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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토소국 기술대국' 신념 구자경 명예회장…화학·전자 산업강국 기틀 마련

2019-12-14 13:43 | 조한진 기자 | hjc@mediapen.com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14일 별세한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으로 기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우리나라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끈 경영자로 평가 받는다.

고인이 열정을 쏟은 연구개발의 결과로 축적된 기술력 덕분에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과 사업 확장이 가능했고, 오늘날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화학∙전자 산업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다.

구자경 LG명예회장(왼쪽)이 1987년 5월 서울 우면동에 위치한 금성사 중앙연구소 준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LG제공


구 명예회장은 늘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강조했지만 고인은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며 ‘강토소국 기술대국’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구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믿음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작물을 가꾸는 방식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수확량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이후 교직생활을 할 때도 구 명예회장은 제자들에게 늘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그런 이유로 회장에 재임하던 25년 동안 LG는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 표현은 달라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구 명예회장은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럭키 울산 공장과 여천 공장에는 공장이 채 가동되기도 전에 연구실부터 만들어졌다.

고인은 대부분의 연구실이 각 공장 별로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1976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토록 했다. 이 곳에 개발용 컴퓨터, 만능 시험기, 금속 현미경, 고주파 용해로 등 첨단 장비를 설치하고, 국내외 우수 연구진을 초빙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가 집행됐다.

또 제품개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산업 디자인 분야의 육성을 위해 1974년 금성사에 디자인 연구실을 발족시키고, 일본 등 디자인 선진국에 연수를 지원하는 등 전문가 육성에 힘썼다. 

구자경 LG명예회장(가운데)이 1990년 6월 금성사 고객서비스센터를 찾아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격려하고 있다. /사진=LG제공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여기서는 고분자·정밀화학 분야를 집중 연구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ABS수지 등 다양한 신제품 개발로 플라스틱 가공산업의 기술고도화를 이끌었다.

이어 1985년에는 금성정밀, 금성전기, 금성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또 같은 해인 1985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제품시험연구소를 개설하고, 이곳에 가혹 환경 시험실, 한냉·온난 시험실, 실용 테스트실 등 국제적 수준의 16개 시험실을 갖춰 금성사 제품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했다. 

구 명예회장의 이 같은 연구개발에 대한 신념 뒤에는 우리 기술로 우리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우리나라의 산업과 기업의 수준을 한층 선진화해야겠다는 비장한 사명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산기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마음에 품어온 생각은 우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경영 철학에 대해 “첨단 산업 분야에서 제품 국산화를 통해 산업 고도화를 선도할 것이고, 부단한 연구개발을 통해 기업 활동의 질적인 선진화를 추구해 나갈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기술 연구개발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우수 인재 유치와 육성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다. “연구소만은 잘 지어라. 그래야 우수한 과학자가 오게 된다.” 1980년대 말 대덕연구단지에 LG화학 종합기술연구원 설립을 추진할 당시 구 명예회장은 프로젝트 출범 초기부터 우수 기술인재 유치를 위한 통 큰 투자를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구자경 LG명예회장이 1999년 4월 LG디스플레이 구미공장을 방문해 디스플레이 패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제공


구 명예회장은 연구 개발 조직에도 끊임없이 동기와 의욕을 북돋아주는 일에 늘 적극적이었다. 그는 연구소에 관한 한, 우수 인력을 어느 곳보다 우선해서 선발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임원의 정원도 제한하지 않았다. 또한 연구소를 지원하거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예산이라면 우선적으로 승인해 주었다.

또 1982년에는 그룹 ‘연구개발상’을 제정해 연구원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구 명예회장의 인재 사랑은 오늘날 LG가 R&D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열정과 인재에 대한 사랑에 남달랐었기 때문이었는지, 구 명예회장은 은퇴를 석 달여 앞둔 1994년 11월, 나흘에 걸쳐 전국 각지에 위치한 LG그룹 소속의 연구소 19개소를 일일이 찾아 둘러 보았고, 훗날 그때 심정을 ‘마음이 흐뭇함으로 가득 찼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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