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 원년 멤버이자 전통의 강호다. 수많은 명장들이 거쳐갔고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뛴 팀이다. 국내 최대 그룹 '삼성'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팀이다.
물론 경쟁이 치열한 프로 세계이다 보니 팀 성적에 부침은 있었지만 최근 수 년을 제외하면 삼성은 늘 강한 팀이었다. 우승도 많이 했다. 2010년대 들어서도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가장 많이 한 팀이 삼성이었다.
정규시즌 5연패와 한국시리즈 4연패를 했던 2011~2015년 이후, 그러니까 2016년부터 삼성 라이온즈는 달라졌다(?). 9-9-6-8. 올해까지 최근 4년간 삼성의 팀 순위다. '삼성왕조'라 불리던 시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위권 성적이고,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김한수 감독의 3년 계약 기간이 29일 시즌 최종전으로 사실상 끝났다. 3년간 삼성이 좋은 성적을 못냈으니 김한수 감독의 재계약은 힘들었다. '누가 삼성의 새 감독이 될까' 하는 궁금증에 빠져들기도 전에, 삼성 구단은 30일 곧바로 신임 감독 선임 소식을 전했다.
29일 시즌 최종전을 마친 삼성 선수단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허삼영 신임 감독. /사진=삼성 라이온즈
허삼영(47) 신임 감독. 낯선 이름이다. 물론 삼성 선수단 내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삼성에서 선수로 잠시(1991~1995년, 1군 4경기 출전) 뛴 투수 출신이고, 1996년 훈련지원요원으로 구단에 입사해 24년째 구단에 몸담아왔다. 전력분석 쪽에서 가장 오래 일했고, 최근 보직은 전력분석팀장(운영팀장 겸직)이었다.
파격적인 감독 선임이다. 허삼영 감독은 스타 출신은커녕 프로선수 경력도 거의 없고, 코치로 현장에서 지도한 경험도 없다. 삼성 구단은 전력분석 노하우가 풍부하고 삼성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 및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소통에도 능하다는 점을 허 감독 선임 배경으로 설명했다.
왜 파격적인 감독 선임인지, 삼성 사령탑을 거쳐간 역대 감독의 면면을 보자. 서영무, 이충남, 김영덕, 정동진(감독대행), 박영길, 정동진, 김성근, 우용득, 백인천, 조창수, 서정환, 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류중일, 김한수.
아마추어 시절부터 명망 있던 감독, 국가대표팀이나 프로팀에서 큰 업적을 남긴 감독, 스타 출신 감독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삼성은 하마평에 오르던 몇몇 지도자나 팀 레전드 출신들을 다 제쳐두고 허삼영 감독을 택했다.
경력만 놓고 볼 때 장정석 키움 히어로즈 감독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장정석 감독은 선수 출신이지만 코치 대신 프런트 생활을 오래 했다. 구단 운영팀장으로 일하다가 감독이 됐다. 장정석 감독은 히어로즈 지휘봉을 잡은 후 지난해(4위)와 올해(3위) 2년 연속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삼성이 인정을 하든 안하든, 장정석 감독 케이스를 벤치마킹한 것처럼 보인다. 허삼영 감독이 장정석 감독처럼 어려움에 처한 팀을 잘 추슬러 좋은 성적도 내고 지도력도 발휘하기를 구단도, 팬들도 바랄 것이다.
그래도 '삼성'이기에 히어로즈와는 또 다른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삼성이 '제일주의'에 빠져 있던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 한이 있었다. 좋은 지도자에 좋은 선수들이 모여 정규시즌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면서도 한국시리즈에서는 번번이 패퇴했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경험을 갖지 못한 채 뉴 밀레미엄을 맞아야 했다.
숱한 명장들을 감독으로 모셔 우승 한을 풀려고 했던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패퇴의 아픔을 줬던 해태의 김응용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이후에야 2002년 드디어 한국시리즈 우승 염원을 풀었고, 이후 선동열-류중일 감독으로 대물림하며 우승의 영광을 지켜왔다.
이제 프로야구에서 '삼성' 간판을 단 메리트는 없어진 지 벌써 수 년이 됐다.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사라지자 포효하던 사자의 이빨과 발톱은 무뎌졌다.
삼성의 오랜 팬들에게는 서운한 일이겠지만, 라이온즈가 프로야구단으로서 자생력을 키워가려면 거쳐야 할 시련이다. 삼성이 신임 감독으로 허삼영 감독을 선택한 것도 최근 구단 운영의 틀이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가대표 감독이나 우승팀 감독을 줄줄이 모셔오던 삼성은 이제 없다. 스스로 힘을 키워 밀림의 왕좌를 되찾는 '라이온킹'의 심바처럼, 삼성 라이온즈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