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정치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하원의 탄핵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북한과 비핵화 실무협상이 임박한 시점이어서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북미회담을 앞두고 징크스처럼 찾아온 정치 스캔들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완전하지 못한 비핵화 합이를 할 경우 국내여론이 더욱 불리하게 돌아갈 것을 우려해 아예 회담을 결렬시킬 수 있다는 우려이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父子) 의혹에 대해 조사하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 헌터(49)는 2014년 우크라이나 최대 천연가스사 부리스마홀딩스의 이사가 됐고, 수십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다. 2016년 3월 당시 부통령이던 바이든은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부리스마 비리를 수사하려던 빅토르 쇼킨 검찰총장의 해임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5일 백악관이 공개한 두 정상간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바이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검찰을 막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민주당은 탄핵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제리 내들러 법사위원장과 애덤 시프 정보위원장 등 민주당 소속 하원 위원장 4명은 공동성명에서 “외국 정부에 우리나라 선거에 개입하라고 요청한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신행위”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원조 보류를 협박했든 안 했든 부정행위는 존재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전 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우리 대통령은 개인 정치를 신성한 선서보다 위에 뒀다”며 “하원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대통령에게 권력남용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탄핵 추진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하원 435석 중 과반인 235석을 점유하고 있어 하원에서 탄핵안 가결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체 100석인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53석을 점하고 있는 데다 3분의 2 찬성이 필요해 통과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하지만 탄핵 가결 여부와 상관없이 대선을 1년 정도 남긴 상황에서 탄핵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이 대선까지 이어질 것은 자명하고,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누릴 이점을 상당 부분 상실해 불리한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털 바클레이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열기에 앞서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청와대
북한이 비핵화 협상 시한을 연말로 못 박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집중할 수 없게 되는 것으로 지난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없이 결렬될 당시와 비슷한 국면을 맞은 것이다. 한차례 학습효과를 본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잃어 실무협상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당시에도 북미회담이 진행되던 시기에 마이클 코언 트럼프 대통령 전 개인변호사에 대한 미 의회 청문회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방해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이다.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에서 베트남까지 58시간 동안 7000㎞를 열차로 달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지만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기 전에는 미국과 마주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말을 시한으로 정해 최후 통첩했다.
물론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일부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한 것이 무리였다는 분석도 많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결렬이라는 선택을 한 것은 국내 여론을 더 신경썼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을 결렬시킨 뒤 3월3일자 트윗에서 “이것이 (내가 회담에서) 걸어나온 것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고 직접적으로 영향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또 회담 결렬 직후 하노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그런 거짓 청문회가 이처럼 엄청나게 중요한 정상회담 와중에 진행됐다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주장해온 ‘달라진 계산법’을 언급해 ‘선 비핵화 후 보상’이라는 미국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유연성을 발휘해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으로 담판 짓고 비핵화 로드맵을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번 유엔총회 기간 내내 각종 기자회견에서도 탄핵과 관련한 질문으로 총공세를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당분간 외교안보 현안을 후순위로 미룰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럴 경우 북미 간 실무협상이 흐지부지되면서 3차 북미정상회담의 추진 동력마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논란을 덮고 재선에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외교적으로 성과를 내기로 작정하고,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정반대의 관측도 나온다. 특히 청와대는 이번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9번째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백악관이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전환하자는 의미에서 트랜스폼(transform‧전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미국의 적극적인 입장 변화로 해석했다.
이는 백악관이 북미관계의 진전을 말할 때 사용해온 개선(improve)에 비해 달라진 기류를 반영했다는 평가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새판 짜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