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다. 성탄절인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생활 1000일째를 맞았다. 1000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인 상징 외에 종교적으로도 함의하는 바가 많다. 그만큼 의미를 둘 수 있는 짧지 않은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다. 수의 입은 전직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독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운한 나라다.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은 751일, 노태우 전 대통령 768일 옥중 생활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장수 수의 입은 대통령으로 기록을 써 가고 있다.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의미 뒤의 어두운 그림자다. 소통과 화합은 편 가르기에 묻혔다. 이게 현실 정치다.
국정 농단의 징후는 역사상 언제나 있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잣대의 나름이다. 촛불의 승리가 재단한 것이다. 비선실세 최서원(최순실)의 역할이 과연 어느 만큼이었을까? 박근혜 정부에 몸담았던 대부분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야말로 조선시대 사화에서나 봄 직한 추상같은 서릿발이 내렸다.
현실을 보자. '적폐'로 몰아치며 매서운 칼을 휘둘렀던 제일선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에 촛불은 환호했다. 사초를 뒤집을 듯한 칼날에 박근혜 정부의 녹을 먹은 사람은 피할 곳이 없었다. 엮으면 엮일 수밖에 없었다. 걸면 걸리는 직권남용은 전가의 보도였다.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은 외롭다.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불공정과 부정의 DNA조차 없다는 이 정권 실세를 겨냥한 용감함(?) 탓이다. 강남좌파로 자신의 DNA에는 사회주의적인 피가 흐르고 있음을 거부하지 않았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숱한 인사 문제를 일으켰지만 35일간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짙다. 6개월 남짓 수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팔았다. 군산에서 총선 출마 뜻을 밝혔다. 한 발 더 들어가 봤더니 조국 같은 내노라 했던 강남 좌파는 새 발의 피다. 청와대에 몸담은 인사 3분의 1이 부동산 달인들이다. '있는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운 이들은 한 채 남기고 다 팔라고 말한다. 배를 채웠다는 것인가.
성탄절인 25일 오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감생활 1000일째를 맞았다. 사진은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허리통증 치료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일 시끌벅적한 울산시장 선거 사건은 점입가경이다. 청와대의 하명 수사, 선거 개입 의혹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넘어서는 심각한 사안이다. 또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연루의혹이 있는 드루킹 사건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는 애초 규모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전직 국정원장을 줄줄이 구속시킨 문재인 정부의 이율배반이다.
화이트리스트니 블랙리스트니 모두 말장난이다. 이 정부에서 빚어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은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는 혐의다. 결국 공단사장 등 임원 1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이건 무슨 리스트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1000일 동안 한국 정치는 요동쳤다. 한미 동맹은 삐걱거리고 일본과는 냉전중이다. 중국의 사드보복은 달라진 게 없다. 북한은 다시금 도발의 진군이다. 우이독경이다. 독불장군 식으로 몰아붙이는 족보 없는 정책이 나라 살림살이를 거덜 내고 있다.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민심은 분열되고 있다. 광장의 정치, 마녀사냥 식 여론정치가 횡행한다. 국회는 야합을 넘어 국민을 능욕하고 있다. 밥그릇 싸움의 진흙탕이다. 성장률은 곤두박질치고 고용은 절벽이다. 한강의 기적, 열매를 곶감 빼먹듯 하고 있다.
소통은 불통과 동의어가 됐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죽어 나가는 국민 앞에 혈세 쏟아 이룬 성적표로 생색내기 바쁘다. 40년 피땀 흘려 가꾼 대한민국의 열매를 폄훼하면서 한편으로는 달콤함을 즐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 1000일, 문재인 정부의 대한민국은 안녕하십니까? 이 물음표에는 의미가 없다. 이미 결론은 나 있다. 그림자마저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저들에게서 공정과 정의, 평등은 ‘내로남불’과 동의어이다.
입법부 국회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사법부는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 자유가 사라진 민주주의 앞에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그들만의 세상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모두가 실패한 길을 재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득표율은 41.1%였다.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지역통합 대통령, 세대통합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취임식 연설에서는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뛰어넘어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직접 대화하겠다고 했다. 손은 강자가 내미는 것이라고 했다. 야당 탓만 한다면 그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통합은 지도자의 포기할 수 없는 소임이라고 했다.
다시 한 번 물어 본다. 박근혜 대통령 수감 1000일,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생각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 했는지? 현실적으로 판단한다면 진정한 국민통합의 날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 분열의 날로 기록되지 않을까. 문 대통령은 답하라. 지금 대한민국은 안녕하십니까?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