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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폭식, 세월호 선동형 광장민주주의 견제하다

2014-09-10 11:0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김규태 미디어펜 연구원
광장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체제이다. 민주주의는 과거 유럽의 군주제, 중국의 현 집단지도체제 및 북한의 독재체제 등과 함께 거론되는 국가통치체제 중 하나이다. 민주주의는 크게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로 나뉜다.

직접민주주의는 아고라(광장)에서 모여 의사결정을 했던 그리스 아테네와 같은 도시국가에서 일시적으로 유지되었던 체제이다. 납세-군역-재산권을 기초로 하여 시민이 규정되고, 소수의 시민들만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의사를 표하는 구조였다.

광장민주주의로도 불리는 직접민주주의는 구조적 이유로 인하여 시민 개개인의 의식이 성숙해야 지속가능한 체제이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정치에 대한 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중우정치나 정치적 무관심으로 인한 정쟁 혼란을 야기하기 쉬운 체제이기도 하다. 또한 유권자 집단이 커질수록 전체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 이미지 출처: http://www.greeklandscapes.com/greece/athens_agora.html

광장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의 이상적인 사례로 꼽히는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인구는 10만 명 이상이었으나 유권자인 시민 계층은 2만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하층 시민들은 먹고 사는데 바빠 정치에 무관심했다. 시민 이외의 계층은 절대 다수가 노예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체제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예 계층의 생산으로 지탱되었다.

현대사회는 대의민주주의 시대이다. 민의를 대변하는 대리인을 선거 투표를 통해 세운 뒤 그들에게 한정된 기간 동안 국가 통치를 위임하는 대의민주제는 중국과 북한 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행하는 의사결정체제이다. 직접민주주의는 현재 스위스와 같이 인구가 적은 몇몇 국가나 최하 단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한정적으로만 실행되고 있다.

소수에게 다수가 끌려가는 시대, 국회선진화법과 세월호 유가족

대한민국도 대의민주제에 입각해 세워진 국가이기에, 겉보기에는 국민 다수의 뜻을 반영하는 다수결 체제를 표방한다. 하지만 실상은 소수에게 다수가 끌려가는 시대이다. 그 전형적인 예로는 포퓰리즘 입법, 국회선진화법과 세월호 유가족이 꼽힌다.

포퓰리즘 입법은 특정지역, 직업, 계층에 따라 지대추구의 길을 열어준다.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입법부-행정부가 공공성, 지역개발, 균형발전, 경제민주화, 보편적복지, 무상복지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이들은 ‘조세’와 ‘규제’라는 도구를 통해 민간에 대한 합법적 강탈을 꾀한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스스로 자신들에게 견제로서의 족쇄를 채운 것이면서, 동시에 법률 재개정을 둘러싼 거래가 오고 가는 담합의 보증수표가 되어버렸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하여, 국회는 전기톱과 폭력이 난무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다수가 소수의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식물국회로 전락했다.

   
▲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가 없는 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의사결정비용을 높였다는 점에서 정치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이런 점에서 차라리 몸싸움을 벌였던 동물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현재의 식물국회보다 낫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7년 미디어법안의 처리과정에서 민주당 강기정의원이 의장석으로 뛰어들며 법안통과를 막으려 하고 있다.

세월호는 관이 주도하고 있는 앞의 두 경우와 다르다. 민간인인 세월호 유족은 해상에서 일어난 선박전복사고를 계기로 본인들에게 초법적 권한을 달라면서 국회의 파행을 초래하고 있다. 천여명 내외인 세월호 유족에게 수천만 명의 관심과 이익을 반영하는 입법부가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9.11 사태 당시 수천 사망자들의 유가족, 천안함 사망 마흔 여섯 장병들의 유가족, 허다하게 많았던 각종 SOC 참사(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에서 수천에 달했던 희생자들 유가족 등 그동안 여러 참사에 대한 유가족들의 행동과 세월호 유족들의 언행은 그 궤를 달리 한다.

