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한다" 유시민 이사장을 늘 따라다니는 말이다. 얄미울 정도로 상대방이 할 말이 없게 만들었던 그의 노련한 토론 실력을 빗댄 말이겠다. 실제로 과거 그의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들어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그의 언변술은 진영을 떠나 인정할 수 밖에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이런 그의 명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싸가지는 없어도 옳은 말을 했는데 이제는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한다"는 것이다. 조국과 관련해 하루가 멀다하고 그가 쏟아내고있는 궤변을 듣고있으면 괜시리 그가 말했던 "60대가 되면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유 이사장은 공공연하게 정치와 선을 그어왔다. 정계은퇴 선언 후 책이나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그의 지식인적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하지만 언론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끊임없이 차기 대권 후보자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다른 어떤 현직 국회의원보다 그의 말이 더 비중있게 다뤄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유 이사장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나는 그가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는 순간부터 그의 신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등에 업고서 과연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 의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 손사래가 무색할 정도로, 유 이사장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조국 구하기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의 조국 구하기가 도를 넘고 있다. 한때 정의를 추구하던 그의 입에서 이제는 "검찰이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이라며 "수사를 끝내라"는 말이 나오고있다. 정의를 외치며 그래도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하던 그의 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의 발언은 곡학아세라는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 이사장의 조국 구하기는 최성해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창 세간이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사건으로 떠들석할 때, 유 이사장은 자기가 직접 동양대 최성해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여기 시나리오가 있다. (그대로 얘기해달라)"라고 했다고 한다. 이건 정계은퇴는 커녕 수사 외압으로 범죄다.
이후 유 이사장이 보여주는 조국 구하기는 기괴할 정도다. 정경심 교수가 PC를 반출한 것을 "증거인멸이 아닌 증거보존"이라며 희대의 궤변을 쏟아냈다. 법조계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라며 한탄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 이사장의 궤변은 검찰을 향한 절대적 악의에 기초한다. 그런데 유 이사장 스스로가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권력을 향한 검찰의 역할을 강조해왔던 사람 아닌가?
어쩌다가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바뀐 것이라곤 정권이 '다른편'에서 '우리편'으로 됐다는 것인데 정권에 따라 그의 판단도 변하는 것일까? 유 이사장도 결국 지식인은 커녕 또다른 진영 논리에 휩쌓인 '정치병자'인 것 뿐일까?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그의 행보를 보면 그런 것 같다. 이제는 지식인을 넘어 언론인이라 자처하는 그가 최 총장과의 통화를 외압이 아닌 "취재였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허탈감까지 느껴진다. 이런 그가 KBS를 향해 취재윤리나 논리적으로 정상적이지 않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을 보니 곡학아세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한때 정의를 추구하던 그의 입에서 이제는 "검찰이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이라며 "수사를 끝내라"는 말이 나오고있다. 정의를 외치며 그래도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하던 그의 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유 이사장은 정치병자에서 벗어나 '제대로' 싸가지 없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참으로 세월이 무심해지는 시절이다. /성제준 객원 논설위원
[성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