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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 입다문 좌파 '서북청년단 때리기' 적반하장

2014-10-01 10:42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해방 직후 등장했던 우파 청년단체 서북청년회(이하 서청) 때리기가 며칠 새 봇물 터졌다.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등 좌파 매체가 “서청은 손에 피를 묻혔던 백색 테러집단”“서청 재건은 섬뜩한 역사 퇴행”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런 엉터리 글을 대형포털이 연신 띄워주며 한국사회를‘좌파 전체주의’로 몰고 가지만, 서청 옹호는 단 한 꼭지도 없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 의원 하태경의 발언이 더 어이없었다. “좌우를 떠나서 (서청은) 파시즘이며, 민주주의자라면 반대할 수밖에 없다.” 현대사 공부가 미흡하니까 그 따위 실수를 반복한다. 그건 하태경의 개인적 한계이자, 좌파가 오염시킨 지식정보의 해악이 그만큼 우심하다는 뜻이다.
 

그런 거짓선전의 장막을 걷어내야 진실이 보인다. 때 아닌 서청 때리기는 9월 28일 광화문의 노란 리본을 정리하겠다며 나선 젊은 우파 단체가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를 표방하면서 시작됐다. 사회를 마비시켜온 세월호의 난장판을 정리하겠다는 저들의 등장에 좌파는 기다렸다는 듯 역공을 개시했다.

서청이 과연 ‘한국판 나치즘의 부끄러운 과거’일까?

이후 상투적인 덮어씌우기와 현대사 왜곡이 춤을 췄고, 심지어 재건팀은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서청이 과연 ‘한국판 나치즘의 부끄러운 과거’일까? 그 정반대가 맞다. 건국과정에서 세운 혁혁한 공로, 반공과 애국의 역할에 비해 홀대 받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던 비운의 애국단체가 서청이다.
 

재건준비팀의 리더인 우파시민운동가 정함철(41)은 “만일 그때 서청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었다”고 단언하는데, 그게 정확하다. 서청을 테러집단으로 몰 때 좌파들이 단골로 들먹이는 게 1947년 9월 부산에서 발생한 정수복 검사 암살사건인데, 그건 서청의 테러가 분명 맞다.
 

올해 초여름에 나온 증언록 <서북청년회가 겪은 건국과 6·25>(건국이념보급회 출판부)는 당시 테러를 했던 대원이 학생부 소속의 허원섭이고, 출근길의 검사에게 권총 두 발을 명중시켰다고 당당히 밝혔다.(33쪽) 단 테러 직전 정 검사가 남로당 비밀당원이라는 확증을 잡은 뒤에야 거사를 단행했다.
 

지금 좌파들이 애써 입을 다무는 게 해방 직후 부산지역이 준(準) 좌익해방구였다는 점이다. 이 테러 한 방으로 우파는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테러가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좋다. 당시는 총체적 정치투쟁이 벌어지던 특수상황이었다. 합법·비합법 투쟁을 병행했던 것도 남로당이 먼저였다.
 

그런 저들의 적색테러에는 질끈 눈을 감아주면서 서청만 백색테러라고 비난하는 건 바보짓에 불과하다. 해방 직후의 치안 공백을 서청이 채운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 왜 경찰 수뇌부인 경무부장 조병옥,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이 서청을 절대적으로 신임했을까? 그런 걸 애써 외면한다면, 그런 당신은 남로당식 역사관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다.
 

제주 4·3사건에 서청대원이 투입된 것을 놓고 좌파들은 맹비난하는데, 그 또한 적반하장이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는 민중봉기를 일으킨 남로당이 나쁘면 나쁘지, 그걸 진압했던 서청이 왜 비난을 받아야 할까? 걸핏하면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서청 대원이라고 욕하는 것도 기회에 따져봐야 한다.

   
▲ 때 아닌 서청 때리기는 9월 28일 광화문의 노란 리본을 정리하겠다며 나선 젊은 우파 단체가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를 표방하면서 시작됐다. 사회를 마비시켜온 세월호의 난장판을 정리하겠다는 이들의 등장에 좌파는 기다렸다는 듯 역공을 개시하고 있다.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서청 대원이라고 욕하는 것도 어불성설

이북 출신인 안두희가 서청 대원인 건 맞지만, 활동은 미미했다. 군 소위 임용을 전후해 자연스레 멀어졌다는 게 원로 사학자 이주영 교수(전 건국대 부총장)이 필자에게 밝혀준 내용이다. 외려 안두희는 김구의 한독당 비밀당원 신분을 유지했다. 그래서 김구가 묵던 숙소인 경교장에 출입이 가능했고 테러가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서청은 해방 직후 월남한 청년단체의 통합체로 결성됐다. 그런 서청을 무식한 깡패 테러리스트라고 업신여기는 악선전은 서청을 눈엣가시로 생각했던 북한이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에서 출발했다는 걸 필자는 최근에야 알았다.
 

“서청은 비교적 지적 수준이 높은 단체였다. 회원 태반이 이북에서 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 이상을 졸업했거나 재학중이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월남으로 북한은 엘리트를 많이 잃었다. 그게 북한의 낙후성을 가져온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게 <서북청년회가 겪은 건국과 6·25>를 쓴 서청 회원 출신인 손진(94) 대한민국건국회 명예회장의 증언이다. 참고로 그는 경기고보 출신의 엘리트다. 서청은 도덕적으로도 깨끗했다는 것도 이 책으로 알았다. 당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던 적산가옥을 챙겼던 회원은 거의 없었다.

서청 재건팀은 풀뿌리 우파시민운동에 새로운 희망

그렇게 서청이 파시스트이자 나치였다고? 실은 그런 오도된 인식을 심어준 건 이 나라의 정부였다는 걸 차제에 반성해야 한다. 서청회원 중 건국훈장을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건국을 반대했던 여운형, 주세죽(박헌영의 부인) 등 좌파에게 건국훈장을 추수했으니 이런 망발이 없다. 최근 좌파들의 서청 때리기란 이 나라의 끔찍한 혼란상을 새삼 보여주는 셈일까?
 

안타깝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을 딛고 서청을 재건하겠다고 나선 젊은 우파의 등장이 더욱 반갑다. 서청의 정신은 이어받되 오늘의 상황에 맞는 시민운동을 펼치겠다는 게 그들의 균형감각이다. 서청 재건팀이 서울이 아닌 지방(강원도 원주)에 근거지를 뒀다는 요소도 풀뿌리 우파시민운동에 희망적이다. 그들은 6년 전 광우병 파동 훨씬 이전부터 활동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능한 정부와 공권력을 대신해 세월호 저주의 리본을 치우겠다고 나선 그들, 서청의 전투정신을 되살리려는 그들에게 사회는 깍듯한 경의(敬意)를 표하는 게 우선이다. 상식이지만 서청의 재건은 난장판이 된 우리사회를 몸으로 지탱하겠다는 국민 저항권 차원의 보위책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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