세월호 유족은 극도의 피해의식에 잠겨 있다. 극에 달한 이들의 피해의식은 사고의 원인과 경과가 뚜렷한 세월호에 대해서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근대형법의 근간은 물론이고 삼권분립이라는 입헌주의와 준양당제나 다름없는 현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선동형 광장민주주의가 만연한 나라

대한민국은 ‘말이 앞서는 정치과잉의 나라’다. 언뜻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이 아고라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의사를 결정하던 직접민주주의와 유사해 보이지만, 현재 한국에 만연한 정치풍조는 고대 도시국가의 광장민주주의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우리나라에는 센세이션을 추구하는 언론과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 SNS로 인하여 별의별 선동이 난무한다. 지난 몇 년 간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광우병 사태, 여름철이 오면 언제나 제기되는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 북한의 천안함 폭침, 문창극 총리후보자 사퇴, 세월호 사고 등을 들 수 있다. 정국을 뒤흔드는 이러한 이슈들로 인하여 정치의 생산적인 순기능은 멈추고, 서로에 대한 비방과 의혹만이 횡행한다.

   
▲ 선동형 광장민주주의의 사례, MBC PD수첩에서 시작된 광우병 사태와 KBS뉴스가 야기한 문창극 총리후보자 사퇴

다수의 정치무관심 계층은 뒤로 하고, 정치적 편향을 띄는 소수의 오피니언 리더에 의존하는 ‘선동형 광장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좌와 우, 진보 보수의 구별 없이 어느 사안에나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세월호의 현재, 선동형 광화문광장 민주주의

세월호 사고는 이미 재판 진행 중인 사안이다. 광주지법에서 5건, 목포지원에서 1건이 진행 중이며, 조만간 2건이 추가되어 도합 8건의 재판(피고인 56명 안팎으로 예상)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1)

지난 7.30 보궐선거로 세월호에 대한 국민의 선택과 판단은 ‘이제는 세월호를 각자의 가슴 속에 묻고 민생에 전념해 달라’는 신호이다. 이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큰 틀에서 드러난 국민의 뜻이다.

하지만 보궐선거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등을 계기로 김영오씨를 필두로 한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 투쟁이 이어졌다. 야당은 이에 동조하고 지금까지 끌려 다니고 있다. 여야 간 특별법 재협상도 없던 일이 되었다. 국회선진화법이 아니라 세월호 유족에 의해서 국회 운영이 모두 중단된 상태이다.

   
▲ 단식 투쟁하던 중 입원한 김영오씨

세월호 유족은 현 정부와 청와대를 적으로 규정한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일가, 이들을 옹위하는 구원파 신도들, 구조작업에 나섰던 지역 해경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드높이기 보다는 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등 선후가 바뀐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본인들이 규정하는 대로라면, 유족이 그토록 주장하는 ‘진실을 쫓는 진정한 수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범인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국민들 대다수가 갖고 있는 상식에 부합할지 의문이다.

진행 중인 재판과는 상관없이, 세월호의 현재는 5천만 국민의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그들만의 ‘선동형 광장민주주의’와 다를 바 없다.

9월 6일 광화문광장 일베의 폭식 모임, 세월호 유족에 대한 반작용

정부가 추정한 세월호 수습비용이 6천억 원을 넘은 가운데, 이미 입법예고 되어 있는 세월호특별법은 6천억 이상의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일종의 ‘국민정서법’이다. 정부가 금전적인 책임을 우선 지고, 그 구상권을 유병언 일가와 청해진해운에게 행사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세월호 유족들은 여기에 그들만의 기소권, 수사권을 얹으려고 한다. 입헌주의-대의민주제를 훼손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정 현상이 극에 달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정 현상이 일어난다. 생태계에서 쉽게 발견되는 모습이다.

지난 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일베의 폭식 모임은, 극에 달한 세월호 유족들의 선동형 광장민주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 일베 폭식 모임
지시나 통제 없이 같은 뜻을 가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자유로운 모임을 가졌다. 남성 청년들이 대다수를 이루었지만, 많은 이들이 동참했다. 모인 이들은 ‘먹거리를 함께 나누고 먹는다’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단식의 진정성을 꼬집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주장을 펼쳤다.

일베의 폭식은, 그들만의 정치적 공세에 지친 일부 국민들이 광장민주주의의 또 다른 사례를 역으로 보여준 셈이다. 정치적 풍자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미숫가루 통, 자유시간 봉지, 오예스 박스가 군데군데 발견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현장에 대한 일침이었다.

