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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의 돌아보기] '국무총리' 정세균?

2019-12-13 14:17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내가 누구냐?" 혹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는 남에게는 던져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우리 사회의 '갑질'이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나리'인걸, '회장님'인 걸, '사모님'인 걸 평생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일일이 알아보나. 몰라보면 그러려니 해야 할 것이요, 나는 내 조직에서만 나리일 뿐이며, 내 회사에서 회장님이라는 걸로 그쳐야 한다. (물론 자기 조직이나 회사에서는 비정하고 비인격적인 갑질이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이 질문을 수시로 던져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내가 누구냐?"는 '자계(自戒,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함)'를 위한 것이다. 자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맑고 깨끗하게 하려는 사람이며, 자신에 대한 유일한 '갑'으로서 자신을 단속하려는 사람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기준을 높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기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된다. 기준이 높은 사회는 성숙한 사회, 안정된 사회이다. 우리가 도달하기를 그렇게도 바라는 사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냐?"를 꼭 물어봐야 할 사람은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자, 6선 의원인 정세균이다. 그가 다음 국무총리로 유력하다고 해서다. 국무총리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수하이다. 책임총리니 뭐니 하지만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을 총리는 없다. 

대한민국 국가 서열 2위로 헌법상 삼권분립의 한 축을 이루는 국회의 수장을 지낸 그가 국무총리가 되면 대한민국 입법부의 수장이 대통령 수하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대한민국 입법부는 행정부 아래 조직으로 격하되는 것이며, 대한민국 국회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게 되는 것이다. 웃기는 일, '쪽팔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대한민국 국민이 희화화되는 것이다. 기준 낮은 나라, 기준이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국무총리 지명설이 강하게 일고 있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에 대해 야당들이 일제히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사진=미디어펜


자리를 낮춰 옮겨가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차관을 지낸 사람이 시골마을 역장을 하고, 미국에서 육군 대령이 상사 계급을 달고 사병으로 재복무하는 경우가 귀하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전직 차관은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역장을 지냈으며, 미국의 대령은 일찍 전역하면 복무기간이 짧아 받을 수 없는 연금 때문에 사병 복무를 자원한 것이어서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이 정치적, 당리당략적 이해에 따라 국무총리로 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청렴히 살았던 고위공직자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택시운전을 한다든가,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드문드문 들리지만 전 국회의장이 국무총리로 가는 정도의 '쪽팔리는' 경우는 없었다. 

체면과 체통은 가식에 불과하다지만 품위 있는 사회에서는 지켜야 할 체면과 체통이 있는 법이다. 워낙 가난해 양반으로 살다가는 굶어죽을 것 같아 양반 신분을 버리고 체면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인(常人)으로 신분을 낮춰 처자식과 함께 남의 집 종살이를 한 선비도 있었다.    

정세균은 국무총리를 맡아달라는 청와대 요청에 "난 김진표를 밀었는데 그 불똥이 나한테 튀었다"고 불평하다가 청와대에서 보낸 인사검증동의서에 마지못해 동의했다고 한다. 그는 불똥이 튀었을 때 고매한 옛 선비들처럼 집에 칩거하거나 병을 칭해 바깥과 연락을 끊었어야 했고, 인사검증서가 왔을 때는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물어봤어야 했다. 

그리고 "나? 6선의원에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체면과 체통을 지켜야 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며, 설 자리와 앉을 자리는 이렇게 구분하는 거라는 걸 몸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야"라는 답을 검증서에 첨부해 돌려보내야 했다. 

아니다, 그에게서는 절대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2006년 초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장에서 곧장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서 "144명의 여당 국회의원을 지휘하던 당 대표가 일개 장관으로 격을 낮췄다"는 비판을 당 내외에서 받았다. 그가 이 자리 낮춤을 부끄러워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한 번 버린 몸, 두 번 못 버릴까? 

조국 후임으로 법무장관에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직전 대표 추미애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덥석 지명을 받아들인 것도 정세균이 길을 닦아뒀기 때문이지 싶다. 예전 새누리당 대표였던 황우여도 나중에 교육부총리를 했으니 개인의 기준을 낮추는 바람에 사회의 기준을 낮춘 '지도층'이 한둘이 아니구나!!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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