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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전히 눈치없는 유니클로

2019-10-21 16:27 | 김영진 부장 | yjkim@mediapen.com

유니클로 후리스 한글판 광고 캡처.


[미디어펜=김영진 기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의심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일본 불매 운동으로 큰 타격을 입은 유니클로가 이번에는 광고로 또다시 논란을 키우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국내에서 방영된 15초 분량의 '유니클로 후리스 : LOVE & FLEECE 편' 광고에는 98세의 실제 패션 컬렉터(IRIS APFEL)와 13세의 실제 패션 디자이너(KHERIS ROGERS)가 출연해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문제는 유독 한국판 광고 자막에만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며 연도를 특정했다. 

80년 전인 1939년은 일제의 '조선인 노무동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조선인 노동자를 중요 산업으로 강제 연행하고, 많은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로 전선에 동원된 때였다. 이런 이유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위안부 모독' 논란이 일었고 유니클로는 결국 이 광고 송출을 중단했다. 

유니클로의 한국법인인 에프알엘코리아 임직원 대부분은 30~50대의 한국인이다. 이들이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위안부를 모독하거나 조롱하려고 일부러 광고 자막에 '80년도 더 된 일'을 넣었을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유니클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치지 않고서야" 일본 불매 운동으로 그렇게 큰 피해를 봤는데, 일부러 또다시 이런 논란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유니클로는 일본 불매 운동의 대표 브랜드가 됐고 이번 광고도 의도와는 달리 '위안부 모독' 논란으로 퍼졌을까?

정답은 명확하지 않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여론을 읽는 감각'을 꼽고 싶다. 정치권에서는 '정무감각'이라고 표현하지만, 유니클로에는 이런 감각이 부족한 것 같다. 

유니클로 측은 위안부 모독 논란이 일자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했지만, 역으로 유니클로는 한국인의 정서와 여론에 대해 제대로 리서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니클로 내부에서도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 상대방이 불쾌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성추행과도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성추행 의도로 말을 한 것이 아닌데, 상대방이 불쾌했고 성추행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성추행이 될 수 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유니클로는 말 한마디, 광고 자막 하나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어야 했다. 

일본 불매 운동으로 유니클로는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지유(GU) 매장 오픈, 2019F/W 유니클로U 판매, 2019 F/W JW 앤더슨 콜라보레이션 판매, 세일 등 기존 일정을 강행했다. 한마디로 '마이웨이'를 한 것이다.

만약 '여론을 읽는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여론을 의식해 예정돼 있던 행사도 취소할 수 있었고 신제품 론칭도 연기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니클로는 그러지 않았다. 인간 유형으로 본다면 대인 관계는 그리 좋지 않지만 일을 열심히 하는 '마이웨이형'과 비슷하다.

유니클로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국민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런 점도 인정해야 한다. 유니클로에게 지금 필요한 건 '마이웨이'보다는 '눈치'가 더 필요해 보인다. 


[미디어펜=김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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