세월호 유족은 한순간 정치적 풍자의 대상이 되고야 말았다. 이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풍자(諷刺)는 대상의 변화를 유발하거나 특정 현상을 저지할 의도를 가지고, 인물, 조직, 국가 등을 조롱하는 표현 기법이다. 과거 나꼼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풍자의 대상이 된 객체로서, 유족의 의미는 끝도 없이 추락했다. 물론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상식적으로 지나치다고 여겨질 정도의 요구를 저버리지 않는 유족들이 자초한 것이지만 말이다.

   
▲ 정치풍자의 대표적 사례, 나꼼수의 멤버였던 김어준씨가 2014년 진행하는 방송타이틀 KFC. 정치사회현안에 대해 실랄한 비판을 가하는 정치풍자프로그램.

세월호 유족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인륜을 저버린 금수와도 같은 행동으로 비춰지겠지만, 유족들의 지속적인 광장 점거를 정치적인 행위로 보는 이들에게는 통쾌하게 여겨졌다.

이벤트로서의 유족 단식과 일베 폭식, 사안에 따라 다른 정치풍향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라는 방식을 통해 국민들이 의사를 결정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라는 형식으로 선거 시기에만 드러나는 국민의 중지, 국민의 선택은 바다 아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빙산이다. 재보선에서는 일부분만 비춰지지만,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는 지역별로 유권자의 뜻이 확연히 드러나며, 대선에서는 한 가지 선택을 두고 몇 천만 유권자의 중지가 모아진다.

이와 달리 세월호 유족의 단식과 일베 폭식으로 대변되는 선동형 광장민주주의는 사안에 따라 달리 드러나는 정치풍향으로서, 이는 국민의 뜻을 의미하는 수면 아래의 빙산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드높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 빙산의 일각. 이미지 출처: http://www.mtflyfishingschool.com
선동으로서의 광장민주주의는 광우병 사태 당시 정점을 찍은 뒤, 좌파의 연이은 실책으로 한국사회에서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번 일베의 폭식 모임은 일부 시민의 손으로 다른 시민들의 선동형 광장민주주의를 무마시킨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지 않을까.

정치 이벤트로서의 한계

선거에서 유권자로 임하는 3천만 명의 국민들을 분모로 삼는다면, 폭식 모임 참가자들은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표를 의식하는 여야 정치인들에게는 큰 숫자가 아니다.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일베의 폭식 모임은 일회성에 그쳐 정치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여지가 크다.

향후 국회에서의 밀실 담합과 입법 거래로 인해 유가족들이 바라는 대로의 세월호특별법이 통과될지도 모를 일이다. 문창극 총리지명자의 낙마 당시 몇몇 사람들이 절망에 가까운 무기력함을 느꼈던 순간처럼 일베 폭식 모임 참가자들 역시 같은 심정에 처할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한계는 세월호특별법의 본질에 기인한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기소권, 수사권이 제외되더라도 6천억 원 이상의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세월호특별법이 다른 입법에 비해 매우 우월하고 특별한 위치에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정서에 따른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점에서, 세월호특별법은 소수에게 다수가 끌려가는 한국 정치 풍조 현실과 국민정서에 의존하는 한국형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증거이다.

일개의 정치 이벤트를 통해, 세월호특별법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전제로 ‘특별법을 입법하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론을 이끌어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미디어펜=김규태 연구원]

1) 피고인은 ▲ 승무원 15명 ▲ 선사인 청해진해운, 고박업체 우련통운, 한국해운조합 등 침몰 원인과 관련해 기소된 11명 ▲ 구명장비 점검업체인 한국 해양안전설비 전·현 임직원 4명 ▲ 선박검사를 맡은 한국선급 검사원 1명 ▲ 세월호 증선 인가 등 과정에서 비리 혐의를 받은 8명(목포지원) ▲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소속 해경 13명 등임. 피고인 수는 52명이지만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광주와 목포에서 재판을 받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51명임.
검찰은 부실 구조로 비판받은 목포해경 123정 정장, 언딘과 유착 의혹을 받은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 등을 조만간 기소하고 세월호 관련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전망됨.

부실 구조와 언딘 유착 등 두 사건에서 기소될 인원은 5명 안팎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두 건을 합치면 광주지법에서 처리할 세월호 관련 사건은 모두 8건, 피고인은 56명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됨.

(연합뉴스 2014. 9. 9. ‘51명+α 광주지법 세월호 재판 어디까지 왔나’ 기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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