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경찰의 모습이 가관이다. 백주대낮에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젊은이 19명이 경찰 코 앞에서 사다리를 타고 높은 담을 뛰어 넘어 남의 집을 쳐들어갔다. 하물며 그 집이 다름 아닌 미국대사가 거주하는 대사관저이니 할 말을 잃게 된다.
미국대사관저 난입 범행을 저지른 단체는 친북·반미 성향의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이다. 주한미군 철수, UN 대북제재 해제, UN사령부 해체 및 6·12 북미합의 이행 등을 주장하는 단체이다. 이번 사건 주동자 중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꽃물결 실천단'에서 활동한 인물도 있고, 작년 11월 "분단적폐 세력을 쓸어내겠다"며 결성된 '서울남북정상회담 방해세력 제압 실천단-백두수호대(백두수호대)'에서 활동한 인물도 있다
미국대사관저 난입 사건은 국제협약 위반이자 국제적 망신이다
외국공관, 관저 및 그 시설물과 비품 등은 1964년에 발효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Vienna Convention on Diplomatic Relations)'에 따라 보호된다. 동 협약 제22조는 '공관지역은 불가침(구역)으로 공관장의 동의 없이 접수국(the receiving State) 관헌이 들어갈 수 없으며, 접수국은 모든 침입이나 손상으로부터 공관지역을 보호하고, 공관의 안녕을 해치는 소요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해야 할 특별한 의무를 지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미 국무부는 "14개월 만에 대사관저에 불법 침입한 두 번째 사태라는 데 강하게 우려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이 사건에 대해 논평을 자제했던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유감의 뜻을 표명했고, 김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이 사실을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통보하며 "외교부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알겠다"고 답한 민 청장은 청와대 눈치나 살피고 있는지 모른다.
이번 사건은 국제협약 위반이자 국제적 망신이다. 국제사회, 특히 당사국인 미국은 이 사건 주동자들에 대한 법적 처리와 우리 정부의 향후 개선 조치에 주목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나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당사국이나 국민들에게 사과조차 없다. 그야말로 '이게 나라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의 허수아비 경찰
경찰은 이번 사건을 벌인 '대진연'과 관련이 있는 민간단체 '평화이음'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지난 22일 오전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평화이음'은 서울시에 등록되어 남북교류지원사업 등을 하는 단체다.
이날 경찰은 '대진연' 측이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대진연' 회원들은 경찰을 향해 "용역 깡패만도 못한 ××", "양아치 ×× 아냐 이거" 등 온갖 폭언을 해대며 이 현장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까지 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했던가! 미국대사관저 난입 사건에도 속수무책이던 경찰이 압수수색을 갔다가 법을 우롱하는 자들에게 농락만 당했다.
경찰관은 직무 수행 중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抗拒) 제지'를 위해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에서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의2). 민간인의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미국은 과잉진압 문제가 생길 만큼 공권력 집행이 단호하다. 한국에서처럼 경찰서에서 행패를 부리거나 경찰 차량을 습격하는 등의 난동은 목숨을 거는 중범죄다.
우리 경찰의 황당무계한 망동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17년 6월 경찰에 외부인 참여 조직인 '개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철성 당시 경찰청장은 '인권경찰' 운운하며 이 위원회의 권고안인 시위 진압용 살수(撒水) 차량 사용 제한, 시위에 대한 차벽(車壁) 설치 원칙적 금지, 시위 참가자에 대한 교통방해죄 적용 금지 등을 모두 수용했다.
이러니 국민들이 경찰의 '접근금지선(police line)'을 어린애들 줄넘기 줄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이게 '인권경찰' 운운하며 상부의 눈치나 살피는 우리나라 허수아비, 해바라기 경찰의 현주소다.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좌파독재 저지, 공수처 반대 등 현안 관련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젊은이들의 무개념과 후안무치
이번 사건 주동자 4명이 구속되었음에도 '대진연' 회원들은 "우리가 범죄자냐, 어이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은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저질러놓고도 연행 과정에서 인권침해 요소가 있었다고 큰 소리치며 "더 많은 담을 넘겠다"고 적반하장으로 막무가내였다.
구속영장 집행 도중 일부 '대진연' 회원들이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며 사무실에서 나가려 했다. 경찰이 이들을 제지하자 이들은 "12시 시험이다", "택시비 줄 거냐", "내 인생 책임져줄 것도 아니면서 ××야" 등 고성을 질러댔다고 한다.
이들의 무개념과 도를 넘는 후안무치가 입만 열면 '적폐'를 떠드는 이 정권의 '내로남불'과 너무 닮았다. 과연 이들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가 의문이다. '배째라'며 버티는 범법자의 배를 째지 않고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의무가 따른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경찰청장의 해바라기 충정(忠情)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이 여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검찰개혁 관련 보고서 2건을 '전 직원에 전파해주시고, 모든 국장·과장·계장급 이상은 필독해달라'는 공지와 함께 경찰청 내 모든 부서에 배포했다.
수사구조개혁단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경찰의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설득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다. '사냥처럼 시작된 검찰 조국 수사, 사법농단 수사 당시와 다른 법원의 이중성' 운운하는 이 보고서를 배포한 건 민갑룡 경찰청장이 고위간부회의에서 이 보고서들을 언급한 이후에 취한 조치다.
이들은 또한 '법원과 검찰의 탄생'(문준영 저)이란 책을 '청장님 지정 필독 도서'로 경찰청 각 부서에 공지했다. '각 부서가 개별 구입해서 국장님들께 전달해달라'는 추신까지 달았다. 이 책은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서울대 인턴 예정 증명서 발급을 지시한 의혹을 받는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장이 서평을 썼다고 한다. 2010년 발행되어 절판된 이 책을 구하느라 경찰 각 부가 난리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판과 공무원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다.
'검찰개혁'이 아니라 '경찰개혁'이 답이다
우리나라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신뢰도 최하위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관이 경찰, 국회, 검찰이다. 최고의 신뢰를 받아야 할 법원도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근의 버닝썬 사건처럼 각종 비리 연루 의혹과 정권에 줄 서려는 해바라기 처신 때문일 것이다.
경찰은 민생 최일선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조직인 만큼 각종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더 높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요구되는 조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경찰개혁’이 시급하다.
경찰과 함께 신뢰도 최하위인 검찰은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주문하며 임명한 윤석열 검사가 대통령의 복심을 거스르며 조국 전 장관 일가의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계속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이런 모습의 검찰이 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조국 장관의 사퇴와 정경심 교수의 구속을 지켜보며 '검찰개혁'이란 구실로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공수처' 설치가 '검찰개혁'인가?
'공수처 설치' 문제에 대해 헌법학자 허영 교수는 최근 "대통령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또 다른 권력의 시녀를 만들어 검찰을 견제하려는 의도인바, 국민의 기본권 실현이 아닌 대통령의 권한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공수처를 만들겠다는 것은 통치기관의 구성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공수처 설치 자체가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을 대통령이 견제하는 것이 '검찰개혁'이 될 수 없으며, 진정한 '검찰개혁'은 검찰권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검찰독립'에 의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경찰개혁'이지 '검찰개혁'이란 명분을 내세워 밀어붙이려는 '공수처 설치'가 아니다.
최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민갑룡 경찰청장을 국가공무원법위반, 경찰공무원법위반,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이번 미국대사관저 난입 사건 직후 민갑룡 경찰청장은 국민과 미국대사관에 우선 사과했어야 마땅하다. 정부도 미국대사관저 난입 사건에 대해 미국정부와 국제사회에 공식 사과해야 한다. 이런 기본상식조차 지켜지지 않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