, 주택도시기금 등 공공자금 지원 주택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내달 진행될 국정감사에서도 상한제 시행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토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내놓은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이 가장 이슈이다 보니 국감 때 주력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 내에서도 상한제 확대 시행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대철 한국주택협회장은 지난 25일 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미·중 무역갈등과 한·일 경제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수출부진 등 각종 경제지표 하방 압력이 강화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주택 공급 감소, 가격 상승 등 부작용이 발생했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면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안정될 때까지 위헌 논란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을 유예하거나 적용 지역 지정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상한제 시행으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주민들도 반발에 나서고 있다. 둔촌주공, 개포1, 잠실진주 등 수도권 42개 재개발·재건축 조합원 1만2000여 명은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상한제 소급 적용을 반대하며 도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상한제의 민간택지 확대 적용이 재개발·재건축 조합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분양가상한제 시행 시기와 지역이 불분명한 정부가 오리혀 시장의 불확실성만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 확대 시행에 대한 정부의 의도는 알겠으나, 시행시기나 지역이 불명확해 시장의 불안정한 심리만 부추기고 있어 부작용만 나타나고 있는 꼴이다"며 "현재 정부부처 간에도 입장 차이가 있고, 국감 등 정치권 내에서의 변수까지 있어 내달 중 시행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손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