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능력을 놓고 청와대와 국정원이 다른 말을 하고, 군은 지난 발언을 뒤집는 일이 벌어졌다.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위협을 축소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북한 편들기’가 낳은 자승자박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북한이 ICBM을 이동식발사대(TEL)에서 발사할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폐쇄할 경우 아예 ICBM을 발사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일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밝힌 이 발언은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과 같다.
하지만 북한은 이전부터 ICBM을 TEL에 싣고 다니며 발사해왔고, 더구나 ICBM은 동창리 발사장과 전혀 관련이 없다. 정의용 실장의 발언이 나온 이후 국정원과 군은 국회에서 상반되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가 보도자료까지 내고 정색하며 반박하자 군도 말 바꾸기에 나섰다.
김영환 국방정보본부장은 6일 국회 정보위 국감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발사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8일 국회 국방위의 합참 국감에선 “북한 ICBM은 현재 TEL로 발사 가능한 수준까지 고도화됐다”고 답했었다.
청와대는 TEL이 운반(Transporter), 직립(Erector), 발사(Launcher)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마지막 단계인 발사는 TEL에서 직접 한 게 아니라 로켓을 거치대로 옮겨 발사했으니까 능력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누가 들어도 궁색한 해명일 수밖에 없는데 더 큰 문제는 정 실장의 “동창리 시험장이 폐기되면 ICBM은 발사하기 어렵다. 자신있게 말씀드린다”는 발언에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은 현재 단거리미사일의 고체연료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장거리미사일 고체연료는 개발 중이라고 한다. 또 지금까지 북한은 ‘화성’이란 이름을 붙인 ICBM의 경우 동창리 발사장에서 발사한 적이 없으며, 모두 TEL에서 발사해왔다. 이미 TEL을 갖추고 있는 북한이 고체연료 개발에만 성공한다면 기습적인 ICBM 발사가 더욱 용이해졌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부합한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8월25일 전날 함경남도 선덕 일대에서 발사한 발사체에 대해 ‘초대형 방사포’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 아래 시험사격이 진행됐다고 밝혔다./노동신문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지금까지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체가 아닌 ICBM을 동창리에서 발사한 적은 한번도 없다. 소위 ICBM급인 화성 14, 15형 세번 모두 다른 곳에서 발사했다”며 “(북한은) 동창리를 폐기하든 하지 않든 현재 보유하고 있는 ICBM을 쏘는 것은 TEL에서 바로 쏘든 옮겨서 세워놓고 쏘든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지적처럼 “문 대통령의 폭스 인터뷰가 잘못된 내용이었다면 진정한 참모는 이를 수정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의용 실장은 그러지 못했고, 앤킷 판다 외교전문지 디플로맷 편집장은 트위터에서 “청와대 안보실장이 ‘동창리가 폐쇄되면 북한이 ICBM을 쏘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허위(jaw-droppingly false)”라고 꼬집는 수모를 당했다.
문재인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이 싫어할 만한 목소리는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노심초사하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왔다. 소위 외교에도 ‘밀당’은 필요한 법인데 이제 북한도 문재인정부의 히든카드는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듯하다. 남한 따돌리기에 들어간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운 길’과 ‘자력갱생’을 외치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국가든 개인이든 상호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의존도가 올라갈수록 대화가 원활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구 동독과 서독은 서로 교류 협력하면서도 물밑에선 상대 체제를 흔드는 치열한 심리전과 신경전도 펼쳤다. 문재인정부에선 이런 점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야당과 국민을 배척하는 '북한 바라기'만 있다.
노무현정부 때 6자회담의 수석대표이던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은 “햇볕정책이 김대중 대통령의 브랜드가 되면서 오히려 다음 정권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긴 과정으로 가야할 대북정책은 독점보다 공유가 필요하다”고 뼈아픈 회고를 남겼다. 정책을 공유하는 길은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정부라도 북한보다 우리국민을 설득시키는 것이 더 쉽지 않겠나. 이제라도 문재인정부에 이런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일까.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