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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통합, 황교안 등 떠밀며 몰아 세우지 말아야

2020-01-09 18:16 |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기자]조선시대 양반들은 상대적으로 일반 상민에 비해 건강한 편이었다. 일을 하는 양민들보다 운동량이 절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 상태가 좋았던 것은 '먹는 일'에 이유가 있다.

양반이라고 해서 상민들보다 무조건 잘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먹는 음식의 수준 또한 모든 양반이 상민보다 월등히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먹을 때의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 즉 '먹을 것'의 문제가 아니라 '먹는 일'의 문제였다.

조선의 양반, 즉 선비들은 보리밥 한 그릇에 간장 하나를 놓고 밥을 먹더라도 식사 시간이 적어도 30분 이상 걸렸다. 숟가락질도 천천히, 젓가락질도 천천히, 그리고 입안에서 밥을 씹는 것도 천천히. 그러다보니 제 아무리 거친 보리밥과 나물 반찬이라고 해도 소화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소화 기관이 건강한 이유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를 오래하기로 유명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에서의 일반적인 식사 시간은 2시간 가량 된다. 여러 단계의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오래걸리기도 하지만, 음식을 먹으면서 충분히 대화하고, 한껏 그 음식들을 즐긴다.

프랑스 리옹에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한 요리사인 제라드 알랭은 "오래 씹고 충분히 음미하다보면 그 음식들이 속에서 제대로 어우러져 혀에서 느끼는 것 이상의 풍미를 위장이 느끼게 해주고, 그리고 건강하게 해준다"고 얘기했다.

요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마음이 급하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빈손이 된 후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당의 명운이 될 수도 있는 총선 인재 영입이나 보수 통합도 뒷전으로 밀어놨었는데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패스트트랙에 올인하기 보다는 당내 일과 보수 통합 문제도 함께 고민할 것 그랬다는 후회도 들 수 있을 정도다. 

한 번 급해진 마음은 좀처럼 안정되기 쉽지 않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말이 앞서기도 한다. 발이 먼저 떼어지기도 한다.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하고, 개혁 보수를 지향해야 하며, 새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한껏 배짱을 부리는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의원의 제안에 무턱대고 손을 내밀뻔도 했다. 당내에서 극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을 몰랐을 리 만무하지만 황 대표의 마음이 너무 급했었다.

▲ 황교안 대표와 유승민 의원 / 사진 =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가 귀국한다고 호기를 부리자 덥썩 그 손도 잡겠다고 나섰었다. '안철수'는 결코 한국당의 밥상에 오를 수 있는 반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는 일단 거기에 젓가락부터 들이댔다. 이런 밥상을 처음 받아본 황 대표 입장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반찬임에도 기미도 안하고 젓가락부터 들이댄 격이다.

마음이 급해서다. 패스트트랙 대전을 치르고 나니 총선까지 시간이 너무 없어져버린 탓이다. 게다가 당내에서 황 대표의 지도력에 회의감을 품은 이들이 자꾸 밥상을 치우겠다고 하고, 황 대표와 함께 가겠다고 하는 이들은 방문 앞에서 빨리 가야 한다, 어서 나오라고 재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낯선 밥상을 처음 받아보는 황 대표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들고 숭늉까지 찾고 있는 형세다.

황 대표는 유승민이 됐든, 하태경이 됐든 무조건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이들을 계속 만나야 한다. 이유가 어찌됐든 황 대표는 아직까지도 새보수당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황 대표 뿐 아니라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대화도 전혀 없다. 서로 언론을 향해서만 자기 말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두머리들의 대화가 필요하다.

양쪽의 우두머리들이 필요하다면 매일 만나야 한다. 하루에 두 번을 만난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만나서 천천히 꼭꼭 십는 밥도 먹어야 하고, 향을 음미하며 여유로운 커피도 마셔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탄핵의 강을 어떻게 건너면 탄핵에 동조한 이들을 용서하고, 탄핵에 저항했던 이들을 위로할지 길을 찾아야 한다.

총선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보수통합의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보수통합을 서둘러야 하는 것은 한국당과 보수 진영에게는 선택불가하다. 보수 진영 입장에서는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9일 '혁신통합추진위원회' 결성을 합의한 일이다.

밥상을 빨리 차리는 것은 중요하다.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선비에게 새벽 밥상은 서두를 일이다.  다만 선비는 그 밥상을 꼭꼭 씹어서 잘 소화해야 한다. 서두른 식사에 체해 과거를 그르칠 수는 없으니.

[미디어펜=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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