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에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를 완공되면 그룹 내 전 계열사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를 감정가의 3배 넘는 금액에 낙찰 받은 18일 주가 하락과 더불어 신용도의 하락에 대한 우려가 제기 됐고 일각에선 ‘승자의 저주’가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텐다드 앤 푸어스(S&P)는 "신용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고 무디스 역시 현대차그룹의 현금보유와 창출능력을 갖췄다며 S&P와 같은 수준의 평가를 했다. 이런 불식이 사라지고 제2의 도약만 남은 현대차그룹의 앞으로의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현대차그룹의 R&D센터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양재동 사옥/뉴시스 자료사진 |
■ 현대차 양재동 사옥 글로벌 A급 인제 확보위한 R&D센터 활용...남영연구소와 시너지효과
본격적인 삼성동 시대가 열린 현대차그룹의 GBC가 완공되면 현재 분산된 계열사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후 남겨진 양제 사옥과 계동 사옥은 어떻게 활용될까.
일단 현대·기아차 등 5개 계열사가 있는 양재 사옥은 입주사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빈 공간은 연구개발(R&D) 센터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2006년 뚝섬 부지 사옥 이전을 추진하면서 양재 사옥을 R&D 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계획이 틀어졌다. 한전 부지 인수 후에 양재 사옥이 그룹 전체의 R&D를 관장하는 핵심 시설로 전환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산업계에는 최근 우수 R&D 인재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 최근 몇 년간 기업들의 R&D 센터는 도심 외곽으로, 지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선택으로 산업계는 우수 R&D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현대차만 해도 서울에 R&D 센터를 확보하지 못해 우수 R&D 인재들을 포섭하지 못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있었다.
현대·기아차의 핵심 연구기관은 경기 화성에 남양연구소인데, 연구원들에게 서울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구불구불 공공도로를 타고 들어가야한다는 불편함을 안겨주고 있다. 또 본사와 R&D 관련 의사소통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최근 조선, 화학 등 업종의 기업들이 서울에서 가까운 마북, 판교 등으로 R&D 센터를 이주,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 중인 추세를 감안하면 현대차그룹도 결국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남양연구소가 포화상태인 점도 R&D센터 확장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곳은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도로 주행 시험장, 라이딩&핸들링 성능개발동 등이 완공되면 375만㎡의 부지가 꽉 찬다. 연구인력도 1만여명이 넘게 근무하고 있어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회사 관계자는 “양재동 사옥에선 친환경차와 자율주행기술, 신소재 등 미래 신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현재 5000명이 근무하는 양재동 사옥이 R&D센터로 바뀌면 첨단 시험 장비를 도입하고 2000명의 핵심 연구원이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양재동 사옥에는 200여명의 정보기술(IT) 연구인력이 근무 중이다. 현대차는 앞으로 한전 부지 개발이 완료되는 2023년까지 매년 200여명의 글로벌 A급 인재를 영입할 계획이다.
R&D 센터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양재 사옥은 현대차그룹의 총본산에서 R&D 핵심 시설로 변신을 꾀하게 된다.
■ 현대차그룹 양재사옥, ‘양재 스마트 밸리’에서 선행기술 확보
현대차그룹이 양재동 사옥을 글로벌 R&D센터로 활용하는 것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R&D센터가 양재동 일대에 밀집해 있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두 업체가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로 자동차 전장과 배터리 등 자동차 관련 부품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현대차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선행기술 확보에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전자는 강남 R&D센터와 우면 R&D캠퍼스, 서초 R&D캠퍼스 등 세 곳에 총 6300명의 연구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LG전자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정보와 오락의 합성어) 기술과 전장부품, 전기차 등 친환경차 부품을 개발 중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5월 완공을 목표로 우면초등학교 인근에 서초동 삼성사옥 2.2배(5만9822㎡) 규모의 대규모 R&D센터를 짓고 있다. 총 1만명의 인력이 디자인, 소프트웨어 부문을 연구할 계획이다. 현대차 양재동 사옥이 글로벌 R&D센터로 거듭난다면 ‘양재 스마트 밸리’가 완성되며 시너지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지난 2000년 그룹 승계권 다툼이 발생하며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현대차는 계동 사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대차는 농협중앙회가 보유하고 있던 건물 한 동을 인수, 양재에 터를 잡았다. 지금의 현대차 양재 사옥 서관이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2006년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관을 새로 지었다.
▲ 범 현대 家의 상징, 현대계동 사옥/뉴시스 자료사진 |
■범현대 家 상징 계동사옥, 건설 계열사들로 재편...삼성동 GBC와 투톱 체재
범 현대가 정신적인 지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기업의 모태인 현대건설이 입주한 계동사옥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별다른 재편 계획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워낙 상징성이 큰 건물이기 때문에 사옥을 매각하는 일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된 건설 계열사들의 계동 사옥 이전 작업이 올해 초 마무리 된 만큼 계동 사옥은 현 체제로 유지될 전망이다.
계동 사옥은 1983년 각각 지하 3층과 지상 14층짜리 본관, 지상 8층 별관이 'ㄴ' 자 형태로 지어졌는데, 이후 18년간 옛 현대그룹 본사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유서가 깊다. 특히 그룹의 모태가 된 현대건설이 이 곳에 터를 잡아 30년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계동 사옥과는 연이 끊긴 듯했으나 2011년 현대차그룹이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된 현대그룹으로부터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을 인수하게 되면서 인연을 다시 맺었다.
현재 계동 사옥에는 지난해부터 진행된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엠코(현대엔지니어링에 흡수합병) 등 현대차그룹의 건설 계열사 이주를 통해 건설사 중심으로 구도가 잡혔다. 올해 본관에 머물던 보건복지부가 세종시로 이주하면서 현대건설의 이주도 본격화되며 올 초 재편 작업이 마무리된 상태다.
별관은 현대건설 소유지만, 본관은 현재 현대차와 범현대가의 일원인 현대중공업이 2개 층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현대건설이 계동 사옥을 현대차로부터 인수하려는 움직임 나타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지난해와 올해 본관에 입성하면서 5~10층, 15층 등을 현대차로부터 임대했다. 특히 본관 15층의 경우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서 현대건설이 입주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층은 과거에 고 정 명예회장이 회장실로 사용하던 층이다.
하지만 국내외 건설 경기침체로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건설로서는 연간 100억원에 달하는 본관 임대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전 부지 인수로 공간 협소 문제가 풀린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현대건설의 부담을 돌아볼 여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뿌리 기업'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계동 사옥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들은 바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현대차그룹이 2023년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완공하면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은 GBC로 모여들 전망이다.
현재까지 계열사 입주에 관해서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대차가 양재 사옥 부지 협소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져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웠다고 밝힌 점에서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계열사는 GBC로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은 물론 자동차용 강판 생산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 현대제철, 또 현대캐피탈 등 금융사들도 GBC에 입주할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펜=김태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