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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왜 알고싶어하죠?"…서울 25개 구청, 제로페이로 쓴 업추비 공개 '천태만상'

2019-11-28 14:50 | 박규빈 기자 | pkb2162@mediapen.com

지난 5월 10일 서울 중구 무교동 세븐일레븐 무교점에서 제로페이 결제 시범을 보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안녕하세요? 서울시입니다. 제로페이, 쓸 데가 정말 많아졌습니다. 이제 편의점은 물론, 프랜차이즈에서도 쓸 수 있는 제로페이 서울, 공공시설 최대 30% 할인에 소득공제는 40%까지. 제로페이가 우리의 일상을 바꿉니다. 써보자, 제로페이 서울."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청 어느 부서에나 전화하면 들려오는 서울시의 제로페이 홍보 통화연결음이다.

서울시가 지난 5월 이래 시내 자치구청들로 하여금 자체 예산 중 업무추진비 일부를 제로페이로 결제토록 지침을 하달했다. 이와 관련, 일부 구청에선 제로페이로 결제한 업무추진비 내역을 적극 공개했지만 상당수가 비공개 방침을 내세워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의 행정 참여를 막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서울시 본청과 시내 25개 구청 제로페이 담당자들은 서울시가 각 구청들에 지난 5월 28일 이후 남은 업무추진비 중 70% 이상을 제로페이로 결제할 것을 독려하며 목표 수준을 설정해줬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은 서울 자치구청의 제로페이로 업무추진비를 알아보고자 서울시 행정국 자치행정과 행정팀 중 제로페이 자치구 협조사항 추진을 담당하는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해당 주무관은 "시에선 시 본청 것만 알고 있고, 각 구청별 제로페이 이용 실적을 취합하지 않는다"며 "필요할 때마다 자료를 (구청들로부터) 받긴 하지만, 회의용으만 대강 얼마인지만 받을 뿐, 공식적인 자료는 없다"고 답했다. 

자료를 받긴 하나 대(對) 언론 공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그는 "각 구청별 실적을 알고자 한다면 25개 구청에 개별적으로 문의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기자가 일부 자치구 업무용 제로페이 사용실적을 다룬 9월 9일 한 일간지 보도 내용을 언급하자 그는 그제서야 "해당 기자가 정보를 어떻게 입수한 모양"이라며 "제로페이가 서울시의 역점 사업인만큼 시가 종합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자치구청의 예산에 대해선 시가 간섭할 수 없기 때문에 모른다"고 둘러댔다. 시 재무국 재무행정팀의 한 주무관도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다.

시의 책임전가형 행정에 하는 수 없이 서울 시내 25개 구청 언론대응팀·전통시장과·재무과 지출팀·일자리경제과 등 제로페이 담당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이 같은 문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담당자가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경우도 있었던 등 본 기자가 들은 답변은 그야 말로 천태만상 그 자체였다.

서울특별시 개요도 및 25개 자치구 로고./사진=네이버


◇노원구청 "정보공개청구하세요. 기자라고 하셨는데, 확인할 방법도 없잖습니까?"

상당수의 구청 공무원들은 전화상으로 제로페이와 관련된 업무추진비 규모 공개에 대해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중구청 전통시장과와 송파구청 홍보담당관실 언론팀의 주무관들은 "내부 정보이기 때문에 유선 상으로 알려주기 어려워 공문으로 내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며 "'정보공개포털'을 통해 우리 구를 지정해 정보공개청구를 할 경우 다른 부서의 자료를 취합해 제로페이로 결제한 업무추진비와 목표액을 2주일 내에 통지 하겠다"며 정중히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대문구청·강북구청·양천구청 관계자들은 "서울시에 우선 물어봤느냐"면서 "정보공개청구 절차를 밟아오라"며 선뜻 관련 정보를 내주기 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원구청 주무관은 한술 더 떠 "기자라고 밝혔는데, 신분 확인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잖느냐?"며 취재 공문을 요구하기도 했다.

강남구청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제로페이 담당자가 맞긴 하지만 결정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청의 제로페이 실적을 알려주기는 어렵다"며 팀장과 이야기를 나눠보라 했으나, 그는 연차를 쓰고 있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도봉구와 광진구 역시 각각 담당자 출장과 연가를 이유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자리를 비웠고,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행정감사 때문에 자료를 취합해주기가 어렵다"고 응답했다.

금천구청 기획경제국 재무과 관계자는 "언론팀을 통해 들으라"며 홍보디지털과 언론팀을 소개해줬다. 그러나 해당 팀에서는 "아직 재무과에서 자료를 주지 않았다"고 단답해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마포구청·중랑구청 "제로페이 업무추진비 실적? 외부 공표는 못한다"

서울시 본청과 마찬가지로 관련 내용을 직원들끼리만 공유한다는 구청들도 있었다.

마포구청과 중랑구청 관계자들은 "공문으로 주고받고자 공식적으로 만든 자료가 아니고, 내부 보고용으로만 활용하고자 대략적인 수치만 종합해둔 것"이라며 "대외적으로 공표하기가 겁이 나고 부담스럽다"며 공개 불가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마포구청의 경우 정보공개청구로까지 공개하지 못할 건 아니라며 한발 빼는 모습을 모였다.

