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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 줄게, 52시간제 대비해"…중소기업 도산 종용하는 당정

2019-10-19 15:19 | 박규빈 기자 | pkb2162@mediapen.com

정시 퇴근하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정부와 여당이 내년부터 50~299인 규모의 사업장에서도 시행될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중소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근무 시간을 제한하는 정책 도입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당정은 내년 1월 1일부터 50~300인 미만 규모의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될 경우 해당 기업들이 겪게 될 혼란을 감안해 계도기간 부여·인건비 일부 지원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부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020년 1월 1일부터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되는 근로시간으로 인해 애로를 겪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찾는 중"이라고 한 바 있다. 지난달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석 연휴에 중소기업 현장을 돌아본 후 페이스북에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에 대해 정부의 최종 대응 방향도 재점검 해야겠다"고 게시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달 9일 주 52시간제 도입을 미루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중소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주 52시간 근무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기업들에게 수용 여건을 충분히 조성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로 인해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정책 수정을 시사한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따라서 당정의 기존 입장을 번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됐고, 문재인 정부 내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속도조절론이 공식화 됐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관련 정부 부처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준비가 끝나지 않은 중소기업들에 대해 계도기간을 6개월 가량 주고,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을 적용할 계획이다.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은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받고 있는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된 것으로, 근로시간이 줄어 신규 직원 채용 시 1인당 80만원씩 최대 2년까지 지원하는 고용노동정책이다.

그러나 일부 민간기업에 세금을 투입해 임금을 보전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며, 한시적으로 시행할 경우 그 이후의 인건비 부족분은 고스란히 민간기업들이 책임져야 해 실효성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정부가 급격히 끌어올린 최저임금 탓에 경쟁력 저하가 뚜렷해진 중소기업에 부담을 지워 정부가 중소기업계에 푼돈을 주고 줄도산을 종용하는 꼴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9월 16일 기준 올해 8월까지의 법인 파산 접수 및 처리 건수./자료=법원통계월보


실제 법인 파산과 관련한 법원 통계 월보에 따르면 8월까지 접수된 건은 총 626건으로, 지난해 전년 동기 누계 533건 대비 117.4% 늘어난 수준이다. 이 추이대로라면 지난해 총 807건이었던 법인 파산 건수를 앞지를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한편 회생신청 규모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어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에 돌아오겠다는 기업 수는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회생과 법인 파산 신청 규모는 상호 비례한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현재 중소기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연기와 임금 지원 등의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달 25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중기중앙회 이사회 회의실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들을 초청해 △근로시간 유연제도 확대 △최저임금 구분적용 및 결정기준 개선 △주휴수당 노사자율화 △외국인근로자 수습확대 및 현물급여 최저임금 산입 △1년 미만 연차휴가 서면촉진제도 신설 등중소기업의 노동현안에 대한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대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이 기술개발과 혁신에 집중해야 하는 현재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노동규제로 현장은 매우 지친 상황"이라며 "전체 중소기업 중 56%가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경제상황·중소기업 준비상황 등을 고려해 도입시기를 최소 1년 유예하고, 우리나라가 경쟁하는 주요 국가 수준으로 다양한 유연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당초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사달도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종화 청운대학교 교수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고용 인원만 늘리는 사회주의 경제 모델의 표본"이라고 규정하며 "청년 실업난 해소와 전문인력 양성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라고 평가절하했다. 임 교수는 "문재인 정권 역시 주 52시간 근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일자리 함께하기' 따위의 사업을 시행한 모양"이라며 "지표상 고용률이 늘어나는 숫자놀음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은 무엇이 됐든 간에 기업에 압박으로 작용한다"며 "인력 채용 등 노동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큰 파장이 생겨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기업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도입하지 말았어야 할 최악의 고용노동제도"였다며 "이럴 거면 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했느냐"고 꼬집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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