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과의 전쟁에서 17번째로 '분양가상한제'라는 녹슨 칼을 빼들었다. 정부는 6일 서울 강남 4개구 22개동과 마포·용산·성동·영등포구 5개동 등 총 27개동을 분양가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했다. 툭하면 시장에 개입하는 이 정부의 헛발질이 또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걱정이다.
정부는 '집값과의 전쟁'을 치루면서 전매·대출 제한, 재건축 요건 강화, 세금 강화 등 온갖 규제를 동원했지만 시장에 참패했다. 2017년 8·2대책은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축소는 서민들을 사채시장으로 내몰았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지정,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에도 시장의 약발은 미미했다.
지난해 9·13일 발표된 종부세율 중가, 대출 규제 강화에도 집값 오름세는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시장의 역설’을 받아들이는 순기능을 택하기보다 분양가 상한제라는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이 정부의 오기가 엿보인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런 생각이 틀렸다. '사는 곳(주거)'을 넘어 누구나 '살기 좋은 곳'을 찾는 시대다. 주거에 대한 생각 자체가 이쯤에 머물러 있으니 헛발질 정책과 온갖 규제가 난무한다.
분양가상한제는 철 지난 칼이다. 시장의 선택을 규제하는 것은 정책중 가장 하책이다. 조국 사태로 정시가 확대되면 강남을 비롯한 주요 학군의 집값은 더욱 뛸 것이다. 사진은 이문기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이 지난 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분양가 상한제·조정지역대상 선정을 다룬 주거정책심의원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남 불패의 이유는 명확하다. 강남은 대한민국 대표수도 서울에서도 가장 많은 부를 창출하는 곳이다. 서울 전체 총생산량(359조4399억)에서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의 생산량 규모는 111조4777억 원에 이른다. 서울 전체 총생산량의 30%를 넘는다.
강남구 사업체는 전국 자치구 중 1위다. 그중에서도 정보통신, 금융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체 비중이 많아 미래 성장 동력을 갖췄다. 고부가가치 업체들이 많으니 급연도 당연히 높다. 교육서비스업체 수도 전국 1위다. 자녀 교육 여건이 좋다는 뜻이다.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에 쓰이는 돈이 가장 많은 곳도 강남구다. 대한민국에서 기업, 교육, 문화, 복지 등 모든 부문에서 강남보다 나은 곳은 없다. 그래서 이 나라 고위 공직자들 대부분도 강남에 살고 자녀 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과 편법을 동원했던 아닌가. 그만큼 '사는 곳'이 아니라 '살기 좋은 곳'이라는 얘기다.
특단의 대책인양 내놓은 이번 분양가 상한제도 이미 써 먹을 만큼 써 먹은 유효기간 지난 대책이다. 시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1977년 중동 건설 붐으로 벌어들인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아파트 값이 폭등하자 '정부 고시 분양가' 제도를 도입했다. 시행 초기 듣던 약발은 공급 위축으로 1980년대 말 전셋값 폭등 등 부동산 대란으로 이어졌다.
1989년 지금 제도와 유사한 원가 연동 방식의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됐지만 1998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폐지됐다. 분양가 상한제는 노무현 정부 들어 강남 집값과 전쟁을 선포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택지에 이어 2007년 민간택지로까지 확대했다. 공급부족과 함께 시장의 반격으로 2008년 서울 집값은 9.56% 급등했다. 시장을 얕본 정부 정책의 참패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3개월간 아파트 매매가가 10% 이상 상승한 곳'으로 강화하면서 사실상 폐지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 기준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바꾸면서 분양가 상한제를 다시 소환했다.
임기 절반을 돈 문재인 정부의 17번에 걸친 소나기 대책은 노무현 정부를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투기지역 지정, 중과세, 대출 규제, 신도시 지정, 분양가 상한제까지 시장과의 전쟁에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다.
'살기 좋은 곳'은 차치하고 '살 만한 곳'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정부의 과제다. 규제는 풀고 재산권은 보호하며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허해야 한다. 이분법적 접근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불신을 싹 틔운다.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간단치 않다. 강남 좌파를 스스로 자인한 그가 보인 행태는 드라마 'SKY 캐슬'의 현실판이다. 이게 현실인 것이다. 어줍잖은 정책으로 시장을 이기려 하고 개인의 사유 재산과 자유를 속박하려는 것이 얼마나 오만과 독선에 찬 자기모순임을 알아야 한다.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책과 규제는 없다. 시장은 철저하고 냉혹한 경쟁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영리와 이익의 집합체다. 평등과 분배라는 사회주의적 접근 자체가 통하는 곳이 아니다. 모든 맹모들은 삼천지교를 꿈꾼다. 그들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 만큼은 아니더라도 '살 만한 곳'을 제공하는 것이다.
'조국 사태'의 후폭풍이 부른 정시 확대는 강남을 비롯한 유명 학군의 집값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주변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로 인해 로또 아파트라는 줄서기를 부를 것이다. 시장을 외면한 정부가 투기를 부추기고 집값을 부채질 할 것이다.
정치 논리로 접근한 정책이 시장을 이긴 예는 없다. 분양가 상한제는 시장 자체를 투기로 보는 엇나간 데 있다. 진단이 잘못됐는데 올바른 처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정책 하나가 나올 때마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하나씩 멀어진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인기지역의 부동산 공급을 제한할 경우 해당지역 부동산 가격은 상승 한다"고 단언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역사를 두루 살핀 결과다. 핀셋규제에 찍힌 27개동의 운명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미디어펜=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