◇성북구청 "그걸 왜 알고싶어 하는데요?"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관련 내용을 취합해 공개할 수 있다거나 내부 사정상 공개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차라리 양반인 수준이었다.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곳들도 있었다.

지난 27일 성북구청 일자리정책과의 서 모 주임은 제로페이로 결제한 업무추진비 목표액과 결제액수 공개 문의에 "그걸 왜 알고싶어 하느냐"며 "구두로 설명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데?"라며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해당 주무관은 알아보고 이튿날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으나 회신을 주지 않았고, 재차 전화를 걸어봤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영등포구 역시 사정이 비슷했다. 영등포구청 재무과의 지출팀장 고 모 씨는 "서울시를 전화를 해보긴 해봤느냐, 시에다 보고하는 사항인데, 이런 상황에서 시 본청에서도 모른다거나 자료가 없다고 말하면 그건 알려주기 곤란하다는 뜻 아니겠느냐"면서 한껏 짜증 섞인 투로 대답했다.

정보공개청구로 지출 규모를 알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공개 건이라고 하면 알려줄 수 있겠는데,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답했다.

◇"저희 구청이요? 이만큼 썼습니다"…실적 공개한 구청은 9개에 불과

대다수의 구청들은 제로페이로 결제한 업무추진비 규모를 공개하는데 있어 소극적인 면을 보였다. 기자에게 제로페이 관련 실적을 흔쾌히 알려준 착한(?) 구청은 총 9개로, 서울 시내 전체의 36%에 지나지 않았다.

3억4985만원을 쓰도록 할당된 은평구청은 5억3753만8000원에 달하는 업무추진비를 제로페이로 결제해 153.6%라는 실적을 자랑했다. 이어 서울시가 월 2회 정보 제공을 요청해 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6억7600만원을 제로페이로 지출토록 돼있던 관악구청이 6억2026만9000원을 기록해 이용 실적이 102%를 기록했다.

용산구청 재무과 지출팀 관계자는 "당초 (제로페이 이용 목표액은) 3억3452만3000원이었는데, 우리가 쓴 액수는 2억3730만55원으로 70.93% 가량 쓴 것"이라며 "상당히 저조한 실적"이라고 말했다. 성동구청 재무과 지출팀은 "4억5842만원 중 3억원 가량 썼다"고 전했다. 이는 목표액의 65.4% 수준이다.

구로구청은 27일 기준 목표액 3억8708만7000원 중 3억0686만9000원, 동작구청은 4억3285만1000원 중 3억1099만4000원을 지출해 각각 79.27%, 71.84%의 집행률을 보였다. 종로구청은 2억5000만원을 썼다고 알려줬으나, 더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기엔 곤란하다며 목표액에 대해선 비공개 처리했다. 목표액 6억1251만9000원이 할당된 강동구청은 2억5042만5000원을 제로페이로 결제했다고 공표했다.

알려진 금액 중 가장 큰 액수를 배정받은 서초구청은 6억4540만원 중 단 한푼도 제로페이로 결제하지 않아 눈길을 끌고 있다. 서초구청 홍보담당관실 관계자는 "관련 지침이 내려온 5월 이래로 여전히 제로페이로 결제한 실적이 전무하다"고 밝혀왔다. 이 때문에 서초구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제로(0)페이를 이뤄낸 것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시장경제 원리와 배치된다"며 제로페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로페이로 결제한 업무추진비, 왜 실적이 저조한가?

실적을 공개한 구청들의 주무관들은 입을 모아 "식사나 다과 등 접대성 경비에 업무용 제로페이가 쓰인다"는 반응이다. 낮은 이용 실적에 대해 모 구청 주무관은 "신용카드와 제로페이는 지방회계법상 결제 시스템이 다르다"며 "결제 후 품의서를 올려도 되는 신용카드와 달리 제로페이는 사용 전 품의서를 금액과 함께 올려야 한다"고 해설했다.

이어 "제로페이를 간담회 비용으로 집행 시 까다로운 측면이 존재하는 등 실무적 애로사항 탓에 일선 공무원들이 이용을 꺼린다"며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해선 품의 후 2주 후 대금 집행이 이뤄지는 지방회계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서울시가 업무추진비에 대한 제로페이 사용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독려하는 측면이 있을지언정, 야단을 치진 않는다"고 부연했다.

지난 4월 3일 서울시의 '제로페이 강제할당 중단 약속 불이행'에 대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가 서울시청 앞에서 박원순 시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사진=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한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는 지난 1월 21일과 3월 29일 두 차례 성명을 내고 "공무원을 강제동원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서울시 제로페이 사업에 반대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로페이 강제할당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전공노 서울본부는 "박원순 시장이 제로페이 실적 올리기를 촉진하기 위해 실적 하위 10개구에 6개월 간 특별조정교부금을 동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재해 등 재정수요 발생, 재정수입 감소, 공공시설 신설과 복구, 보수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예산을 볼모로 잡는 부당한 지시"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시장이 (제로페이 실적 제고를 위해) 공무원들을 동원하고 자치구를 경쟁시키고 실적이 부진한 자치구에 특별조정교부금으로 압박을 가한다면,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대권을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시의 부당한 실적 강요에 굴복하지 않고 2만명 전 조합원이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혀 대립각을 보이기도 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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